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자원, 나의 안전기지
주말 아침 대구 카페에 있다가 전혀 모르는 대구 할아버지에게서 익숙한 사투리, 말투, 톤, 어조, 목소리를 느꼈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향수를 느끼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아,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의 원형 이미지는 할아버지였구나.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몹시 양반 같고, 너무나도 선비 같다. 너무 들뜨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고, 요란하지는 않지만 확실한 사랑과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셨다.
몇 가지 장면들을 다시 한번 떠올렸는데,
유치원을 다닐 때 아파트 단지 앞에 유치원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아침 골프를 마치고 매일 유치원 셔틀버스 대기줄을 앞을 꼭 지나가셨다. 그리고 주행중인 차 창문을 열고 그 짧은 시간에, 특유의 어조로 반갑게 내 이름을 부르면서 골프장에서 받은 하얀 설탕 가루가 뿌려진 딸기잼이 들어간 빵을 손을 뻗어 매일 내게 건넸다. 나는 유치원을 가는 아침마다 할아버지가 주는 빵을 기다리는 게 매번 설렜다. (생각해 보니 나는 아직도 나를 데리러 오는 길에 준비한 작은 간식에 사랑을 느낀다.)
엄마가 점심즈음 할아버지께 종종 믹스 커피를 커피잔에 타드렸는데, 초등학생 시절의 나는 커피를 못 마시지만 할아버지 옆에 가서 작은 스푼으로 믹스커피를 한 스푼씩 얻어먹는 게 너무 행복했다. 별거 아닌 믹스커피 한 입이 너무 달콤했고, 매일 커피를 한 스푼씩 뺏어먹는 나를 보며 매번 빠짐없이 귀여워하고 즐거워하는 할아버지가 따뜻했다. (적다 보니 놀라운 점은 내가 자취를 하고 처음 산 잔이 커피잔 세트였다. 꽃과 나비가 새겨진 커피잔을 사고 행복했는데, 커피잔의 모양과 입에 닿는 얇기도 그때의 커피잔과 비슷한 것 같다. 무의식이란...)
시대가 시대인만큼 할아버지는 집에서 담배를 종종 폈는데, 담배 연기 안에서 연기를 이리저리 잡으면서 노는 게 따스하고 포근하고 좋았다. 담배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지만, 나는 사실 그 정도로 싫어하지는 않는다. 물론 직업적인 사명감으로 사람들에게 금연을 항상 교육하지만, 나에게 담배라는 이미지는 그리 나쁘지 않다. 오히려 따뜻하다. (최근에 죽기 전에는 나도 담배를 피우고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 적이 있는데 무의식적으로 '함입'이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기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는 아파트 동으로 종종 놀러 갔다.(시댁이 너무 가까워 엄마는 힘들었다고 했지만... 어린 시절 나는 전혀 모르긴 했다...) 그럴 때면 경비원 아저씨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모르는 다른 주민들이 오빠와 나를 보고 너네가 그 집 손자 손녀구나, 할아버지가 너네를 엄청 아끼는 게 소문이 다 났다며 종종 덕담을 해주셨는데 그게 나는 또 우쭐하고 좋았다.
엄격한 교육관으로 인해 집에서는 TV를 전혀 못 봤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집을 가면 TV를 마음껏 볼 수 있어 할아버지 집만 가면 할아버지의 최애 바둑 채널을 매번 애니메이션 채널로 돌려버렸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할아버지 집에 현지가 와서 할아버지는 정말 너무 좋은데, 바둑을 못 봐서 아쉬울 때가 있다.'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해 주셨는데 그때도 나는 나에 대한 사랑을 확신했다. 바로 바둑 채널로 바꿔드리긴 했지만 불편함을 이야기하는 말에서도 나는 나를 진짜 좋아하시는구나를 확신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여전히 입이 짧았었는데, 내가 편식하느라 생선도 살은 안 먹고 껍질만 먹고, 찌개를 먹을 때도 건더기는 안 먹고 국물만 먹었는데 그런 나를 보면서도 맛있는 부분을 안다며 먹을 줄 안다고 진심으로 감탄하며 웃어주셨던 기억, 젓가락질을 너무 잘한다고 칭찬받았던 기억, 할아버지와는 항상 한정식 집만 가다가 한 번 다 같이 아웃백을 갔는데 나 덕분에 이런데도 와본다며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셨던 기억이 아직도 따스하다.
