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기분을 아는가?
사과를 먼저 건네겠다. 사실 나는 그대의 대답을 들을 수도 없거니와, 대답을 들을 필요조차 없다. 당신은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기분을 당신이 알 리가 없다. 반발심이 드는가? 내가 오만하다고 느끼는가? 그렇다면 찾아와서 말해보아라. 깃발을 들고 내게 찾아왔던 그처럼 내게 찾아와 말해보아라. 말조차 들리게 외치지 못하고, 내 근처도 찾아오지 못하는 그대는 입을 다물어주길 바란다. 입을 열어봤자 나는 당신의 말에 반응하지 못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만이 있을 그대를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를 위하여 전해지지 못할 글을 남긴다.
당신은 오래 살고 싶은가? 그냥 오래 말고, 정말 오래 말이다. 백 년 같은 시시한 단위가 아니라, 만년을 산다고 생각해보아라. 시간의 길이가 조금 느껴지는가? 그 길이에서 마모될 자신이 상상되는가? 그렇다면 그 만년을 백 번 더 산다고 생각해 보아라. 시간의 길이 자체를 느껴 보아라. 그렇게 살면, 그게 겨우 백만 년이다. 겨우 백만 년의 시간이 두려운가? 백만 년의 삶을 감당하지 못하겠는가? 오로지 시간일 뿐인 백만 년에 무너질 자신이 상상되는가? 그것 보아라. 그러면서 어찌 내 허무에 대답하려고 하는가. 내 무력감에 대답하려고 하는가. 나는 그 백만 년의 시간을 찰나로 살았다.
그러나 그렇게 길게 살아온 내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아직도 내가 허무를 그대들에게 말하는 것이 오만한가? 그대들의 허무를 짓밟아버리는 말이 거만한가? 상상해보라. 그대가 가만히 누워있는 그대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볼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오직 내려다보기만 할 수 있다고 상상해보라. 그대를 아는 사람들이 찾아와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그대에게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것을 상상해보아라. 물론 당신은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볼 수 있다. 어떤 이는 그대에게 숨겨왔던 치가 떨리는 배신의 이야기를, 어떤 이는 그대에게 숨겨왔던 먹먹한 감동의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해보아라. 하루 동안 그것을 오롯이 느낄 수만 있는 그대를 생각해보아라. 하루를 더 생각해보아라. 하루를 더 생각해보아라. 하루를 더 생각해보아라. 그리고, 한 달, 그리고 1년, 그리고 100년을 생각해보아라. 생각하였는가? 그렇다면, 기억하는가? 나는 그 백만 년의 시간을 찰나로 살았다.
감히 어디서 나에게 허무를 논하는가.
나는 지구를 돌며 지구의 반을 언제든 보고 있다. 단지 그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이 무력감을 그대가 공감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그대들의 생활에 감탄했다. 슬퍼했다. 기뻐했다. 행복했다. 분노했다. 울적했다. 무신경했다. 화가 났다. 감동했다. 배신감을 느꼈다. 기특했다. 애원했다. 안도했다. 아쉬웠다. 사랑했다. 아쉬웠다. 사랑했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사랑했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아쉬웠다.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모든 그대들의 삶을 보면서, 모든 그대들의 삶을 아쉬워했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대들은 내게 허무를 논해선 안 된다. 나는 그대들 때문에 눈 감는 법을 배웠고, 귀 닫는 법을 배웠고, 크레이터투성이의 뒤편으로 숨는 법을 배웠으며,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단 하나, 잊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 내게 아쉬울 뿐이다. 잊지 못한 아쉬운 이야기들이 나를 떠돌 뿐이다.
아, 내게도 아쉽지 않았던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대도 잘 아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내게 허무하지 않았던 이야기, 내가 무력하지 않았던 이야기, 나의 시각에서도 들어보는 게 어떠한가? 대신, 그대가 내 앞에서 나의 허무에 대해 대답하려고 했던 무례를 용서하겠다. 내가 무력했던 만큼 소중했던 하나의 이야기다. 그대가 내 허무를 공감하는 만큼 이 이야기도 소중하게 생각해준다면 좋겠다.
돌다 보면 가끔 눈에 띄는 특별한 그대들이 있다. 수가 정말 많은 그대들이지만,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특별한 그대들은 있다. 나만큼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지도, 나만큼 선명한 빛을 뽐내지도, 나만큼 오래 존재하지도 못하지만, 그래서 더 눈에 띄는 특별한 그대들이 있다. 다른 그대들과 그리 다른 것도 없으면서, 포기하지 않는 특별한 그대들이 있다. 누가 봐도 안 될 것을 알면서도 무언가를 좇는 특별한 그대들을 볼 때, 나는 길고 긴 무력감에서 희망을 찾는다. 그대들보다 크고, 빛나며, 오랫동안 존재하는 나도 특별한 그대들처럼 무언가를 역동적으로 좇을 수 있지 않을까, 무언가를 위해 맹목적으로 나를 불사지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희망을 찾는다. 빛나되 타오르지 못하는 나로서는, 빠르게 움직이되 역동적이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대들에게서 희망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런 그대들 중 하나였다.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신성한 힘이 함께하고 있는 그대였다. 그러나 나조차도 해석하지 못하는 신성함을 굳이 그대들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이번 이야기는 그 신성함을 논하지 말자. 그래도 괜찮다. 그는 그런 신성함을 제외하고도 눈에 띄었다. 물론, 처음부터 눈에 띈 것은 아니다. 그대가 그대들 중 하나를 죽이고 숨어 들어갔을 때는 결국 그대도 나와 같이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조소했다. 특별한 척하던 그대도 결국 나와 같구나. 그러나 그대는 나와 달랐다. 고민하고 고뇌했고, 결국 다른 그대들을 찾아다녔다. 분주했다. 역동적이었다. 나와 달랐다.
