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 아마도 나 같은 딸을 낳는다면, 제명에 죽지도 제명에 살지도 못할 거다. 어렸을 때만 해도 이렇게 살 줄은 몰랐다. 싫어하는 것 많고 까탈스럽긴 해도 사고를 치거나 말썽부리는 법 없었고, 따땃한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서 노는 걸 좋아하는 어린이였으니. 그렇지만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시절로부터 무언가 잊거나 잃는 데에는 최고로 살아온 것만은 분명하다. 첫 기억은 초등학교 일 학년. 입학하자마자 운동화를 잃어버렸다. 엄연히 따지자면 내 잘못은 아니었고, 내 운동화를 누가 신고 가버린 모양이었는데 그걸 못 찾아서 집에 못 가고 결국 엄마가 학교까지 데리려왔다. 모두가 하교하고 난 뒤 적막함만 가득 찬 복도, 하얀 타이즈를 신고 왁스 칠이 곱게 된 미끄덩한 나무 마루에 서 있던 순간, 담임 선생님과 엄마를 기다렸던 기억이 이따금 떠오른다. 초등학교 때는 주로 실내화 가방을 잃어버렸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잊은 채 집에 돌아오니 그냥 빈손이었다.
중학교 때는 깜박하고 책가방을 놓고 등교했다. 엄마는 유난히 이 일을 좋아해서 아직도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중, 고등학교 내내 아빠가 학교 앞까지 태워다 주었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나를 화장실에 욱여넣으면 엄마의 등교 컨베이어벨트가 가동된다. 눈도 못 뜬 채 씻고 나오면 흰 밥을 소금 김에 돌돌 말아 입에 넣어줬고, 교복 셔츠 단추를 잠그고 있으면 양말을 신겨줬다. 늦는다고 재촉하는 아빠의 목소리가 들리면, 가방이며 마실 것을 들려 보내는 것으로 엄마의 아침이 일단락됐다. 아빠의 출근 시간에 맞추느라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등교하는 편이었고 아직 대부분 등교하지 않은 한적한 교실을 즐기곤 했는데 그 날따라 어쩐지 몸이 가벼웠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가방이 없단 걸 알아챘다. 당장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차에 가방 두고 내린 거 같아.“
”없어. 아무것도.“
”없어?“
”응 없다구.“
이번엔 엄마.
”엄마 나 가방이 없어졌어.“
”가방? 가방을 또 어디서 잃어버려.“
”가방이 없는데, 아빠 차에도 없대.“
“아이고, 너 가방 현관에 놓고 갔다. 갖다줄게 기다려.”
운전도 못 하고 다리도 짧은 엄마는(엄마는 우리 집 최단신이므로) 종종걸음으로 20분을 달려 학교에 도착했다.
”무슨 학생이 학교에 가방도 안 가져가. 너 진짜 웃긴다.”
가방뿐만 아니라 별별 것들을 다 놓고 오는 바람에 엄마는 이따금 학교에 왔고, 한 번을 혼내질 않았다. 가끔 집에 오는 길에 간식 사 먹으라고 용돈을 쥐여 주는 날도 있었다. 뭘 자꾸 잊어도 그럭저럭 해결된 건 다 엄마 덕이었다. 대신 사촌 언니나 친척, 엄마 친구들에게 나의 정신머리 없음을 자주 자랑했다.
“아유, 쟤는 학교에 가방도 안 가져가는 애야 학생이.”
가방은 학교 다닐 때만 놓고 다닌 건 아니었는데, 카페나 남의 집에 갔다가 가방의 존재를 잊고 빈손으로 나와 다시 돌아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럴 때마다 언니는 엄마가 하지 않은 꾸중까지 몽땅 흡수해 지독한 잔소리를 퍼부었다.
“엄마, 쟤 미쳤나 봐 어떻게 가방을 놓고 와.”부터 시작하여, 어딜 간다고 할 때마다 뭘 챙겼니 어쩌니 그럴 거면 놓고 가라는 둥의 잔소리를 듣느라 한동안 귀가 좀 고생했다. 그래도 매번 내 물건을 찾으러 함께 가주거나 몇 번은 나 대신 찾아오기도 해서, 무슨 소릴 해도 잘 안 들리는 척 눈 딱 감고 흘려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된 것 역시 다 언니 덕이다.
