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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an 12.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14

괴산 오일장 나들이

오늘은 괴산 읍내에 오일장이 서는 날입니다. 괴산 산막이 전통 시장의 장날은 3일과 8일이지요. 우리는 지방 소도시를 여행할 때 시장을 둘러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전통 시장 나들이는  특별히 사야 할 물품이 있지 않아도 그냥 돌아다니며 아이 쇼핑만 해도 즐겁습니다. 그러니 우리 동네 오일장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답니다. 처음 괴산 시장에 갔을 때 입구에 철물점이 많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랬었지요. 그때는 오일장이 아니라 문을 연 가계도 많치 않았고노점상이 없어서 다소 썰렁했습니다.     

우리는 봄 농사를 준비하면서 농기구와 묘종을 구입하고, 노상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을 겸 오일장 시장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겨우내 언 땅을 뚫고 새싹이 피어나는 봄을 맞이하면서 장터도 활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서울 매장 못지않은 화려한 옷들이 천막 매장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봄나물과 한약재들이 나란히 소쿠리에 가득 담겨 있었고, 다이소에 있을 법한 생활용품이 시장 매대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괴산 시장은 생각보다 커서 이곳엔 없는 것이 없습니다. 고무로 된 단화를 장화 대용으로 구입했습니다. 서울에는 없는 신발입니다.     

괴산 시장에는 서민 갑부에도 출연한 유명한 통닭집이 있답니다. 닭다리 8개에 5천 원인데 맛도 좋은지 손님들 줄이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가성비가 뛰어나 먹고 싶었지만, 우리 부부는 줄 서는 것을 싫어해서 그냥 호떡으로 대신했습니다. 역시 호떡은 시장표 호떡이 최고입니다. 종이컵에 담아 치명적인 꿀맛을 즐기면서 시장길을 거닐면 쾌락 호르몬 도파민이 마구 분비됩니다. 그 맛이 시장 나들이의 별미입니다. 정원의 한구석을 꽃밭으로 꾸미고 싶은 마음에 화원으로 들어가 화분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쁜 꽃들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비싸서 망설이다 그냥 나왔습니다.      

농기구를 구입하러 철물점에 들어섰습니다. 철물점이 여럿 있었는데 인상 좋아 보이는 할머니집을 선택했습니다. 전주인이 농기구를 그대로 두고 가셨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농기구가 새롭게 필요했습니다. 잡초를 제거하는데 장대 낫이 있으면 허리가 덜 아플 것 같았습니다. 장대 낫은 보기에 위험해 보이지만 서서 낫질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해서 사용하면 작업 효울성이 높을 것 같습니다. 아내는 물 호스 분사기도 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분사기를 사용하지 않고 호스로 물을 뿌리면 마당의 잔디가 손상될지 모른다는 전문적 식견을 피력해서 나는 즉각 수용했습니다. 텃밭 농사이지만 하다 보면 필요한 물품이 자꾸 생깁니다.     

철물점 할머니의 계산법이 이상합니다. 원가에 주는 것 같은데 서비스로 칼을 줍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우리가 구매한 장대 낫과 호스의 가격을 다른 철물점에 비해 거의 두배 가까이 쌌고 서비스로 준 칼의 가격도 5천 원이나 되었습니다. 철물점이 제법 커서 내가 물건들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기억하냐고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30년 이상 하다 보니 저절로 기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같이 계신 할아버지는 물건을 제대로 찾지 못해 할머니에게 핀잔을 듣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같은 세월을 사셨는데, 할아버지는 한량이었나 봅니다. 나도 한량으로 살고 싶은데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다소 우울해졌습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 이곳저곳을 찾다 결정한 곳은 N식당 입니다. 요일별로 메뉴가 정해져 있어서 음식을 고르느라 갈등할 일이 없고 가격이 무척 착했습니다. 밑반찬도 정갈하고 맛이 좋았는데 그날의 메뉴 음식 오삼불고기도 훌륭했습니다. 적당히 매콤하고 적당히 달달한 오삼불고기는 소주 한잔 곁들이기에 딱 좋은 음식이었습니다. 우리는 요일을 달리해서 이곳에서 식사하자고 약속했습니다. 괴산 읍내에 나들이와서 행복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이곳 N식당에서 매일 다른 맛을 즐기자고 행복한 상상을 한 것이지요.     

괴산 오일장 사람들 인파 속에 있다 보면 희한하게 나도 삶의 충만감에 젖어듭니다. 전원 생활하면 옷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아 서울에서 옷을 정리하고 내려왔는데, 충만감 때문에 바람막이 옷을 한 벌 구입했습니다. 작업용 옷으로 군복도 구입하려 했는데 아내가 말려 미수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길을 걷다 현수막을 보니 봄에 괴산 씨름대회가 있고 가을에 유기농 축제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일장 때 괴산 읍내에 나와 사람 냄새도 맡고 충만감에 충동구매도 하고 각종 행사도 즐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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