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정말 순했어. 문방구 앞을 지나가도 뭘 사달라고 떼를 쓴적이 없었지."
엄마가 과거를 회상하며 말한다. 3살 아래 남동생은 가지고 싶은게 있으면 그자리에서 떼를 쓰며 누워버려서 어디를 지나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남동생이 있을 때는 슈퍼나 문방구가 없는 길로 빙 둘러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다음에 사줄게~" 이 한 마디면 "응~" 하며 다 넘어갔다고 한다.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순하고 귀여웠다는 의미로 웃으며 이야기 하는거겠지만 난 마음이 쓰려 웃을수가 없다. 그 순한 아이는 정말 욕구가 없었을까?
누울자리 봐가며 다리를 뻗는 법이다. 떼쓰는 아이는 적어도 자기 주장이 받아들여진 적이 있는 아이들이다. 울고 화내면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는 아이들이다. 좌절된 감정을 소리내 밖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이다. 아직 세상을, 그리고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인것이다.
마트에서 우는 아이들을 종종 본다. 예전에는 그 모습이 참 꼴보기가 싫었다. 3살짜리 아기가 예쁘긴 커녕 이기적으로 보였다. 심지어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어미 새가 둥지의 아기 새들을 먹이는 장면도 마음이 불편했다. 눈도 못뜬 아기 새들이 입을 쩍버리고 서로 달라고 빽빽 거리는데 그 소리를 듣는게 불편했다. 그리고 어떤 새가 혹시나 못먹을까 노심초사하며 새끼 한마디당 몇마리의 벌래를 먹나 세곤 했다.
엄마가 줄때까지 얌전히 기다릴줄 알아야지!
역시 구석의 저 새끼는 한번 밖에 못먹었잖아!
그럴줄 알았어!
아! 불쌍해라!
참고 양보만 해온 K 장녀는 꼰대가 되었다.
나는 백화점보다 드림디포나 다이소에 가는 걸 더 좋아한다. 공책이며 지우개며 각양각색으로 진열된 문구들이 좋다. 하나씩 만져보며 진짜 맘에 드는 것을 신중하게 고르는 시간이 행복하다. 같은 물건을 색색깔로 사오기도 한다. 다행인건 맘껏 플렉스를 해도 2만원이 안나온다. 참 알뜰한 과소비다. 사실 이 문구들은 내 생활에 꼭 필요한건 아니다. 사와서 쓰지않고 그냥 처박아두는 것도 많다. 하지만 문구들을 보면 갖고싶다는 마음이 마구마구 솓아난다. 엄마에게 사달라고 하지 못했던 어린시절의 욕구들은 어디 가지 않고 다 내 안에 남아있는 거다. 참고 참아서 오히려 더 커졌는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지우개와 볼펜은 그냥 지우는 물건, 쓰는 물건이 아니라 이제서야 마침내 가질수 있게 된 특별한 무언가가 되었다.
여튼 이렇게 순하고 착했던 나에게도 사춘기는 찾아 왔다. 친구들보다 더 쎄게 말이다. 남자친구 문제로 엄마와 대판 싸우던 어느 날 엄마는 내 어깨를 잡고 세차게 흔들며 소리쳤다.
"제발 정신 차려. 지은아!"
엄마가 이리저리 흔드는대로 몸이 속수무책으로 움직였다. 그때까지의 내 삶처럼 말이다.
나는 그저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였다.
아파도 견뎠다.
지겨워도 참았다.
힘들어도 쉬지 않았다.
맘에 안들어도 입었다.
먹기 싫어도 먹었다.
'잘했다. 수고했어. 우리 딸' 이 소리를 한번 듣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런 다정한 눈빛을 단 한번만이라도 받고싶어서... 그렇게 오래 참고 참다가 외로운 마음 어디에라도 의지하려는데 엄마가 발 벗고 반대를 한거다. 그럼 엄마가 그 사랑을 줬어야지. 날 외롭게 하지 말았어야지. 그럼 난 죽으라는 거야? 정신차려야 할 건 엄마였다.
어린시절의 나를 상상해보면 손발이 모두 줄에 묶인 인형이 떠오른다. 그 인형은 나다. 엄마는 줄을 잡고 이리저리 나를 조종한다. 나는 손과 발에 힘이 없다. 인형은 영혼이 없다. 모든 것을 바쳤지만 끝까지 기다리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어깨를 잡고 흔드는 엄마를 침대로 밀어 넘어뜨려 버린 날, 나는 착한 아이가 되는 것 조차 실패했다. 그날 저녁 아파트 베란다에서 6층 아래 주차장을 바라봤다. 얼마나 무섭던지... 고통보다 두려움이 더 커서 뛰어내릴수 없었다. 두려움이 날 살렸다. 모든 감정은 쓸모가 있다더니, 그날만큼은 고마운 두려움이다.
어린시절 나는 엄마에게 힘겹게 매달린 악세사리였고, 엄마를 구하고 싶어 절벽에서 엄마 손을 잡고 있는 영웅이었다. 골방에 버려진 아이였고,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투명인간 일때도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의 좌절된 욕구들이 갖지 못한 볼펜처럼 내 마음에 크게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비틀린 욕구들은 내 삶을 건강하지 못하게 끌고 갔다.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혹사하거나 주목받고 싶어 다른 사람처럼 연기를 해야 했다.
치유의 시작은 자각이다. 어둠속에서 잃어버린 열쇠를 찾기위해서는 어둠을 인정해야 한다. 아팠던 유년시절을 다시 봐야한다. 보기싫은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곳의 버려진 아이를 만나지 않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 다른 방법을 나는 모르겠다. 용기를 내보자. 당신의 내면 아이는 어떤 모습인가?
묻어둔 아픔을 풀어내는데는 많은 통곡과 분노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은 절대 당신을 배신하지 않을것이다. 할수록 힘이 생기고 치유에 가속도가 붙을것이다. 다른이들이 바뀐 당신을 알아보고 아이들과 남편이 변할것이다. 세상이 안전해지고 삶에 기쁨이 많이질 것이다.
나도 이제 더이상 아기새의 삐약거림이 거슬리지 않는다. 나 여기있다고 외치는 그 작은 존재 안의 크나 큰 생명력이 느껴진다. 마땅히 주어진 삶을 살아내겠다는 어떤 결의같은게 느껴진다.
나 여기 있어요!
나는 소중한 내 삶을 포기하지 않을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