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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03. 2023

보거스의 명랑 에세이

새해를 시작하며

나의 이름은 최재식이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최고로 재미있게 식사하자 최재식입니다.’라고 말한다.

그런 나의 소개에 남자들은 격렬한 적의 혹은 무관심으로 반응하는데, 여자들은 무조건 경계심을 무장해제하고 미소로 화답한다. 낯선 타자와 조우했을 때 남자들은 서열을 정하려고 하고 여자들은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 오우 아름다운 여성성이여^^


재미있게 식사하자는 맛있게 식사하자 보다 고도의 함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재미있게 라는 말속에는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미덕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사할 때 혼자서 맛있게 먹을 수는 있지만 재미있게 먹기는 어렵다. 혼자서 재미있게 식사하는 사람을 우연히 엿보게 된다면 그 사람을 재미있게 관찰하게 될 것이다.


내가 삶의 가치로 재미를 좌우명처럼 간직하게 된 계기는 생뚱맞게 금지곡 때문이다. 다 아시다시피 독재 시절 금지곡이 있었는데 금지곡의 이유가 명랑하지 않아서였다. 그때부터 명랑하게 살기로 결심했다. 명랑하지 않으면 내 삶이 금지 당할까봐 두려워서였기 때문이다.


재미를 내 삶의 우선 가치로 삼은 후 나는 재미있는 삶을 추구했다. 수업을 할 때도 좋은 수업보다 재미있는 수업을 선호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노래도 부르고 게임도 하고 마술도 한 거였다. 물론 수학을 재미있게 가르치려고 꾸준히 노력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학술 토론보다는 낄낄거리는 대화가 좋았다. 그런데 가끔 대화의 분위기를 토론으로 끌고 가려는 친구들이 있다. 토론도 재미있는 토론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재미없는 토론이다. 남들 다 아는 이야기를 혼자만 안다는 듯이 큰 목소리로 떠들거나 아무도 관심 없는 주제를 억지로 이끌어 나가려고 하는 경우이다. 제일 황당한 경우는 내가 더 잘 아는 분야인데 그 친구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을 때이다. 그 가르침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마구 화를 내는 친구도 있다. 친구여~ 올해는 그러지 말자!


올해도 특별한 계획없이 그냥 살고 싶다. 그런데 그냥 산다는 것은 실로 지난한 일이다. 우리의 욕망이 그냥 살게 내 버려 두지 않는다. 나아지려고 애쓰고 그러다 보면 계획해야 하고... 아니 나아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우리 삶을 간섭하는 것들은 많다. 있는 그대로 보기 어렵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냥 살고 싶다면 나의 욕구와 타자의 욕구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찬찬히 들여다보고 알아 차려야 한다. 그래야 그냥 살 수 있을 것이다.


찬찬히 사는 것이 그냥 사는 한 방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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