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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Nov 29. 2022

미선로 교동길에서 2

이사 청소 그리고 생애 최초 커튼 달기

눈 내리는 소리에 새벽녘 깨었다가 다시 그루잠에 스르륵 빠져들었습니다. 아침 설경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아무도 훼손하지 않은 들판의 하얀 눈을 한동안 바라보다 문득 아침 일찍 도배하시는 분이 오시기로 한 것이 기억났습니다. 오늘은 도배하는 날입니다. 나는 얼른 제설 삽을 들고 나섰습니다. 일요일 아침 조기축구회에서 제설 작업을 여러 차례 했던 경험이 주효했습니다. 부지런을 떨었더니 집 앞 입구까지의 길이 차량이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치워졌습니다. 앞집 아저씨가 나와 인사를 건넵니다. 이렇게 눈을 치우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시골에서는 내가 한 삽이라도 더 눈을 치워야 이웃 눈에 든다고 합니다.     

유투브에서 도배하는 영상을 보았을 때만 하더라도 도배를 우리끼리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답니다. 그러다 문득 천장을 바라보았는데 거기가 난공불락처럼 느껴집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문경 사는 친구 덕배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단칼에 도배사를 부르라고 하네요. 이 세상에는 내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단호히 덧붙이면서 말입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친구의 조언이라 전격 수용했습니다. 그 말이 맞군요. 전문 도배사 두 분이 오셔서 일하는 모습을 보니 흉내조차 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유투브에서 보던 것과 다르게 장비도 많았구요. 전 주인은 녹색의 화려한 색상으로 도배를 해 놓으셨는데 우리 부부는 은은한 그레이 톤으로 바꿨습니다. 은은한 빛깔이 개방감이 있겠지요.     

집 청소도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을 부르라고 학교 후배들이 조언을 해 주었지만 우린 그 돈으로 스팀 청소기를 장만하여 스스로 한번 해 보기로 했습니다. 청소는 제가 좀 하는 편이거든요. 그런데 집에서 청소하는 것과 이사 간 집 청소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특히 부엌 가스 렌지 위쪽 벽의 그을린 묵은 때가 잘 지워지지 않네요. 세제를 담뿍 묻혀 칠해도 소용없습니다. 스팀 청소기로 지긋이 눌러주니깐 조금씩 지워집니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부분은 칼로 긁는 고난이 기술도 구사하였습니다. 창틀에 낀 먼지를 제거하는 것도 장난이 아닙니다. 구석구석 창틀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칼끝에 물 티슈를 말아 깊숙이 찔러 넣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습니다. 청소라는게 그렇지요. 해도 해도 해야 할 것이 눈에 띕니다. 이럴 때는 ‘대충’이라는 거룩한 단어를 실천해야 합니다.      

자, 오늘의 하이라이트 커튼 달기입니다.

우리 부부는 커튼을 알아보기 위해 여러 군데 마트 제품과 홈 쇼핑을 비교해 보고 가성비가 뛰어난 홈 쇼핑 제품으로 전격 결정했습니다. 어쩌면 홈 쇼핑 호스트의 현란한 말솜씨에 무방비로 넘어갔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귀가 얇거든요. 커튼을 다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처음 생각 같아서는 거취대를 못으로 박고 봉을 걸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일단 키가 작은 것이 너무나 한스러웠습니다. 의자 위에 올라가 까치발로 작업을 하는데 전동 나사못이 자꾸만 빠져나갑니다. 다른 사람들 하는 거 봤을 때는 스르륵 못이 잘도 들어가더니 내가 하려니 나사못이 격렬하게 튕겨 나가곤 합니다. 겨우 거취대를 설치하여 커튼이 드리워진 봉을 올려 놓는데 우르르 무너지고 맙니다. 왼쪽이 무너져 왼쪽을 단단히 고정시키면 오른쪽이 무너집니다. 오른쪽을 고정시키면 왼쪽이 무너지고요. 근본적 이유를 몰랐습니다. 나중에 나사못에 석회질이 묻어 있는 것을 보고서야 석회벽이 나사못을 지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거취대를 석회벽 대신에 천장 나무에 고정하기로 했습니다. 천장에 못질을 하려는데 이런 키가 안 닿는군요. 삼각 사다리에 올라 작업을 시도하는데 처음에 제대로 벌려 놓지 않아 다리가 갑자기 벌어지는 바람에 가슴을 쓸어 담기도 했습니다. 결국 아내가 제대로 다 벌어진 사다리를 꽉 잡아 주고서야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자꾸만 빠져 나가는 전동 나사못을 얼르고 달래 겨우 커튼 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런데 짧았습니다. 커튼이 충분히 바닥까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래서 홈 쇼핑은 안된다고 아내는 뒤늦게 비분강개합니다. 하지만 나로서는 내 인생 최초로 완성한 집안 공사(?)의 첫 작품입니다. 실로 대견스러웠습니다. 나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는 아내를 위로하며 나의 첫 작품이니 그냥 받아들이자고 했습니다. 그날 밤 나는 안방 대신 거실의 커튼 옆에서 잠들었는데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날아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첫눈 청소 #이사 청소 #도배하기 #커튼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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