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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ul 23. 2023

사돈과 함께한 울산 여행


사돈이 울산 숙소로 펜션을 예약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크게 감동했다.  펜션에서 허리 띠 풀어놓고 밤이 깊도록 마시자는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었다. 사돈끼리 펜션에서 별빛 아래 장작을 피우는 일도 그럴듯한 낭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즉각 다이어트에 들어갔다. 펜션과 다이어트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으나 어쩐지 나도 몸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나중에 펜션은 숙박만 하는 곳이고 식사와 술은 횟집에서 한다는 말을 듣고서 조금은 아쉬웠고 조금은 안도했다. 안도했다는 말은 술이 약한 나로서는 밤 늦도록 마시다 행여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아내의 다이어트도 즉각 철회되었다.

괴산 집에서 울산까지 고속도로로 가면 3시간이 채 안 걸린다. 지방 국도를 사랑하는 종족답게 우리는 3번 국도를 선택했다. 가는 길에 상주 주막이 있는 경천섬을 들렀다. 작년에 해랑이와 정욱이가 소개해서 알게 된 상주 주막은 대한민국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막이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조선시대 주막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행랑채에서 농주를 즐길 수 있다. 볕 좋은 날 객주촌에 방 하나를 예약하고 달빛 아래서 한 잔 마실 계획이다. 내가 빚은 삼해주가 완성되면 사돈 어른을 모시고 싶다.

경주 양동 마을을 잠시 들른 것도 좋았다. 한반도의 중심 괴산에서 출발했기에 누릴 수 있는 여유이다. 낙안읍성처럼 초가집에서 사는 분들도 계셨는데, 향나무 가득한 언덕 위 초가집에서 전망이 고즈넉했다. 너른 평야를 가로지르는 국도가 새로운 세계로 나가는 길목 같았다.

사돈 내외가 울산 공항 입구에서 우리 부부를 기다리셨다. 펜션까지 우리가 직접 갈 수도 있을 터인데, 울산 초입에서 펜션까지 에스코트하려고 마중 나오신 것이다. 그 고마운 마음이 느껴졌다. ST210 펜션에 짐을 풀었다. 세상에나, 바다가 보이는 펜션이라니.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은 몇 번 묶어 본 적이 있지만, 펜션은 처음이었다. 지척에 보이는 바다의 뷰도 예뻤지만, 방 분위기도 아늑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바비큐를 굽고 따뜻한 욕조를 즐길 수 있는 것이 특별했다. 이렇게 귀한 곳을 예약해 주시다니 고마움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우리 차를 펜션에 주차하고 사돈 차에 합승해 울산의 명소 대왕암 출렁다리로 향했다. 사돈은 우리 점심이 부실했을까 염려하는 마음에 쑥떡을 준비해 오셨다. 쑥떡은 달콤하고 고소했다. 저녁 술만 예정되어 있지 않으면 몇 개라도 먹고 싶을 만큼 맛이었다. 차 안에서 떡을 먹으며 담소를 나눌 정도로 편안한 사이가 되었다. 간선도로 대신 해안을 따라 달리는 옛날 7번 국도가 운치 있었다. 우리 부부는 동해안 오면 무조건 7번 국도인데, 그 마음을 미리 헤아리신 것이다. 대왕암 공원은 소나무 길을 걸으며 바다를 바라볼 수 있어 좋았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피톤치드 향을 만끽했다. 출렁다리는 세찬 바람에 제대로 출렁거렸다. 계곡 위의 출렁다리는 몇 차례 갔었지만, 바다 위 출렁다리는 처음이었다. 우리는 함께 여행 온 동창 친구마냥 연신 수다를 떨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수다와 음식에 있다.

자연산 횟집에서 스끼다시로 나오는 해삼, 전복, 멍게, 소라, 해초도 모두 자연산이었다. 그 맛이 일품이었다. 맛이 좋은지 확인하기 위해 사돈이 일전에 답사까지 하셨다고 한다. 스끼다시가 너무 싱싱하고 맛이 좋아 본격적인 회가 나오기도 전에 술잔이 분주하게 채워졌다. 방파제 너머 끊임없이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우리 가슴도 출렁였다. 안사돈 어머니 집에서 텃밭 농사를 짓는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텃밭 농사 수다에 푹 빠졌다. 그 바람에 나의 아내도 여러 차례 원샷을 꺽지 않고 한방에 마셨다. 얼굴과 몸과 영혼까지 발그레해진 우리는 자식들과 관계없이 좋은 만남을 이어가자고 의기투합했다.

아참, 오늘은 해랑이의 생일이다. 어른들의 축제에 잠시 잊고 있었던 해랑이 생일 축하 케익 커팅을 했다. 케익은 해랑이 시누이가 준비했다. 사돈 집안은 가족 모두 베푸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빈 술병이 일렬로 여러 병 도열해 있었지만, 사돈은 케익 안주로 한 병을 더하자고 하셨다. 그 또한 나쁘지 않았다. 케익 안주에 소주라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그 조합도 기분 좋게 취한 상태에서는 얼마든지 향연이 된다. 생일 케익 안주 삼아 마시는 술에 아이들 결혼에 관한 덕담이 오고 갔고, 우리 만남에 대한 진담이 오고 갔다.

사돈은 언제든 편할 때 울산에 놀러 오라고 했지만, 다음 만남은 상주 주막에서 달빛 소나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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