한동안은 핸드폰을 그렇게 잃어버렸고, 스마트폰으로 바꾼 뒤로는 지갑이나 카드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놀랍게도 그렇게 자주 잃어버리는 것만큼이나 다시 찾는 재주를 타고났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신통방통할 뿐. 살기 쉽지 않은 세상, 어떻게든 버텨 내라고 세상에 오기 전 모든 이들에게 행운 한 줌을 오른쪽 주머니에 담아줬다면, 난 그 행운을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데 몽땅 써버렸을지도 모를 정도니.
한 번은 고장이 나서 진동이 울리지 않는 무음 모드의 핸드폰을 배터리가 방전된 채로 잃어버렸는데 택시 기사 아저씨가 직접 충전까지 해 찾아주었다. 어떤 멋진 어른 여자분은 (아마 지금 내 나이보다 한참이나 어렸을) 내가 핸드폰을 찾으러 갈 때까지 역에서 기다릴 수 없다며 본인 돈으로 코인 라커를 빌려 편할 때 찾아가라고 배려해 주었다. 처음 간 낯선 건물의 경비 아저씨는 지갑 속 내 신분증을 보고는 딸 생각이 났다며 카드 회사로 분실신고를 해주셨는데, 지갑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난데없이 카드 회사의 전화를 받고는 알게 되기도 했다. 경찰서에서는 수시로 전화가 왔고 때로는 분실한 지 3분 만에, 때로는 한 달만에 다른 이들의 도움으로 잃어버린 것 하나 없이 카드와 신분증은 물론 립스틱이나 향수, 현금까지도 몽땅 돌려받았다.
내가 물건을 찾는 데에는 낯선 이들의 다정함이 7할 정도라면, 내 집착은 3할 정도를 차지했다. 이 정도 지났으면 못 찾는다는 얘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전화하거나 직접 찾아가기도 했다. 온라인 유실물 센터 백 페이지가 넘도록 뒤져보거나 별별 단어를 검색어로 넣어보기도 하고. 그렇게 내 카드와 지갑들은 집 앞 골목부터 남의 동네, 멀리는 부산까지 여행갔다 집에 돌아오곤 했다. 잃어버리면 절대 찾지 못한다는 아이팟이나 아이패드도 집착적으로 달려든 덕인지 곧잘 찾아대니 이제 친구들은 그걸 또, 잃어버리고 또, 찾았냐며 그러려니 하는 지경이 된 지 오래.
다사다난한 나의 분실 역사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잃어버린(아니 어쩌면 잊어버린) 건 꽤 대단했다. 어쩌다 보니 당장 낼모레 떠나야 하는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잡아둔 각종 일정을 취소했다. 여행지는 별 고민 없이 도쿄로 정했다. 지난 12월에 이미 한차례 다녀와 묵고 싶은 호텔이나 가고 싶은 맛집과 장소 리스트가 충분히 있어 당장 내일 떠나도 무리가 없었으므로. 게다가 나는 숙소가 중요한 편이라 출발 직전까지 마치 그 도시의 모든 호텔을 다 찾겠다는 기세로 쉼 없이 검색하고 예약하고 취소하고 다시 예약하며 난리법석을 치고 나서야 겨우겨우 정하기에 (난 검색하는 일을 너무너무 좋아하기도 하고, 요즘은 무료 취소 제도가 참 잘 되어있으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도리다) 이미 지난겨울 한차례 난리 속에 그럭저럭 갈 만한 호텔과 대략의 가격을 기억하고 있어 그 과정을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지금 예약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에 그럭저럭한 방밖에 남아있지 않아 고민하던 찰나, 가고 싶던 호텔에 내가 혼자 묵기 적당한 사이즈의, 연박도 가능한 방이, 어제는 없었던 그 방이 갑자기 뾰롱하고 나타난 것! 이건 가야 하는 여행이다, 직감하고는 호텔 예약과 동시에 항공권도 끊어 버렸다. 봐두었지만 결제하지 않고 또 미루고 미루고 있었던. 구글 맵에는 이미 가고 싶은 장소가 백 수십개쯤 별이 찍혀있고, 비행기와 숙소만 해결되면 더 이상의 계획은 사치로 여기는 무계획 여행자로 만족스러운 여행 준비였다. 대신 쓸데없는 일에 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물건 간수는 전혀 못 하면서 쓸데없는 집착으로 물건 찾기의 달인이 된 것처럼. 여행 가서 쓰고 싶은데 챙기지 못한 물건이 하나라도 있을까 집을 통째로 옮기려는 사람처럼 말도 안 되는 짐 싸기가 시작된 거다. 어마어마한 짐을 싸려니 감당이 안 되는지 출발 전날은 아침부터 자꾸만 다른 일로 짐 싸기 스케줄이 밀리고 있었다.
