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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29. 2022

쓸데없는 게임은 없다.

아이는 놀면서 배우고 성장한다. 그래서 성장 단계별로 그맘때 하면 좋은 놀이가 있다. 아기 때는 까꿍놀이를 하며 '대상 항상성'을 배운다. 까르르 웃으며 까꿍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엄마가 눈앞에 없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좀 더 큰 아이들은 숨바꼭질을 한다. 어디 숨을지 고민하면서 상대방의 생각을 유추하기도 하고 혼자 떨어져 있는 동안 독립심과 유능감을 배운다. 지혜로운 엄마들은 이렇게 놀이로 아이를 가르친다.


손가락 근육은 그림을 그리며, 밥을 먹고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발달한다. 그리고 인형놀이를 하며 상상력과 미적 감각을 키운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이를 앉혀놓고 진지한 분위기로 "새끼손가락에 힘을 좀 더 줘봐!" 하며 손가락 트레이닝을 시키는 사람은 없다. 그랬다면 관계만 틀어지고 오히려 새끼손가락에 부작용을 일으켰을 것이다. 자연다큐를 봐도 그렇다. 동물들도 놀이를 통해 사냥을 배우지 않던가?


어른도 놀이를 통해 배우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쉬는 시간에 유쾌한 영상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우스꽝스러운 영상을 보며 깔깔대다 보면 나의 부족한 부분들이 어느새 인간적이고 괜찮게 느껴지곤 한다. 가끔은 뜻밖의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동물 영상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각박하게 느껴졌던 세상이 좀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나도 이런 이런 세상에 어울리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리고 이렇게 웃으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초조하고 지쳤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다시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나는 것이다.


우리 남편은 요리를 좋아한다. 힘들게 일하고 들어와서는 갑자기 주방을 뒤집어엎으며 요리를 시작한다. 내가 봤을 때 남편의 요리는 딱 '놀이'다.  온갖 가재도구와 프라이팬을 꺼내어 그 순간 만들고 싶은 요리를 만든다. 불쇼를 하기도 하고 기상천외한 조합으로 섞어보기도 하고 유튜브에서 봤던 신기한 레시피에 도전하기도 한다. 실용성이나 합리적인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종종 나와 아이가 먹지 못하는 요리가 탄생하거나 결과물에 비해 재료비가 너무 많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끔은 정말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온 가족이 야식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 남편은 이렇게 한바탕 요리로 푸닥거리를 하고 나서야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털어내고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어른들이 좋아하는 인테리어도 근본은 놀이다. 배우자는 소파가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액자가 앞으로 걸렸든 뒤집어 걸렸든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스스로 정성을 들여 가구와 소품을 적절한 구도와 색감으로 배치하고 그 어울림을 보며 뿌듯해한다. 엄마가 자기 코가 어디 달렸는지도 모르는 갓난아기에게 알록달록 의상을 입혀놓고 흐뭇해하는 것도 근본 재미는 같다. 아름답게 꾸미는 재미인 것이다. 꾸미는 것은 미를 추구하는 즐거운 행위이며 더 좋고 나쁨을 따질 수 없는 순수한 놀이 행위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게임은 어떨까? 요즘 아이들은 게임을 하며 논다.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으로 놀이 문화가 진화해 온 탓이다. 그림을 그리고 요리를 하는 것보다 게임이 주는 즐거움은 정말 가치가 덜할까? 엄마가 인테리어를 하며 얻는 기쁨보다 아이가 동물의 숲에서 자기 집을 꾸미면서 얻는 기쁨이 정말 가치가 덜할까?


하루 종일 레고를 하고 노는 아이는 봐줄 수 있지만 하루 종일 마인크래프트를 하고 노는 아이는 참을 수 없다는 부모가 많다. 레고는 창의력과 공간감각을 키워주기에 유익하지만 마인크래프트는 컴퓨터 게임이기에 유해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둘이 주는 유익함은 같은 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부분적인 특징이 다를 수 있다. 레고는 끼우고 빼는 동작에서 배우는 섬세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의 불편함도 따른다. 마인크래프트는 손가락의 섬세함을 발달시키는데는 불리할 수 있겠지만 조작이 더 편리하고 컴퓨터를 다루는 능력을 기를 수 있다.


나중에 따로 다루겠지만 마인크래프트는 대단한 게임이다. 블록의 개수가 결국 유한하게 정해져 있는 레고는 따라올 수 없는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 그 내용을 다 다루려면 한 챕터가 부족할 정도이다. 레고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딸은 레고도 많이 했지만 마인크래프트도 많이 했다. 나는 부모님들의 게임에 대한 인식이 너무 왜곡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떤 게임이 어떤 즐거움을 주고 어떤 유익함을 주는지, 그리고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고 어떻게 함께 즐기며 가르쳐야 하는지 대부분의 부모는 너무 모르는 것 같다. 잘 모르기에 걱정이 되고, 그래서 아이를 일단 통제하고 본다. 놀이를 순수하게 즐거움으로 보는 아이들은 그런 부모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부모와 아이가 갈등하게 되고 관계는 틀어진다.


많은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개발해본 나는 게임의 유익함과 잠재력이 보인다. 게임은 알면 알수록 아이와 함께 즐기며 사랑을 나누기에 유리한 도구이다. 무조건 좋다는 뜻이 아니다. 주의해서 섬세하게 쓸 수만 있다면 장점이 많다는 뜻이다.


늘 일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살면 아마 금세 에너지가 고갈되고 우울에 빠질 것이다. 사람은 일과 놀이가 적절히 균형 잡힌 즐거운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특히나 놀면서 즐겁게 배우고 쉬어야 한다.


이 세상에 쓸데없는 놀이는 없다. 아이가 게임을 좋아한다면 분명 그 게임을 통해 배우는 것이나 즐거움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 게임의 어떤 면이 지금 그 아이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제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아이가 게임에 너무 푹빠져있으면 엄마가 걱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작정 뺏는 것은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좋은 선택이 아니다. 모두에게 더 좋은 지혜로운 방법이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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