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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05.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13

싸부에게 전지 훈련을 받다

오늘은 겨우내 내린 눈이 녹아서 물이 된다는 우수입니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는 만큼 봄 농사를 대비하여 ‘전지 훈련’을 떠났습니다. 전지 훈련이라고 하니 프로 야구팀이 따뜻한 남도에 훈련을 떠나는 것처럼 프로 농부가 몸을 만들러 어디 떠나는 걸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시는 군요. 내가 말한 전지 훈련이란 말 그대로 겨울 나무의 가지를 정리하는 전지에 대해 농사 싸부에게 한 수 배우러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의 농사 싸부는 영동 백화산 아래에서 텃밭 농사를 짓고 계신 분이죠. 나의 아내가 주말마다 주말 농사 하러 간다고 했던 바로 그 곳 주인분이십니다. 그 분은 격물치지의 끝판왕으로서 뭐든지 원리를 파악하여 농사일에 필요한 건 스스로 다 해결하십니다. 아, 맥가이버를 떠 올리시면 그 싸부님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군요.     

싸부님은 이미 전지 작업을 마쳤는데, 내게 전지 훈련을 시키기 위해 개복숭아 나무 두 그루를 남겨 놓으셨습니다. 전지 가위와 톱을 꽂아 넣을 수 있는 벨트를 허리에 매는데 석양의 무법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 이제, 석양의 무법자처럼 총을 아니 전지 가위를 뽑아야 겠군요. 하지만 개복숭아 나무 앞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무성한 줄기 중에서 어디부터 잘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싸부님은 당황하고 있는 나를 위해 전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굵은 줄기에서 퍼져 나온 많은 가지 중에서 살리고 싶은 주인공 가지를 선택하고 나머지 줄기들은 과감하게 자르라고 합니다. 특히 주인공보다 높이 꽂꽂이 서 있는 가지를 쳐 내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야 땅에서 올라오는 수액이 주인공 가지를 향할 수 있다고 합니다. 자르려는 가지는 마디의 위치를 고려해 자르고 땅으로 처진 가지도 자르라고 합니다.      

설명을 들으니 이론은 머리로 이해가 가는데 막상 몸으로 해보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나는 먹물인가 봅니다. 세상을 관념으로만 이해했던 그동안의 삶이 부끄러웠습니다.    

 

싸부가 시범을 보입니다. 굵은 가지는 톱으로, 잔가지는 전지 가위로 자르는 것이라고 하면서 직접 시범을 보여주더니, 이제 나보고 스스로 해 보라고 합니다. 싸부가 할 때 쉬워 보였던 톱질이 내가 하려니까 잘 안됩니다. 싸부는 톱질은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결로 하는 것이라면서, 스윽스윽 다시 한번 시범을 보입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수직의 결로 톱질하자 굵은 가지가 툭 부러집니다. 전지 가위 사용법도 깊숙이 찔러 넣고 나뭇가지를 비틀면서 하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손으로 해보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싸부의 도움없이 혼자 전지 작업을 했습니다. 미숙했지만 가지가 부러질 때마다 남몰래 뿌듯했습니다. 손아귀에 힘을 주면 싹뚝 잘라지는 맛이 느껴졌습니다. 톱질을 악기를 켜듯이 리듬을 타면서 하자 가지가 꺽이기 시작하는데 역시 손맛이 느껴집니다. 나무의 중심이 비워질수록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 했지만, 쓸모있는 가지를 위해 쓸모없는 가지를 미리 잘라내야 하는 사실에 엄정함이 느껴졌습니다. 

    

점심을 먹고 전지 훈련을 한 차례 더 해야 했지만, 오후에 우리 집에 손님이 올 예정이어서  서둘러 일어났습니다. 전지 훈련은 반복 훈련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내일 괴산 우리 텃밭에 있는 나무들을 전지하려고 하는데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많은 가지 중에 어느 것을 주인공으로 선택해야 할 지부터 감이 안 잡힙니다. 일단 저질러 봐야겠지요. 그 결과가 어쩐지 제대로 가지치기가 되지 않은 채 전위적인 예술 작품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싸부님이 우리 부부를 위해 TV 받침대를 원목으로 짜 주셨는데 바닥에 있던 TV 격이 확 달라졌습니다. 공장 제품처럼 규격화된 제품이 아니고 자연스러움이 살아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싸부 옆집에 사는 젊은 부부는 현판에 쓰라고 결 좋은 참나무 목판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목판을 현판으로 사용하려고 하는데 ‘연풍연가’라는 당호를 새겨 놓을 작정입니다.

연풍연가는 연산홍 바람 휘날리는 사랑의 집이라는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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