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01.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11

자전거길을 산책하다

나만의 괴산 지도를 펼쳐 놓고 어디로 떠날까 살펴봅니다. 제가 괴산으로 귀촌하고 제일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마분지에다 괴산 지도를 종이로 그려 놓은 일입니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먼저 그려 대강의 위치를 잡은 다음 지방 국도와 물줄기를 생명체의 실핏줄처럼 그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네이버 지도를 참고해 가고 싶은 곳을 담았더니 나만의 괴산 지도가 완성되었군요. 내가 만든 괴산 지도가 관광공사에서 만든 괴산 관광 지도보다 더욱 정감이 갑니다.     


우리 부부가 괴산에 내려온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근처 풍광 좋은 곳 대부분을 두루두루 다녀왔습니다. 아내는 평생 가야 할 곳이니 천천히 하자고 하지만, 어쩐지 제 마음은 자꾸만 분주해집니다. 제 마음이 분주해지는 만큼 지도의 디테일은 점점 더 풍성해졌지요.    

 

그러다 문득 자전거 길에 마음이 꽂혔습니다. 연풍에서 괴산 가는 지방 국도길이 물길 따라 이어져 있는데요, 그 국도길 곁에 나란히 자전거 길이 있답니다. 우리 집에서 작은 고개 하나만 넘으면 바로 자전거 길이 시작된다는 걸 발견하고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기뻤습니다.      

칠성면까지 자전거 길을 걸어서 두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을 것 같아 칠성면 주민센터를 오늘의 목적지로 잡았습니다. 올여름 우리 집 강아지 푸딩이를 이곳으로 데려올 예정인데 푸딩이와 함께 할 산책 코스로 자전거 길이 딱 좋을 것 같았습니다. 푸딩이와 마을 길을 산책하다 보면 동네 개 짖는 소리에 푸딩이가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치곤 했었지요^^     


자전거 길을 향하는 고갯길에서 동네 분들을 만났습니다. 이럴 때 우리 부부는 무조건 먼저 인사를 건넵니다. 저기 보이는 저 집에 새로 이사 왔다고 인사를 하니 60대 중년의 남자가 반갑게 맞이합니다. 자기도 초등학교 졸업 후 마을을 떠났다가 50년 만에 고향으로 다시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저기 새로 축대를 쌓고 있는 집이 자기 집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저 집에서 막걸리 한잔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 봅니다.     

자전거 길은 자전거는 고사하고 산책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물길 건너 작은 산만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습니다. 길가의 나무들도 꽃과 열매가 져서 을씨년스러웠지만 한적하게 산책하기에는 좋았습니다. 한참 걷다 보니 청둥오리들이 하천에서 떼를 지어 헤엄을 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마치 지인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웠습니다. 고고하게 날아가는 백로도 있어 운치를 더합니다. 하얀 백로는 어째서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창공을 날아오르지 않는 것일까 궁금해하는 내게 아내는 하늘에도 자신의 길이 따로 있는 법이라며 설법을 전합니다. 합장!     


드디어 자전거 길에서 자전거 한 대를 만났습니다. 20대 초반의 청년입니다. 나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사진 한 장 찍어도 되냐며 말을 걸었습니다. 빨간 자전거가 예쁘다고 덕담을 건네자 청년은 할머니 자전거라고 합니다. 칠순의 할머니가 빨간 자전거를 타고 백발을 휘날리며  질주하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 우리 부부 버킷 리스트에 칠순 기념 자전거 라이딩을 추가했습니다. 아내에게 빨간색 전기 자전거를 선물하겠다고 하니깐, 자전거는 온전히 다리 근육으로만 움직여야 하는 거라면서 전기 자전거는 사양하겠노라고 어깨를 씰룩입니다.     


자전거 길과 일반 국도와 합쳐지는 길에서 길을 잃을 뻔했습니다. 파란색 자전거 선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내가 파란색 선이 있어야만 자전거 도로라는 다소 전문적인 식견을 드러내자 아내는 다소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나는 사라진 파란색을 찾기 위해 자전거 앱을 열고 열심히 탐구하고 있는데 아내가 자전거 도로 안내판을 발견하고 나를 그리로 인도합니다. 

아멘!    

 

국도와 합쳐진 자전거 길은 다소 위험해 보입니다. 나는 그 길을 걸으며 자전거 복장이 왜 화려해야 하는지를 안전 공학적 관점에서 아내에게 설명했습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다시 자전거 전용도로가 보입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입니다. 평화롭게 자전거 전용도로에 들어서니 국민안전처 선정 10대 물놀이 안전 명소 중 하나라는 외쌍 유원지가 나타났습니다. 국민안전처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물놀이 안전 명소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겨울 강가에 캠핑족들이 살얼음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 고즈넉해 보입니다. 이곳은 속리산 쌍곡계곡으로 들어서는 초입이어서 여름 성수기에는 피서객들로 넘친다고 합니다.      


칠성면까지 가면 돌아오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가 빠듯할 듯 해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청국장에 옥수수 막걸리 반주를 곁들였는데 음식 궁합이 잘 맞았습니다. 낮술에 알싸해진 영혼은 계곡을 향했습니다. 얼음장 밑에서 흘러나오는 시냇물 소리가 맑고 청아합니다. 마치 얼음장 아래서 소리 없이 흐르다 세상 밖으로 나오면서 환희에 찬 노래를 부르는 것 같습니다. 하얀 얼음장이 남아 있는 겨울 계곡은 바라보는 것도 근사하지만 물소리를 듣는 것은 감동입니다. 겨울 시냇물 소리는 청아한 파장으로 답답한 가슴을 풀어주고, 촉촉한 입자로 메마른 가슴을 적셔줍니다. 외쌍 계곡에서 겨울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속리산 산마루에 걸쳐 있는 구름이 풀어지며 따뜻한 햇살이 계곡 가득 퍼져옵니다. 

작가의 이전글 미선로 교동길에서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