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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원 생활, 영어 대신 요리 실력이 는다

by SingleOn

미국에 사는 엄마들이 가장 많이 하는 소리 중 하나가 ‘영어는 안 늘고 요리 실력만 늘었다’ 아닐까? 나는 그게 처음에는 집에서 시간이 많아서 요리가 취미가 붙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막상 살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국에서 살라니까 진짜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으면 치 소는 물가와 Tip 문화를 감당하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밖에 나가 외식으로 한식을 먹으려면, 진짜 웬걸, 내가 해 먹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보니 그냥 집에서 많이 해 먹게 되고 그러다 보니 요리가 느는 것이었다.


한국에 있었을 때 살림을 일절 하지 않았던 나는 미국 와서 처음 해보는 요리들이 너무 많았다. 멸치볶음, 어묵볶음, 부추겉절이, 콩나물 무침.. 한국 식당에 가면 잘 먹지도 않던,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당연히 깔려 있는 일상적인 반찬들을 내가 직접 해 먹을라니, 이게 이렇게 손이 많이 가고 힘들 일인가 싶다. 그리고 이 반찬들은 더 이상 밥상에 의례 깔려 있는 곁다리 신세가 아닌 유일무이 단독 메인 반찬이 되어 버린다. 반찬 여러 개를 동시에 펼쳐 놓으며 먹는 호사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다.

그래도 신기하게 매일 하루 세끼를 이 것 저 것 해 먹다 보니 요리가 손에 익고, 할 줄 아는 게 많아지고, 시간도 제법 단축되며 요령도 생기게 되었다. 아, 이래서 요리 실력이 느는 거구나.. 많이 해서. 역시 실력을 늘리는 데는 양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구나.. 세상의 당연한 이치를 또 이렇게 직접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엄마랑 살 때는 그냥 냉장고에 남는 반찬 비벼 먹는 게 비빔밥인 줄 알았는데, 여기 와서 비빔밥을 먹을라니 들어갈 재료를 하나하나 준비해서 해 먹어야 한다. 아, 비빔밥이 이렇게 손 많이 가는 고급 음식이었다니... 일하다가 시간 없어 간단히 사 먹던 김밥은 또 어떻고? 먹을 때 간단한 음식이 해 먹기도 간단한 건 아니라는 걸 매 순간순간 깨달으며 사는 중이다.

원재가 그랬다. 자기는 살면서 엄마가 해 준 밥을 이유식 포함해서 50번도 못 얻어먹은 것 같은데, 미국 와서 엄마가 해 준 밥을 이렇게 많이 먹게 될 줄 몰랐다고. 나도 그랬다. 내가 내 손으로 이렇게 매 끼 딸아이 밥상을 차려 주는 순간이 올 지 한국에 있었을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야 엄마가 계셨고, 사실 사 먹을 것도 시켜 먹을 것도, 간단하고 편한데 맛있기까지 한 것들이 너무 많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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