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을 쓰게 하는 것

by 인표

아, 안경 깨 먹었다.


난 이 더운 날 흐르는 땀 닦는다고 손을 올렸을 뿐이다. 조금 짜증 난 감정이 손에 담겼다. 손이 조금 빠르게 내려갔을 뿐이다. 안경은 그 빠른 손놀림에 잠시 함께 갔을 뿐이고, 하필 안경을 마중 나온 바닥이 울퉁불퉁 아스팔트였을 뿐이며,이중 압축 유리알은 그 아스팔트를 견디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안경이 깨져버렸다.

깨진 건 안경인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근처 안경원을 찾아 들어가 안경을 맞추고 나오는 데까지, 정말 몇 마디 하지 못했다. 안경과 함께 무언가 깨져버린 걸까? 왜 갑자기 말을 못 할까. 고민했다. 무엇이 깨졌는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급하게 쓸 싸구려 안경 하나 혹은 급하게 쓸 렌즈 하나 정도 사려고 했다. 그러나 내가 마지막에 결제한 안경테는 처음에 사고 싶다며 가져간 안경테보다 두 단계는 더 높은 가격의 안경테였다. 심지어 블루라이트를 차단하면서 김 서림까지 방지하는 안경알 코팅까지 결제했다. 오늘 안경원에 주문이 별로 없었던지, 주인은 두 시간 후에 안경을 찾으러 오라고 말해주었다. 예약한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 하고 나오면서 받아 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경을 새로 받으면, 같이 깨져버린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모든 것이 돌아올 거야. 자신을 안심시켰다. 내 말솜씨도 같이 돌아오겠지. 그러나 미용실로 걸어가는 와중에 전화가 울렸다.


“어…”


“어…”


“응.”


“괜찮아.”


“별일 없어.”


별 전화도 아니었고, 별 내용도 아니었는데, 별말을 못 했다. 결국 괜찮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무슨 안 좋은 일 있냐고 친구가 물어봤다. 하지만 나는 안경이 깨졌다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나는 괜찮다며 전화를 끊어야 했다. 나는 안경이 없으면 말을 못 하나? 고민했다. 나는 분명히 자신감 넘치는 말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감은 스스로 쌓아 올린 자존감에 기반을 두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손에 휩쓸려 깨져버린 안경에 내 자신감이 무너졌다. 내 자신감과 말솜씨가 안경에 담겨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람. 스스로가 조금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도 방금 지나간 사람이 나를 알던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길게 웃지 못했다. 괜히 지나가는 흐린 얼굴 윤곽선을 가진 사람들이 무서워졌다.


늘 가던 미용실 가는 길이 낯설게 느껴졌다. 안경을 쓰지 않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새로운 걱정이었다. 안경을 쓴 나였다면, 애초에 생각하지 못했을 걱정이었다. 나였다면, 못 알아봐도 설명하면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안경 낀 나는 그렇게 살았다. 미용실 입구에 도착하니 괜히 걱정들이 톡톡 더 튀어나왔다. ‘왜 안경 안 쓰고 왔냐고 물으면 어떡하지?’ ‘렌즈 끼고 왔다고 할까?’ ‘렌즈 꼈다고 말했다가 나중에 들키면 이유도 없는 거짓말을 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까?’ 별 걱정이 다 들었다. 나 자신을 다잡았다.


‘괜히 미용실 입구에서 오래 서 있어서 그래. 괜찮을 거야.’


“안녕하세요 고객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짐 놓으시고 잠깐 기다려주세요. 곧 자리 안내해드릴게요.”


괜찮았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디자이너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못 알아보는 일도, 굳이 더 묻는 일도 없었다. 얼떨결에 조금 앉아 기다리는 동안 자리를 안내받았다. 익숙한 미용실 풍경도 안정에 도움이 되었다.


“어떻게,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그래도 지난달보다는 표정 좋으신 게 피곤하진 않나 봐요? 저는 어제까지 휴가 갔다 와서 오늘 적응이 안 되네요. 너무 피곤해요.”


황당했다. 걱정과는 정반대의 반응이 이상했다.


“표정이… 지난달보다 좋아요?”


디자이너는 큰 표정 변화 없이 가위도 멈추지 않고 답변했다.


“그럼요. 왜요, 별로 기분 안 좋은 날이었나 봐요?”


기분이 안 좋다고 설명하기에는 더 복잡한 날이라고 생각했다.


“기분이 안 좋은 날? 잘 모르겠네요. 안 좋은 일은 있었어요.”


그가 가위를 머리에서 살짝 떼 놓으며 대답했다.


“아 정말요? 무슨 일 있으셨는데요?”


친구와의 전화 통화와 다르게 조금 더 자연스럽게 안경 이야기를 꺼낸다.


“안경이요. 제가 항상 쓰고 다니던 거, 오던 길에 깨 먹었어요.”


디자이너는 조금 놀라며 다시 가위를 움직인다.


“아 맞다. 맞다. 안경 끼셨었는데, 늘 저는 안경 벗은 모습만 보잖아요. 그래서 몰랐나? 재밌네요.”


아, 그런 건가. 왠지 미용실 풍경이 낯설지 않았었다. 난 미용실에서 늘 안경을 벗고 있었다.