그 외에도 회색빛 머리를 항상 빗으로 정갈하게 빗던 모습, 음식점을 갈 때면 항상 종업원에게 잘 부탁한다며 유쾌하지만 정중하게 오만 원씩 팁을 주시던 모습, 할아버지가 친구들과 집에서 모임을 가질 때 시 구절을 읊으며 공감 가는 구절에 서로 감탄하던 무해한 대화를 옆에서 들으며 편안했던 기억, 가족끼리 밤에 있다가 안 시킨 회가 배달 와서 의아해하다 할아버지가 회를 집으로 보내줬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놀란 기억. 이 모든 게 알게 모르게 나에게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을 테다.
이러한 기억들은 "심리사회적 자원(psychosocial resource)"이자, "정서적 안전기지(emotional secure base)"로 작용한다.
유년기의 나에게 할아버지는 ‘절대 혼내지 않는 어른’, ‘예측 가능한 어른’, ‘침착하고 정제된 말투를 가진 어른’이었다. 그 관계는 내가 일상의 위기 속에서도 정서적 중심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심리적 자원이자, 정체성의 뿌리가 된다.
특유의 정갈하고 세련된, 부드럽지만 단단한, 할아버지를 보고 자란 나는, 학창 시절에도 쉬는 시간이나 야자시간에 친구들과 종종 시나 시조를 쓰고 놀았으며, 커피와 예쁜 커피잔을 좋아하며, 대게 정갈한 상태를 유지하고, 유난스럽지 않은 세련된 취향을 선호하고, 다른 사람이 밥을 잘 먹으면 칭찬해 주는, 학문을 사랑하는, 나의 불편함을 주장할 때도 사랑을 넣으려고 노력하고, 몹시 섬세하지만 그래도 단단한 어른으로 자랐다.
그렇다. 이 정도면 잘 자랐다.
그동안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을 돌아보니 대부분 차분하고 유난스럽거나 요란스럽지 않으며, 급하게 상황을 처리하지 않고, 예상 가능한 안정감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결정적으로 대부분 외형도 할아버지를 닮았는데, 할아버지는 키가 크고, 길고, 잘생겼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으셨다. (오해할까 봐 덧붙이자면, 지금은 돈이 없다. 입에 풀칠은 할 정도(?)로 겨우 먹고 산다.)
결론은 내가 잘생기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말이 되는 것 같아 다소 머쓱하지만, 사실이다. 사람의 본능이란 어쩔 수 없는 것... 인정해야 한다. (하나 더 변명을 하자면 무턱대고 잘생긴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처럼 생긴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말이다. ^^)
나의 소중한 할아버지 글을 잘생김과 돈으로 마무리하기에는 아무래도 찝찝하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통해 어린 시절 나는 조건 없는 긍정적 존중(unconditional positive regard), 자기 수용(self-acceptance), 내적 안정감(inner stability)을 얻을 수 있었다. 더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의 부족한 면을 채찍질하다 보니, 나에게 부족했던 자원만 생각하고 불평할 때가 있었는데, 왜 그랬나 싶다. 할아버지께 이렇게나 큰 사랑을 받아두고 아주 배부른 소리를 했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 나의 긍정적 자원을 끊임없이 생각해내야 한다.
심리사회적 자원(psychosocial resource)과 정서적 안전기지(emotional secure base)를 분에 넘치게 주신 할아버지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감사하다. 글을 적는 내내 마음이 다시 한번 따뜻했는데 그것도 마저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