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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흔한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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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Sep 08. 2022

엉거주춤의 미

초4 딸내미의 사춘기 


내 딸은 사춘기가 왔을까?


나는 외동딸을 키우고 있으니 딸아이의 변화는 나에겐 늘 첫경험이다.

‘엄마 미워!’ 도 처음이었고

‘엄마 사랑해’ 도 처음이었다.

요 작은 꼬맹이 모든 '처음' 때문에 내 마음이 얼마나 오르락 내리락 했는지.

아이의 처음은 늘 설레고 또한 긴장이다.


초4인 내 딸은 이제 막 사춘기를 시작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내 딸은 사춘기다!” 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참 애매한 상태다.


어떤 때는 청소년 같다가

또 어떤 때는 아이 같다.


큰 변화라고 하면 올해부터 체육이 있는 날은 자발적으로 브래지어를 착용하고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엄마를 닮아) 가슴이 꽤 큰 편인데

작년에는 그렇게 말을 안듣더니

올해는 체육시간에 줄넘기가 있으니 스스로 챙긴다.

깜빡 잊고 간 날은 남학생들을 등지고 줄넘기를 했단다.

왜 등졌는지 안다.

암~ 그 민망한 출렁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알지.


등교하는 모습도 달라졌다.

교문에서 학교가 떠나가라 큰소리로 “유진아 사랑한다!”를 외쳐야 비로소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등교하던 모습도 사라졌다.

오히려 소리치지 말라고 당부한다.

예전에는 사랑을 외치는 부끄러움을 엄마가 감내했다면 이제 반대가 되었다.

그럴수록 더 외치고 싶은 청개구리 엄마 마을을 알려나?


애지중지 키울 만큼 키웠다.

외로울 때 이 녀석한테 참 많이 의지했다.

사랑 많이 받았다.

물론 지금도 많이 받고 있다.


이제 독립하는 아이를 붙잡아서는 안 되지만

그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얼마 전 학교 근처에서

나와 잡고 있던 손이 부끄럽다며 아이가 손을 놓자고 했다.

아기 같아 보일까봐 싫었나보다.

그래서 손을 놓고 한 발 앞서 걸었다.

많이 컸구나 싶기도 하고 길도 좁은데 잘 됐다 싶었다.

그런데 아이가 돌연 뒤에서 불평을 했다.


“손을 놓자고 했지 따로 걷자고 한건 아니야!”


허허. 이 좁은 길에서?

손은 안 잡고 나란히 걷자니 얼마나 불편하던지...


함께도 아니고 따로도 아닌 이 애매함이 초4의 사춘기일까?


목욕을 할 때도 난감하다.

분명 심심하니 엄마도 들어와 변기에라도 앉아있으라 했던 녀석이,

욕조에 있는 자기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대뜸 이런다.


“그렇게 뚫어져라 보지는 마!”


허허. 그럼 난 뭐 하라고..?

그래서 요즘은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본다.

그러다가 아이가 말을 걸면 그때야 바라본다.

그러다가 말이 끊기면 눈을 돌린다.

<빤히 보기> 는 금지니까.


이 아이에게 딱 맞는 거리는 뭘까?

아마 애초에 완벽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사춘기와 아이의 그 어딘가에서 엉거주춤 머물고 있는 우리 초4 딸에게는 말이다.


내 딸은 지금 헷갈리는 중인가보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아이가 되고 싶은지,

엄마와 함께이고 싶은지 따로이고 싶은지.


그 엉거주춤함에 함께 엉거주춤 장단을 맞추며 우린 변박자의 춤을 추고 있다.

완벽한 거리를 포기하고 이 엉거주춤의 미를 느껴본다.


종종 함께 손을 잡았다가

또 손을 놓아가면서.


그럼 뭐 어떤가.

내 삶도 늘 엉거주춤 했던 것을.

이렇게 내 딸과 나는 오늘도 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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