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고

by 이대희

변장한 축복(아버지의 해방일지)

죽은 자는 그림자를 가질 수 없다. 당연하다.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기에 그 흔한 그림자마저도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향도 없고 색도 없는 그림자. 단순히 있는 것의 모양만을 나타내는 것인 그림자. 태양이 뜨거워질수록 그림자는 점점 진해진다. 마치 상처의 깊이가 깊어지는 만큼 흉터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것처럼.

정지아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주인공 아리가 이승에서 점점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붙잡으며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이승에 있던 자가 저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망자를 기억하는 소설은 흔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펼쳐내는 방식이 달랐다. 책 그 자체에서 주는 잔잔한 감동뿐만 아니라 읽는 동안 내 생애를 관통하는 듯한 알 수 없는 감정이 요동쳤다. 알고 싶었다. 도대체 이 감정은 무엇인가? 소설을 읽으며 따라가다 보니 어느 때인지는 모르지만 제자리를 잃고 헤매고 있던 감정을 찾게 되었다.

이 소설은 아버지와 딸이 겪은 시간들을 각자 다른 관점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믿고 있던 이데올로기의 신념을 자신의 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딸 아리는 아버지의 무거운 신념 따위는 관심조차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 애쓰지 않았다. 나 역시 아리와 같았다.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중학교 1학년, 나는 빛을 잃어버리는 실명과 함께 아버지와의 관계마저 잃어버리게 되었다. 장애로 힘겨워 하는 아들과 장애를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 사이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어렵다. 애지중지하던 막내아들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었다는 사실은 아버지에게는 믿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목놓아 소리치는 아들을 애써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아버지가 시각장애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큰 글자를 나의 코앞에 대고 읽어보라고, 읽을 수 있다고 말을 한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날 그 말은, 얇아진 나와 아버지의 인연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 당시 나에게 필요했던 것은 차가운 명령이 아니라 따뜻한 사과였다. 아버지의 사과는 아니다. 그냥 누군가가 미안하다고 말해주었으면 했다. 갑자기 너의 삶이 비틀어져버린 것에 대해 미안하다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현실을 조금씩 인지하게 된 아버지는 나의 장애를 스며들 듯 받아들인 것 같았다. 아버지와 함께 시골집을 찾던 날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렸다. 정작 울고 싶은 사람은 나인데 말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관점과 나의 관점은 너무도 차이가 컸다. 소설 속 주인공 아리와 아리 아버지가 시대적 사상을 받아들이는 온도의 차이처럼 말이다. 좁혀지기 힘들 것 같던 나와 아버지의 거리는 나의 변화로부터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결혼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고 아버지라는 어색한 이름표를 달았다. 나의 이름표에 익숙해질수록 좁았던 내 생각의 시야는 점점 넓어졌다. 아니 무지해서 해석할 수 없었던 순간들이 재해석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내 아이가 코로나19에 감염돼 엄청난 고열로 매 시간을 병마와 싸우는 과정에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작 하는 말이라고는

“물 좀 마셔볼래? 괜찮아, 아가. 씻은 듯이 나으면 장난감 사줄게, 우리 아기 옆으로 누워볼까?”

온몸이 뜨거워 지쳐가는 아이에게 난 이런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더욱 가슴을 저미게 만드는 것은 코로나19 감염의 시작이 바로 나 때문이라는 사실이었다.

소설 속 아리는 결혼을 앞두고 파혼에 이르게 된다. 짐작했듯이 파혼의 이유는 바로 아버지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수식어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주인공 아리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 장애인이 된 나를 바라보는 나의 아버지의 마음과 코로나19 감염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아들을 바라보는 나, 그리고 딸 아리의 처지를 묵묵히 바라봐야만 했던 아리의 아버지.

이들의 공통된 마음은 미안함이다. 신념이나 관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으로서의 도리였다.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도리는 옆에서 아이를 지켜보며 든든한 산이 되어 주는 것이다. 독서에서의 깨달음은 자신의 경험과 비례하여 그 깊이가 깊어진다고 한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젊은 시절 읽었다면 지금과 같은 뭉클함이 찾아오지는 않았겠지. 아리 아버지의 감정보다는 아리의 마음에 더욱 공감하며 딸의 인생을 망가뜨린 아버지에 대해 원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된 나의 생각으로 소설을 읽고 내 생각을 확장하여 나의 지난 인생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아버지를 원망만 했던 지난날이 후회되고 아버지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당신이 저에게 보여주신 것은 사랑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버지.”

하지만 지금 나의 용서를 받아 줄 아버지는 이 세상에 없다. 옅은 아버지의 그림자가 오늘따라 몹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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