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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Oct 12. 2022

게임을 특별하게 만드는 엄마의 실수

"얘들아, 게임만 할거야? 그만 좀 하고 같이 놀자!!"

어른이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다. 우리 딸이 집에 놀러온 친구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종종 딸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올 때가 있다. 그러면 유진이는 다양한 놀이를 할 생각에 잔뜩 설레여 있는데 친구들은 핸드폰, 컴퓨터만 하려고 한다. 집에서 못 하게 하기 때문이다. 조금 하다 말겠지 싶어서 놔두니 갈때까지 게임만 한다. 평소에 못하니 할 수 있을때 잔뜩 하려는 마음인 것이다. 그 아이 마음에는 못하게 한것들에 대한 결핍이 가득한 것 같다. 그러면 풀이 죽은 딸아이는 나에게 와서 속상함을 토로한다.


'우리집에 왜 놀러온건지 모르겠어...'


우리집은 게임 시간 제한 규칙이 따로 있지는 않다. 가끔은 내가 먼저 같이 게임하자고 말하기도 하는데 오히려 아이는 게임은 이제 재미없어. 술래잡기, 간지럽히기 놀이가 하고 싶다고 한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둘은 왜 그토록 죽고 못사는 사이가 된걸까? 나는 그 둘이 이어질 수 없는 환경이었기에 더욱 서로에게 빠져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만해도 어릴적 엄마가 만나지 말라는 남자는 더 악착같이 만났으니까 말이다. 엄마가 입지말라는 미니스커트를 입고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다녔다. '엄마가 나에 대해서 뭘 알아? 내 인생은 내꺼야!' 하는 마음이었다.


인형놀이 시간을 정해 놓는 집은 드물다. 보드게임, 레고놀이도 마찬가지다. 통틀어 하나의 놀이로 생각해 자유시간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게임은 다르다. 게임은 일반 놀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유난히 게임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금지 규칙을 정해놓다. 게임은 따먹으면 안되는 금단의 사과가 된다. 엄마의 두려움과 오해로 인해 아이에게 게임은 아주 특별한 것이 된다.



게다가 관계가 약한 상태에서의 통제는 저항을 크게 불러 일으킨다. 이미 싸움 구도가 되었기에 상대의 말을 따르면 내 인생의 주도권이 상대에게 넘어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서 뿐만 아니라 부부관계,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적의 말을 들을 순 없지 않은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겠다는 의지다. 어찌보면 건강한 표현이다.


오히려 너무 순종적인 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내 인생을 남에게 휘둘리는 사람 안에는 어마어마한 분노가 쌓이기 때문이다. 쌓이고 쌓이다 병이 나거나 한꺼번에 폭발할 수도 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을 한 두명 정도 쉽게 떠올릴 수 있지 않은가?


정말 친밀한 관계에서도 제한, 통제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이미 규칙이 자리 잡혀 갈등이 없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규칙을 지키는데 있어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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