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재난을 대하는 자세
우리나라 속담가운데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무엇일까요? 국립국어원 이나 만속학 자료등에 따르면 정확치는 않지만 우리속담의 120 개에 호랑이 등장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속담들이 흔히 쓰인다.
“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
“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한다” 등등
조선후기 때만 해도 연평균 100명이 넘는 백성이 호랑이에게 생명을 잃었다니 우리 조상들이 호랑이를 대하는 두려움과 공포는 상당했다고 판단됩니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에서 호랑이에게 물려갈 고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현대인들은 호랑이라는 실재적인 두려움의 대상 대신에 추상적이고 만성적이며 끝없는 공포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고민과 두려움들일 것입니다.
“내가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내가 실업자가 되면 어떻게 하지, 내가 불치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지.."
보통사람들의 고민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성공한 반열에 있는 유영인 , 기업인들 조차도 끝없는 걱정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 내가 일등에서 밀리면 어떻게하지 “ “ 내가 지난해 보다 매출이 적으면 어떻게 하지..”
문제는 이것을 제대로 해소를 하지못해 만성적인 정신적인 고통 말하자면
우울이나 불안장애, 번아웃, 무기력등을 정도의 차이만 있지 모두 경험하고 질병으로 안고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도한 공포를 극복하는 검증된 방법은
노출과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고 받아들이기 , 통제 가능한 것과 통제 불가능 한 것을 철저히 분리 시키는 것등 입니다.
그 가운데 노출은 그 무서운 생각을 노트에 쓰고 매일 소리내어 2주정도 지난다면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 원리라고 합니다.
'아직도 끝나는 않은 길' 같은 베스트셀러를 쓴 미국의 m. 스캇 펙 박사는 신경증 (neurosis)의 핵심원인을 다음과 같이 보았습니다
“신경증은 고통을 회피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다.”
“정신질환자(특히 성격장애)는 현실을 회피하지만, 신경증 환자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 고통을 감당하지 못해 증상을 만든다.”
다시말해 건강한 사람은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면하고 책임을 지며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현실은 어느정도 직면하지만 그로 인한 책임과 고통을 감당하기 싫어서
무의식적 증상(불안, 강박,신체증상등)을 만들어내” 나는 아프니까 책임질수없다” 는
면죄부를 스스로 준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신경증의 원인이 다만 책임회피 라는 원인 하나만 가지고 말할수는 없지만
고통스러운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바라보는 것이 증상을 완화하거나
치료하는데 도움이 될만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면
20세기 인물들은 전쟁같은 실제적인 상황을 마주한 존재들입니다.
조선인 6천명 이 희생된것을 포함해서 10만명 이상 목숨을 잃는
관동대지진이라는 극한의 재난을 어린 시절 겪고 그 상황을 작품세계에 승화시킨 인물이 있습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감독이고 세계 영화사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거장중의
한명이고 영화계의 황제라 불리는 인물니다.
롱테이크와 다중카메라 촬영 그리고 비와 안개 같은 기후를 극적으로 활용한 쵤영기법은
수많은 명감독들이 오마쥬를 하거나 차용하는 영화의 혁신가라고 할만합니다.
대규모 스케일의 영화도 대단하지만 인간의 깊은 심연을 탐색하고
반전의 메세지를 영화속에 녹여 낸 영화 장인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어린시절을 그가 보고 경험한 사회상은 그대로 그의 영화철학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인 1910년에서 1945년의 일본은 전쟁의 폐허와 인간성 상실의 한 복판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관동대지진은 1923년 9월 1일에 일어난 참혹한 사건인데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도교 에다라는 곳은 진앙지에서 붉하 20-30km 불과 한 곳이었습니다.
대지진 직후 도쿄 전역에 대화재가 발생을 했는데 13살 구로사와의 눈에 들어온것은
여기저기에 쌓여 있는 시체더미 였습니다.
그 지옥을 방불케하는 아비귀환의 현장에 그를 잡아끌어 들인것은 그의 형(兄) 헤이지도(平次) 였습니다.
“ 아키라 ! 겁을 내지 말고 내손을 잡아”
엉거주춤하며 땅바닥만을 쳐다보며 걷는 구로사와의 손을 강하게 잡아 끌었습니다.
“ 형 너무 무서워 “
불타고 있는 집 주변의 빈터에는 수를 헤아릴수없는 시체들에게서 나는 심한 악취로 기절 할것만 같았습니다.
“네가 두려워 한다고 해서 이 상황을 피할수 없어 .이게 현실이야. 무서운 건 눈감으면 더 무서워진다.
무서운걸 이기려면 똑 바로 봐라. 가자.“
13살의 소년 아키라는 연신 구역질을 했지만 30분 그리고 1시간이 지나자 토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순간부터 두려움이라는 감정 자체를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인것입니다.
그는 영화감독을 하면서 그의 카메라는 죽음이나 고통, 패배 , 추악함 마저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직시(直視)의 연출력을 바라봅니다.
그의 영화를 감상하다보면 얼굴을 직접 클로즈업하며 배우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담아두는 장면을 자주 볼수있습니다. 라쇼몽과 란, 천국과 지옥 같은 작품에서 ‘인간의 악과 고통, 재난을 결코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직시하는 직시의 미학을 잘 보여주었습니다.
구로사와는 평생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고통과 재난을 똑바로 보아라.도망치건 외면하지 말고, 끝까지 응시하라.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
태어난 19개월 만에 고열로 시력과 창력을 잃은 헬렌켈러는 1903년에 쓴 낙관주의라는 에세이에서
“ 나는 결코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왔는가 “ 라고 묻지 않습니다.
이 고난을 통해 내가 세상에 무엇을 줄수 있는가 라고 묻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도 말합니다
얼굴을 태양을 향해 들어라 그러면 그림자를 볼수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두려움을 직접 바라보는 순간 아주 별볼일 없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