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가 처음 해본 게임은 선을 따라 알파벳을 그리는 핑크퐁 게임이었다. 그리기를 성공하면 '와우' 소리와 함께 성공을 축하하는 이미지가 나오는 단순한 것이었다. 아이는 선을 따라 그리려고 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다. 손가락이 선 밖으로 나갈 때마다 실패 메시지가 뜨면서 그린것이 다 지워졌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그려야 했다. 획을 반대 반향으로 그리는 것도 성공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색칠하는 것도 인정되지 않았다.
프로그래밍된대로 작동하는 게임은
"처음 알파벳을 그리는것 치고 정말 잘했는데? 와~ 4살 맞아? 정말 잘했어!"
이렇게 절대 반응해주지 않았다. 유저가 4살이든 90살이든 죽어가든 영혼이든 예외없이 똑같은 룰을 적용한다. 룰이 엄격하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것 같다. 그냥 이러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비눗방울을 터트리는 게임이라고 하자. 고양이들도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지만 이 게임은 비눗방울이 만들어질 때의 빛에 반사되는 그 미묘한 아름다움과, 인공적인데도 기분 좋은 비누 냄새, 바람에 따른 속도, 저마다의 크기, 팡 터질 때 얼굴에 튀기는 그 작은 입자들의 느낌과 미끌거리는 촉감은 전부 재현할 수는 없다. 아이가 비누방을 게임을 처음에 몇 번은 신기해할지는 몰라도 금세 싫증을 내거나 짜증을 내게 된다. 실제로 이리저리 느껴보며 자신의 넘쳐나는 호기심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구현한다고 해도 가상세계는 가상세계다. 절대 현실을 따라갈 수가 없다. 강바닥 자갈의 무게, 촉감, 그 따스함과 냄새를 컴퓨터가 완벽하게 표현할 수가 없다. 엄마의 미소, 목소리, 묘한 뉘앙스까지 인공지능이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게임에서는 성공했을 때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잘했어!" "최고야!" 이런 기계적인 리액션이 아이 언어발달에 줄수 있는 도움은 적을 것이다. 그래서 특히 오감과 언어를 발달시켜야 하는 시기의 영유아는 게임보다는 현실세계에서 많은 것을 체험해야 한다.
생후~ 6세
생후 1년 동안은 두뇌가 매우 폭발적으로 발달하는 시기이며 그 이후에도 6살까지는 감각과 언어를 다루는 두뇌가 꾸준히 발달하는 시기이다. 두뇌는 그 시기의 경험에 따라 발달 정도가 정해진다. 감각을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쪽 두뇌가 발달하고 언어를 많이 듣고 할수록 언어 능력이 발달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 시기에는 부모와 함께 자연에서 뛰어노는 것이 좋다.
아이는 자연에 풀어놓고 부모는 벤치에 앉아 구경만 하고 있으라는 소리가 아니다. 아이의 두뇌는 안정적인 애착 관계에서 상호작용을 통해 발달하므로 부모가 아이와 눈을 맞추고 몸 비비며 놀면서 상호작용을 많이 해주어야 한다.
"개미를 보고 있구나? 그래 이건 개미야. 개. 미."
"와 아까보다 더 멀리 날아갔다!"
"이게 무슨 냄새지?"
"괜찮아. 기다려 줄게."
"엄마가 시범을 보여줄까?"
이런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의 두뇌는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책을 많이 보면 좋다. 특히 아이가 아주 어릴때는 책을 읽어주는 것도 쉽다. 하지만 엄마는 다른 일을 하면서 아이에게 혼자 책을 보라고 강요하라는 뜻이 아니다. 책이 주는 언어도 한계가 있다. 책은 혼자 말한다. 둘이 서로 얼굴 마주보고 대화하는 그 풍부함을 책이 어찌 따라갈수 있을까? 외롭게 억지로 읽은 만권의 책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한시간의 대화가 아이가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면 재미있는 그림과 글은 부모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소재가 되어 주고 언어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이때 발달한 언어능력과 읽기 능력은 나중에 학습을 하는 시기에 아주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자신을 표현하는데 능숙한 아이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자존감이 올라갈 것이고 더 자신을 잘 표현하게 된다. 읽기 능력도 마찬가지다. 뇌 발달이 잘 된 아이가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많다. 선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영유아 시기에 게임에 노출되었다고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시기는 그 순간의 호기심에 잠시 집중하는 것뿐이다. 아이가 집중하는 동안은 '이런 게 있네?' 정도로 옆에서 상호작용 해주다가 아이의 관심이 옮겨 갔을 때 치우면 그만이다. 아이가 다시 찾을때는 "그거 어디갔지?" 하면서 잠시 찾는 척하다가 "어디갔는지 못찾겠다. 우리 유진이 속상하지. 대신 엄마랑 재미있게 숨바꼭질할까" 하면 아이가 금방 게임을 잊어버릴 것이다. 이 시기 아이에게 엄마와 함께 노는 것보다 좋은 것은 없다. 엄마가 더 흥미로운 활동을 제공하면서 그에 맞게 환경을 정돈하면 아이는 금세 다시 제 나이에 맞는 놀이를 즐기게 될 것이다.
