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산에서 랑이 가족 완전체를 이루다
오늘은 괴산에서 우리 가족이 완전체를 이루는 날입니다.
어제 막내딸 예랑이와 반려견 푸딩이랑 같이 괴산에 내려왔지요. 원래는 큰딸 해랑이도 같이 내려오려고 했지만, 요가 수업 때문에 우리끼리 먼저 내려온 것입니다. 그런데 짐이 많아 같이 온다고 해도 같이 차에 타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푸딩이 집과 살림까지 실어야 했으니 사실상 불가능했지요.
우리 부부의 로망 중의 하나는 랑이 자매가 결혼을 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괴산에 놀러 오는 것이랍니다. 결혼한 랑이 자매가 부모님 댁에 놀러 올 때 손주들을 위해 놀이 공간을 마련해 줄 계획을 벌써 생각해봅니다.
먼저 풍광 좋은 너른 마당에 흔들의자를 설치할 것입니다. 흔들의자에 앉아 마을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푸른 잔디 위에서 푸딩이와 함께 공놀이를 하면 신나겠지요. 어른들은 바비큐 파티를 하고 아이들은 잔디에서 맘껏 뛰어노는 그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눈 내린 겨울이면 눈썰매장을 만들어 줄 요량입니다. 다행히 집에 오르는 길이 야트막한 경사길이어서 눈만 안 치우면 그대로 눈설매장이 됩니다.
서울 집에서 괴산 집까지 오는 대중교통편이 편리합니다.
녹번역에서 3호선을 타고 고속터미널에 내려 괴산까지 고속버스를 타고 오면 우리들이 픽업해 주면 되지요. 버스 터미날에서 집까지 자가용으로 10분 남짓 걸리거든요. 큰딸 해랑이가 축하 꽃바구니를 준비해 왔습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축하한다는 사랑의 엽서도 잊지 않았습니다. 해랑이는 요가 레슨을 하느라 많이 먹지는 않지만, 요리에 관심도 많고 이것저것 조금씩 먹는 걸 즐깁니다.
제과점에 가서 빵도 사고, 김밥도 사고, 닭강정도 샀습니다. 괴산 읍내는 작지만 웬만한 건 다 있습니다. 지금은 시골 분위기가 물씬 나지만 괴산이 관광 명소로 발전하게 되면 이곳 읍내도 번화해지겠지요. 아직은 시골 분위기를 좋아하면서도 괴산이 발전하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마음이 스칩니다.
저녁때 해랑이가 ‘에그 헬’ 요리를 해주었습니다. 에그 헬은 포도주뿐만이 아니라 소맥에도 제격인 요리입니다. 우리는 괴산에서 새롭게 완전체가 되어 역사적인 건배를 했습니다. 작은딸 예랑이는 술을 좋아합니다. 친구들과 밤늦도록 즐길 때가 많았지만 한 번도 취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요. 반듯하게 살아가는 두 딸이 미덥습니다. 너무 반듯해서 자유분방한 내가 딸들에게 잔소리 들을 때가 많습니다. 딸의 ‘반듯’과 나의 ‘대충’이 부딪치는데 백전백패이지요. 딸들의 지나친 잔소리에 내가 가끔씩 삐지기도 하는데 술잔 앞에서 금새 잊혀지고 맙니다. 딸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겹게 술을 따라줍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가족과 한잔할 때가 제일 행복합니다. 2차도 없고 노래방도 없지만, 아내와 딸이 준비한 요리에 술 한잔하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가끔 나도 요리 만드는 것에 참여하기도 하는데요, 언젠가 내가 닭도리탕을 만든 적도 있습니다. 물론 아내가 옆에서 시시콜콜 지도했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아내에게 조금씩 요리를 배울 것입니다. 내가 가족 파티의 쉐프를 담당할 날도 오겠지요.
아이들을 위해서 팰렛 난로를 최고 화력으로 틀었습니다. 펠렛 연료는 뉴질랜드 청정지역에서 자란 소나무 속 피로 만든 작은 나무 조각입니다. 태울 때 냄새도 나지 않고 화력도 좋습니다. 화통을 열고 펠렛 연료를 한 바가지 쏟아부은 다음 토치로 불을 붙이면 신기하게도 불꽃이 아래를 향합니다. 그 불꽃을 바라보며 불멍 때리면 완전 낭만적입니다. 아내는 은박지에 고구마와 밤을 싸서 통 안에 넣었습니다. 난로에는 역시 고구마가 제격이지요. 펠렛 난로 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고구마를 먹는데 우리들 뺨이 불타는 고구마처럼 붉게 달아올랐습니다.
마을에 컴컴한 어둠이 내리면 하늘에 맑은 별빛이 돋아납니다. 우리는 어깨를 추스린 채 마당에 나섰습니다. 해랑이가 오리온자리를 금방 발견하고는 손으로 가리킵니다. 오리온자리를 품은 겨울철 대 삼각형 별자리가 선명하네요. 리켈과 베텔게우스 항성이 오리온자리 세 개의 별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빛나는데, 그 모습이 겨울철 만난 견우와 직녀처럼 보입니다. 오리온자리의 알파별 베텔게우스를 우리 가족의 별로 정해 ‘랑스타’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고개 들어 바라본 밤하늘에 시리도록 맑은 별빛이 쏟아지던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