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비 주기 그리고 바비큐 파티
드디어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지난 주 가지치기에 이어 이번 주에 할 일은 퇴비 주기입니다.
퇴비를 뿌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비닐을 벗기는 일입니다. 비닐 벗기는 일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비닐을 잡아당기면 삭은 비닐이 찢어집니다. 비닐을 덮은 흙을 삽으로 헤쳐 놓아야 합니다. 흙에 묻혀있던 비닐이 세상 밖으로 나오면 비닐을 슬며시 잡아당깁니다. 살살 달래가면서 슬며시 잡아당겨야 합니다. 그러면 비닐은 고동이 빠져나오듯 흙 속에서 스르륵 스르륵 빠져나옵니다. 이 작업은 언 땅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라서 봄 햇살에 흙이 부푸는 소리를 들은 후에 해야 합니다. 내가 삽질하면 아내는 비닐을 걷어 올리는 일을 합니다. 철저하게 테일러 분업 시스템이지요.
나는 그동안 삽질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농사를 시작하면서 신성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퇴비를 뿌려야 하는데요, 오늘은 감자 심을 네 고랑만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집 텃밭이 대략 150평 남짓 되는데 이걸 하루에 다하면 죽음입니다. 우리가 전업 농부도 아닌데, 조금씩 하기로 했지요.
그런데 어느 정도의 퇴비를 뿌려야 하는가에 대해 아는 바가 없기에 한 이랑당 한 포대씩 뿌렸습니다. 네이버에서 검색도 안하고 그 정도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추측이랍니다.
일단 퇴비를 뿌리고 나서 퇴비가 골고루 섞이도록 곡갱이로 뒤집어 주어야 합니다. 곡갱이 작업 해 보셨나요? 이게 또 장난이 아니네요.
이곳에 처음 이사 와서 동네 분들에게 인사를 할 때였습니다. 아래 집에 사시는 분이 밭 갈 때 관리기로 도와주신다고 했지요. 그때 사양한 것이 무척 후회됩니다. 아랫집은 만평 농사 짓는데 없는 농기구가 없답니다.
학교 후배에게 밭을 갈기 위해서 관리기를 사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내가 기계치인 걸 뻔히 아는 후배가 소를 한마리 키우는 게 좋을 거라고 하더군요.
곡갱이 작업이 끝나자 아내는 다시 삼지창으로 엎어 놓은 흙을 고르게 해야 한다고 합니다.
나는 과실수에 유곽을 뿌리기로 하고 삼지창 작업은 아내에게 위임했습니다.
아내는 그간 3년 동안 주말마다 농사를 지어 온 경험이 있기에 나보다 한 수 위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어려운 삼지창 작업을 아내가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내가 삼지창으로 밭을 고르는 모습이 밀레의 만종보다 더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아내는 나무 주위에 대충 유박을 뿌리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나무 주위를 호미로 파서 그곳에 유박을 뿌렸습니다. 그렇게 해야 유박이 뿌리로 잘 스며들 것 같았습니다.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는 나의 판단입니다. 호미로 나무 주변을 파는 일까지 병행하니 과실수에 유박 뿌리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나는 일을 하면, 중간 휴식 없이 그대로 주욱 하는 못된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휴식 없이 유박 뿌리기 작업을 끝냈을 때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습니다.
축구를 하고 나서 샤워할 때 보다 더욱 좋았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기념비적으로 숯불에 고기를 구워 먹기로 한 날입니다.
그동안 날씨가 추워 바깥에서 고기 구워 먹는 것은 상상도 못했거든요.
마침 푸르고 맑은 봄 햇살이 마당에 비치는데 청명이라는 절기 이름이 제격입니다.
숯불이 충분히 빨갛게 달구어진 다음에 고기를 올려놓아야 합니다. 성급한 마음에 고기를 먼저 올려놓아 태운 고기도 많았지만, 숯불 바비큐가 맛있게 완성되었습니다. 석쇠 한구석에 굴비를 올려놓았는데 완전 짱입니다. 숯불엔 목살 보다 굴비가 더욱 기막히다는 팁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역사적인 날을 맞이하여 하늘도 안온한 햇살을 허락하시고 우리 부부는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서로를 위안하며 술잔을 부딪칩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건배가 이어졌습니다.
혼곤한 나의 몸에 무방비로 쏟아지는 햇살과 무방비로 흘러드는 술로 인하여 그날 밤 나는 펠렛 난로 곁에서 빠알간 꿈을 꾸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