“저 오늘 안경 없어서 너무 불안했거든요. 말도 막 못하고, 원래 엄청 많이 하잖아요.”


머리가 양옆으로 넘겨지며 적당한 길이인지 심사를 받는다.


“그래요? 원래 말 많이 하시는지 몰랐는데, 여기 와서는 딱히 말 많이 안 하잖아요. 안경 벗으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런가. 뭔가 설득됐다.


“그런 것 같네요. 맞아요. 저 미용실에서는 말 원래부터 잘 못 했는데, 안경을 벗어서 그랬나요? 왜 저는 안경만 벗으면 말이 없어질까요? 왜 그럴까요? 오늘 고민 많이 했는데.”


가위가 적당히 더 움직이다 멈춘다. 디자이너분의 길지도 짧지도 않은 고민 끝에 입이 열린다.


“늘 쓰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잘 모르겠네요. 다른 때는 항상 말 많으세요?”


“말 늘 많죠. 과장 좀 하면 잘 때 빼고는 말이 쉬지를 않아요.”


“어, 잘 때. 잘 때 안경 벗잖아요. 그런 느낌 아닐까요?”


“오 세상에, 맞아요. 오랫동안 잘 때만 안경 벗었으니까. 안경 벗으면 말이 없어지나 봐요. 몸이 잘 준비를 하는 걸까요?”


디자이너분이 웃으며 말을 건넨다.


“좋네요. 조용한 내가 되고 싶을 때는 안경 벗으면 되겠어요.”


아. 해결됐다. 별거 아닌 일에 허무맹랑한 걱정까지. 원인도 알았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안경 없이도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천천히 괜찮아지지 않을까? 괜히 디자이너분에게 말을 더 건넨다.


“아 표현 인상적이네요. ‘조용한 내가 되고 싶을 때’라는 표현이요. 그랬던 거 같아요. 말을 굳이 하고 싶지 않을 때도 저는 늘 기계적으로 말을 했었네요. 적막을 싫어했거든요. 선생님은 일하던 중에도 조용히 있고 싶은 날이 없었어요? 아, 늘 말을 해야 하고, 늘 웃어야 했나요? 일할 때 웃지 않고 말하지 않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네요.”


“아, 그거 저희 교육받을 때 진짜 많이 혼나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걸로 혼나본 적이 없어요. 저는 그런 거 옛날부터 잘했거든요.”


어색한 정적이 감돈다. 당연하듯 이 정적을 깨기 위해 입이 열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이야기가 입을 막는다. 생각이 달라졌다. 말이 없는 나를 내가 받아들여 본다. 머리가 끝날 때까지, 그렇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익숙한 미용실을 나와 다시 낯선 거리로 들어온다. 망막에 제대로 맺히지 않는 거리의 모습이 낯설다. 낯선 거리에 위축되어있는 나를 내가 바라본다. 위축되어 있어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 ‘안경은 내일 찾으러 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집 가는 버스를 타자. 안경원에는 내일 찾으러 가자. 알려주신 번호로 문자 하나 보내놓으면 되겠지. 안경 없이 하루를 살고 그 하루를 긍정해보자. 말 없는 하루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게 문자를 하나 남겨놓고, 미용실 앞 버스 정류장에 앉았다.


십오분이 흘렀다. 무언가 이상했다. 초록색 버스가 올 때마다 눈을 찌푸리며 앞으로 다가가 번호를 확인했지만, 내가 타는 버스가 아니었다. 높이 달린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은 눈을 찌푸리며 다가가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곧 도착하는 버스들을 알리는 안내음만이 들린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는 곧 도착할 버스 목록에 불리지 않는다. 난관이다. 고민하다 핸드폰을 꺼내서 버스 도착 안내 전광판을 동영상으로 찍는다. 확대하여 눈앞에 가까이 가져가 확인한 전광판에는 내가 기다리는 버스의 번호가 없다. 그럴 리가 없는데, 늘 이 정류장에서 그 버스를 탔다. 그럴 리가 없는데, 정말로. 당황하여 정류장을 돌아보다 종이 하나를 발견한다. 다시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가까이 대 망막에 맺히지 않던 글씨를 눈에 넣는다.


<지역축제로 인하여 우회 운행을 합니다. 서대문 03, 서대문 04, 서대문 05 버스는 8월 13일(목) 15시부터 8월 17일(월) 5시까지 해당 정류장에 정차하지 않습니다.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안경과 함께 무언가가 깨졌던 게 맞다. 내가 가지고 있던 특권이 깨졌구나. 이 정도는 당연히 볼 수 있다는 가정이 깨졌구나. 디자이너가 말해야 하는 이유와 내가 안경을 써야 하는 이유가 같구나.


내가 안경을 쓰게 만드는구나.


눈살을 찌푸려 가면서 문자를 다시 보낸다. 안경을 찾으러 가야겠다. 안경을 써야겠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려면, 지역축제로 우회 운행을 하는 버스를 제대로 타려면 안경을 써야겠다.



2020년 독립출판한 단편소설집 <풍선의 뒤틀림을 감각하는 방법>의 한 단편입니다.

책 중의 두 편만 브런치에 발간할 예정이며, 판매처는 다음 링크에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https://linktr.ee/bin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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