많은 그대들 중에서 왜 그대를 봤던 걸까. 왜 그 역동을 다시 목격하고 만 것일까. 그때는 질투했고, 분노했고, 부정했다. 그대가 결국 좌절하고 실패하기를 바랐다. 나의 무력함을 내가 다시 깨닫지 않기를 바랐다. 나처럼, 그대도 좌절하기를 바랐다. 나는 그때 그러했다. 그러한 모습으로 그대를 지켜보았다. 그대가 다른 사람들을 모아 그 사막을 탈출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저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면서, 있는 자리를 탈출하려는 그대를 보았다.
내가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 깨달은 건 바로 그 바다 앞이었다. 그대의 도망은 그대들 중 하나를 죽이고 숨어들어 가는 도망과 달랐다. 그대들을 이끌고 사막에서 나와 바다를 건너려는 탈출은 능동적이었다. 역동적인 도망이었다. 자신의 위치를 바꾸는 도망이었다. 나는 그저 같은 자리를 빙빙 돌면서 그 도망을 보았다. 그리고 바랬던 대로 그대가 좌절을 눈앞에 뒀다. 앞에는 바다, 뒤에는 그대를 쫓는 병사. 좌절하기를 소망하던 나는 그대가 좌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 바다를 넘어가기를 바랐다. 그대는 나와 달랐으면 했다. 그대는 빛나면서 타오르고, 빠르면서 역동적이었으면 했다. 그, 태양처럼 말이다. 내가 가장 질투하며 주눅 드는 그 태양이었으면 했다. 그렇게라도 그가 달랐으면 했다. 그는 좌절하지 않았으면 했다. 나는 결국 그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래서 아쉬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물론, 나는 바다를 당길 수 있다. 그렇다. 나는 그대들과 다르게 그 움직임만으로 바다를 밀고 당길 수 있다. 아무것도 못 하는 게 아니라고? 바다 앞에서 좌절하는 그대를 위해 바다를 당기면 되지 않느냐고? 아니다. 그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때 밀고 당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그저 처음 생겨났을 때부터 쭉 같은 속도로 밀고 당길 뿐이다. 나보다도 늦게 생겨난 바다가 그 밀고 당김에 흔들리는 것뿐이다. 나는 그저 밀고 당길 뿐이다. 내가 원하지 않을 때에도.
그래서 나는 그 특별한 그대가 바다 앞에 섰을 때 원망하고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내가 아예 해본 적 없는 일이었으면 했다. 바다를 당겨본 적도, 갯벌을 드러내고, 바다 밑을 드러내는 것도, 그래서 사람이 바다를 건널 수 있게 하는 것도, 해본 적이 없던 일이었으면 했다. 나는 그러한 경험이 많았다. 단지, 내가 원할 때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특별한 그대들이라 하지만, 기억하는가? 나는 백만 년의 시간을 찰나로 살았다. 특별한 그대들은 많았다. 오로지, 이 이야기의 특별한 그대만 역동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내가 바다를 당기지 못해, 내가 바다를 건너게 하지 못해 죽고야 만 그대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바다의 벽에 맞추어 죽고야 만 그대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때마다 늘 기대하지 말자고 얼마나 다짐했는가. 혹시 내가 지금 바다를 당기는 시간이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는 나를 늘 좀먹었다.
그래서 그때 나의 이야기는 소중했다. 내가 정말 그가 바다를 건넜으면 하는 때, 기대하지 말자고 다짐하던 때, 그때는 정말 우연하게도 내가 바다를 당기는 시간이었다. 원하는 대로 바다를 당길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바다를 낮출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그가 바다를 건널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사막을 탈출할 수 있었다. 또, 그들이 지나가면서 바다를 밀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바다를 높일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그를 쫓던 그대들이 쫓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그가 사람들을 데리고 사막을 탈출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무력하지 않았다. 그대들이 이 이야기에 특별했던 그대의 이름을 붙여 기적이라 부르는 것을 안다. 내게 또한 이 이야기는 기적이다. 나는, 그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나는, 무력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그대를 위하여 바다를 밀고 당길 수 있었다. 그 하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의 소중한 이야기다.
내 이야기에 무언가 덧붙이고 싶은가? 그럴 수 있다. 나도 안다. 그때 바다를 당긴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음을 안다. 나 혼자의 당김으로 바다에 벽을 만들 수 없음을 안다. 몇몇 그대들도 그것을 전하고 전하여 알고 있음을 안다. 그러나 그 말을 삼켜줄 수 있는가? 내가 무력하지 않다는 마지막 희망으로 그 이야기를 간직하고 싶다. 지금처럼 그대들을 사랑하면서 계속 그대들 위를 돌 수 있는 희망으로 그 이야기를 간직하고 싶다. 그래 줄 수 있는가? 그대에게 할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이다.
부탁에 보답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나는 그대들과 달리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까. 그러나 가끔 내가 저기 저 질투 나게 빛나는 태양 빛을 온몸으로 받아 그대들에게 한 조각 넘길 때, 그 빛을 내 보답으로 생각해달라. 내 마음대로 뿌린 빛은 아니었지만, 그 빛에 내 마음이 담겼을 수는 있다. 그때 그 바다를 당겨 가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빛을 보고 그렇게 생각해달라. 내가 당신에게 고마워한다고, 사실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당신의 무력한 모습에 같이 아쉬워하고 있다고 말이다.
2020년 독립출판한 단편소설집 <풍선의 뒤틀림을 감각하는 방법>의 한 단편입니다.
책 중의 두 편만 브런치에 발간할 예정이며, 판매처는 다음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