아기가 게임 하는 것을 아기가 체스를 가지고 노는 것으로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아기도 체스를 가지고 놀수 있다. 하지만 어른처럼 전략을 가지고 플레이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나이에 맞게 체스 말을 물고 빨고, 쌓고 넘어트리고, 역할놀이를 하며 논다. 그렇게 놀고 있는 아이에게 체스는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가르치려 들거나 억지 뺏을 필요는 없다. 아이와 상호작용하며 아이가 어떻게 노는지 관찰하고 아이가 좋아할만한 더 안전한 놀잇감을 제공하면 된다. 엄마가 웃는 얼굴로 안전한 염료로 코팅된 알록달록한 인형을 흔들고 있는데 어떤 아기가 칙칙한 색깔의 체스 말에 집착하겠는가. 게임도 마찬가지다. 너무 어린 아이가 게임을 하는 것은 게임을 제대로 즐기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기의 호기심과 수준에 맞게 물고 빨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럴때는 억지로 빼앗아 아이에게 충격을 주는것보다 슬쩍 치우고 엄마가 놀아주는것으로 관심을 돌리면 문제가 충분히 해결될 때가 많다. 과도한 부정적 반응은 오히려 정서발달에 방해가 된다.
6세 이후
언어, 감각 발달이 어느 정도 완성된 6~7세 즈음부터는 아이도 이제 게임을 할 수 있다. 우리 아이도 그때쯤부터는 제법 게임을 게임답게 즐기기 시작했다. 게임의 한계와 룰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원하는 것을 얻으며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게임 안의 퀴즈를 풀기위해 머리를 굴리고 공주를 구출하려고 했다. 자신의 두뇌와 신체 능력을 사용해서 성공 경험을 하고 스스로를 뿌듯해 하기 시작했다. 물론 잘 안되면 실망하기도 하고 엄마에게 깨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처음에는 조작이 쉽지 않으니 부모에게 게임을 시키고 아이는 구경하는 경우도 많다. 아이가 엄마 옆에서 훈수를 두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거든 그것이 효과적이던지 아니던지 상관없이 긍정적으로 반응해주면 좋다.
아이가 엄마 생각에 좋아보이는 해법 제시 했을 때 - "좋은 아이디어인걸?"
아이가 엄마 생각에 별로인 해법을 제시 했을 때 - "발상이 정말 참신하다!"
(엄마가 좋고 나쁘게 느끼는 것일 뿐 사실 해법에 좋고 나쁨은 없다. 가끔은 엉뚱해 보이는 해법이었으나 의외로 좋은 결과가 날때도 있다. 그리고 엉뚱함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가 없는 것보다 낫지 않은가? 어른들은 엉뚱한 아이디어조차 생각해내지 못할 때도 많다.)
그리고 너무 어렵지 않은 게임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성공 경험이 많을수록 유능감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어려운 게임을 굳이 하고싶어한다면 엄마가 억지로 못하게 끌고 갈 필요는 없다. 실패 경험이 반복되면 저절로 흥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모가 섬세하게 관찰하고 지도하면서 적절하게 아이와 게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게임을 즐기기 좋은 시기는 7세~12세 정도가 될 것이다. 12세쯤 되면 사춘기가 시작되고 아이는 부모와 함께 노는 것보다 또래집단과 노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된다. 이때는 함께 게임을 하고 싶어도 아이가 같이 놀아주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7세부터 게임을 꼭 시키라는 말은 아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와는 책을 보자.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와는 운동을 하자. 자연을 좋아하는 아이라면 캠핑을 가자. 하지만 당신의 아이가 게임에 푹 빠져있고 당신이 지금 그것때문에 걱정이라면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도 아이와 좋은 관계를 쌓고 자존감을 높여줄수 있다는 뜻이다. 사랑받은 아이는 자존감이 높을 수 밖에 없다. 핵심은 아이의 관심사를 따라가며 함께 상호작용하며 많이 웃고 놀고 사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