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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Oct 05. 2022

게임하는 시간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게임 허용 시간

게임의 순기능과 활용방법에 대해 설명하면 어머님들은 두려운 눈빛으로 되묻는다.

"그럼 하루 종일 하게 둬도 된다는 건가요?"


몰입의 힘이 강한 아이들에게 경계를 주는 방법을 모르는 데다가 게임의 부작용을 너무 많이 들은 탓이다. 집중력도 떨어지고 자극이 너무 심해 책과 공부에서 멀어진다고 한다. ADHD 가 될 확률도 많단다. 이러다가 정말 아이를 망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문제는 게임 시간에 있는 게 아닌데 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 있을까?


우리 딸 유진이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푹 빠져 연달아 몰아서 보던 때가 있었다. 그맘때 아이는 밥도 티비 앞에서 먹었고 슬라임 놀이도 티비 앞에서 했다. 몇 날 며칠을 일어나면 애니를 보기 시작해서 중간중간 쉬었다가 다시 애니를 봤다. 우리 딸은 세 살 때도 밤새워 가위질을 할 정도로 뭔가 하나에 빠지면 놀이든 게임이든 이렇게 끝을 보곤 했다.


아이가 일주일 동안 주야장천 게임만 한다면 마음이 어떻겠는가?

아니, 한 달간 애니만 본다면 어떻겠는가?


아마 엄마들은 아이가 단단히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상상 속에서는 폐인이 되어 티비만 보고 있는, 잉여인간이 된 내 아이의 미래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밥벌이도 못하고 나이가 들어서까지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자식이 되는 건 아닐까? 아이가 죽을 때까지 부모의 족쇄가 되어 시달리게 되는 건 아닐까? 눈앞에 이런 모습이 어른거린다. 결국 부글거리는 화와 두려움에 압도되어 아이에게 버럭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게 된다.


"당장 꺼! 컴퓨터 부숴버리기 전에!!!"

하지만 나는 아이가 그렇게 애니를 보는 동안에도 별로 불안하지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엄마와 아이가 그 애니를 함께 보며 깊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요괴와 퇴마사가 날아다니는 그 세계에 풍덩 빠져 아이와 나는 함께 울고 웃으며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저다 가다 주인공이 죽으면 어떻게 하지!!"

"엄마! 주인공은 절대 안 죽어! 애니의 기본도 몰라?"


"아 졸리다! 다음 편 너무 기대되는데..."

"그럼 한편만 더 보자. 대신 다음 편은 푹 자고 일어나서 내일 제대로 보는 거야!"


너무 재미있어 새벽까지 보고서는 다음날 아침 서로의 다크서클을 보며 함께 후회한 적도 있다. 이렇게 둘이 푹 빠져 보다가 내가 바빠서 아이에게 다음 편은 혼자 보라고 하면 아이는 엄마와 함께 봐야 한다며 보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당연하다. 우리도 혼자 보는 영화보다 남편과 함께 수다 떨며 보는 영화가 훨씬 재미있지 않은가? 같이 보는 재미가 얼마나 큰지 아이도 아는 것이다.


게임하는 아이가 불안한 이유는 부모와 아이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의 눈빛을 볼 수 없고 그렇기에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가 없다. 만약 아이가 게임하는 것이 불안하다면 엄마와 아이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돌아보자.


아이와 정서적으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면 엄마는 아이의 눈빛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의 눈빛을 보면 지금 아이가 환희에 차 있는지 현실이 우울해서 게임으로 도망가있는지 알 수 있다. 아이의 눈빛이 강한 자극에 중독되어 흐리멍덩해져 있는가? 아니면 즐거움에 반짝이고 있는가? 어떤 아이던지 인생의 목표가 지금 눈앞에 있는 이 게임 일리가 없다. 아이는 더 멀리 나아가는 과정에 있을 것이고 엄마는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의 관심과 재능을 더 폭넓은 시야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게임을 전혀 하지 않는 아이라면 문제가 없을까? 아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는 듯 보이는 아이라 하더라도 부모와 연결이 끊어진 채 외롭게 고립되어 있다면 똑같이 문제다. 그 아이는 자신의 결핍을 채울 무언가를 찾아 해메일 것이기 때문이다. 또래에게 과하게 집착하다가 건강하지 못한 집단에 어울리게 될 수도 있다. 또는 이런 아이들의 외로움을 이용하는 범죄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온라인 그루밍 범죄는 이렇게 외롭게 고립되어 있는 아이들이 타깃이다. 이런 아이들은 문제를 알아채고 도와줄 부모가 곁에 없기 때문에 이런 피해에 더 취약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임하는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와 함께 하자. 모르면 구경이라도 하고 배우면 된다. 아이는 가르치며 유능함을 가져갈 것이다. 아이와 게임을 함께 하면 대화를 나눌 거리가 무궁무진하게 생겨난다. 감동포인트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논쟁할만한 여지도 많을 것이다. 게임 캐릭터 흉내를 내며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을 수도 있다.


이런 시간들이 아이에게 줄 깊은 만족감과 연결감은 어떤 게임도 충족시켜줄 수 없다.


아이와 함께 게임을 하면서 아이와 관심사를 파악하고 친밀감을 깊이 다지자. 그것을 바탕으로 아이가 자신의 삶을 다채롭게 채워가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자연스럽게 확장하도록 불쏘시개가 되어줄 수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게임 시간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에게 무제한으로 게임을 시키라는 뜻은 더더욱 아니다. 아이와 사랑을 나누는 수많은 도구중에 하나가 게임이 될 수 있으므로 아이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게임을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신의 아이가 게임에 푹 빠져있고 당신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더욱 유용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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