오래된 연못
개구리 한 마리 뛰어든다
퐁당
Ancient pond
a frog jumps in
plop!
일본을 대표하는 하이쿠를 꼽으라면 저는 바쇼의 이 하이쿠를 선택합니다. 이어령의 축소 지향의 일본인을 읽긴 했으나 일본 문화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유학하면서 미국학생들이 동양 문화에 대해 정말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중국 고전을 술술 읽는가 하면, 한국, 일본, 중국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을 24가지 번역판을 수집한 친구도 보았습니다. 이제는 다 버리기는 했으나 한 때 제가 논어, 장자, 도덕경의 서로 다른 번역을 수집하기도 한 것도 다 이런 미국 친구들의 영향 이기도 했습니다. 컬럼비아 대학에서 주최한 한국 영화제를 갔다 온 미국 친구는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 영화를 보고 와서 제게 말했습니다. 누가 영어 자막을 번역 했는지 불교를 잘 모르고 번역해 어색했다고! 색즉시공 공즉시색 everything is emptiness, emptiness is everything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잘 번역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보면 배우나 감독의 연출을 유의해서 보는 데 이 친구는 번역에 나타난 동서 문화의 차이를 느끼고 온 것입니다.
말이 옆 길로 갔지만, 17자로 인생이나 자연을 노래한 하이쿠를 보면 일본인들의 섬세함을 느끼게 됩니다. 바쇼는 일본을 대표하는 하이쿠 시인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간단히 검색해 보면 나오기 때문에 생략하고 바로 오늘 이 하이쿠를 감상해 보겠습니다. 오래된 연못이 있습니다. 연꽃이 피어있고 연못 주변 돌에는 푸른 이끼가 짙게 끼어 있습니다. 검은 물과 푸른 연잎들이 잘 대조를 이룹니다. 사물이 정지한 듯 고요한 침묵이 이 연못주변을 감싸고 있습니다. 이 때입니다. 갑자기 보이지 않던 개구리 한 마리가 연잎에서 폴짝 뛰어 물속으로 뛰어 듭니다. 퐁당 하고 작은 물결이 일어나고 미세한 흔들림이 연잎을 흔듭니다. 그러나 그 뿐 다시 연못은 고요한 모습으로 되돌아 갑니다.
이 모든 광경을 바쇼는 17자의 글자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바쇼는 이 연못의 광경만을 묘사하는 것으로 만족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이 광경에서 우리네 인생을 보았습니다. 우리 인생은 이 오래된 연못과 같습니다. 이끼 낀 돌, 고여 있는 물, 피어난 각종 수초들, 물 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 작은 벌레들, 이 모든 것은 한가하고 고요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고요를 작은 개구리가 깨뜨립니다. 연꽃에 앉아 있던 녀석이 물로 뛰어 들었습니다. 퐁당 소리가 나고 잔 물결이 동그랗게 퍼져 갑니다.
이처럼 우리 인생에 예기치 않던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곁을 떠나갑니다. 잘 되던 사업이 망하기도 합니다. 건강하던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개구리가 물에 뛰어드는 소리와 같습니다. 물결이 일어납니다. 흔들림도 생깁니다. 그러나 그뿐! 연못은 결국 다시 고요함으로 되돌아갑니다.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나오듯이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태어난 사람을 필히 죽음을 맞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또 떠나간 사람이 돌아 오기도 합니다. 이런 우리 인생을 17자로 노래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멋진 시입니까? 그의 시 가운데 이런 것도 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 순간인 걸 모르다니.
How admirable
to see lightning
and not think life is fleeting.
어떻습니까? 이 시 또한 우리 인생이 한 순간이라는 것 알려 줍니다.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우리 삶 가운데 필요없는 것은 잊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우리 인생은 박인환 시인의 목마와 숙녀의 시에서 노래하듯 잡지의 표지마냥 통속합니다.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면 우리의 고통의 무게는 작아질 것입니다.
한편 바쇼의 이 시는 일본인의 정서를 잘 표현합니다. 불꽃놀이, 벚꽃, 번개, 이 모두는 확 피었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공통점을 갖지요? 사무라이, 또 뭡니까? 일본의 폭력 조직, 아 야쿠자. 이 야쿠자는 부두 노동자들을 보호하고 일감을 배정하는 것이 그 시초라고 합니다. 꼬봉이 오야봉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확 삶을 버리지요? 어쨋거나 일본인들의 정서에는 이렇게 확 피었다 사라지는 것을 멋진 인생이라 보는 것 같습니다.
말이 또 옆으로 나갔습니다. 곧 설이 다가 옵니다. 을사년 한 해 모두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일본 사람들이 생각하는 하나비 즉 불꽃놀이를 생각하십시오. 그냥 생겼다가 확 사라지는 볼꽃 놀이의 불꽃, 또는 개구리가 뛰어 든 연못의 작은 물 소리라 생각하십시오. 불꽃은 사라지지만 하늘은 그대로입니다. 물의 흔들림도 마찬가지입니다. 금방 다시 예전의 고요함으로 돌아갑니다. 우리가 갖는 모든 고통과 아픔이 한 순간에 지나가는 것, 아니 우리 인생 자체가 번개불과 같이 한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이는 결코 허무주의도 아니고 값싼 위로도 아닙니다. 우리 인생 그 자체가 그렇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명절에 인가 친척들고 오순도순 덕담도 많이 나누고 음식도 많이 나누고, 아 음식은 많이 드시지 마십시오. 모두 즐거운 설날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