전에 예약해 놓은 수업도 들어야 했고, 일 때문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러 옆 동네도 다녀와야 했다. 오후에는 굳이 굳이 운전면허 필기시험을 보러 가기로 했다.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학원에서 기능 수업을 듣고 또 곧바로 시험을 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시험을 무난하게 합격하고 기분 좋게 여행에 필요한 몇 가지를 사러 가는 도중 문득 최근에 통증이 심해진 어깨와 발목이 생각났다. 마침 다니던 신경외과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여행 가서 잘 돌아다니려면 왠지 의사 선생님을 한 번 만나고 가야 할 것만 같았다. 오후 5시쯤이었다. 어깨며 무릎, 발복까지 고루고루 안 좋아 이리저리 둘러보다 엑스레이도 찍고 초음파도 보고나니 어깨와 발목의 인대가 모두 늘어났다는 것.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무리하면 통증이 생기니 충격파 치료와 물리치료를 받고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짜에 맞춰 도수 치료도 예약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다. 비상약 몇 가지와 손소독제, 지퍼백 등 자잘한 여행 짐을 사고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든든한 식사까지 마치고 드디어 집에 돌아왔다.
이미 9시가 다 돼가는 시간이라 빨리 짐을 싸고 다만 몇 시간이라도 더 자야 하는데 이놈의 집중력은 도통 말을 듣는 법이 없는지. 티비를 틀고 살 것도 없는 온라인 면세점을 한창 둘러보다 두 시간이 지났다. 심지어 주문 가능 시간이 다 지나 결국은 주문도 할 수 없었는데도 말이다.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간이 되자 운명을 받아들였다. 모자는 종류별로 한 세 개쯤, 양말은 발이 네 개 정도 되는 사람인 양, 매일 똑같은 샴푸로 머리를 감는 건 용납할 수 없다며 소분 용기에 덜어 두어 개 챙겼다. 면봉이나 화장솜, 족집게는 당연히 리스트에 있었고, 잘 묶지도 않는 머리를 위한 머리 끈은 매일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 색깔 별로 5개씩. 여행 짐이 거실 바닥을 얼추 점령해 갈 즈음 노트에 얼렁뚱땅 써 놓은 리스트를 쓱 둘러보아도 빠뜨린 건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이나 핸드폰 충전기 정도는 들고 갈 가방에 넣을 거니까. 다행인 건 그리 추운 계절이 아니라 옷의 부피가 조금 얇다는 거고 나는 꽤 잘 껴입을 줄 알아서 유사시에는 다섯 겹씩 겹쳐 입어 캐리어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확장할 수 있다며 이 모든 짐을 잘 정리해 넣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12시 반쯤 되어서 짐을 모두 모으고 이제 캐리어에 욱여넣기만 하면 끝이 보인다고, 그래도 잠을 좀 잘 수 있겠다며 안도했다. 12월 여행에서 돌아와 대충 던져둔 캐리어를 꺼내러 침실 베란다로 향했다. 배란다 왼쪽 문을 벌컥. 열었는데 짐이 좀 쌓여서 그런지 잘 안 보였다. 오른쪽 문을 다시 열었다. 음? 없었다.
이번에는 거실 베란다를 갔다. 그곳엔 분명 작은 캐리어만 두었는데. 역시나 없었다. 세탁기, 내 어깨까지 오는 세탁 서비스용 커다란 가방, 작은 캐리어, 분리수거할 박스 더미들. 아무리 구석구석을 둘러보아도 캐리어는커녕 무엇도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 주방 배란다에는 있을 리가 없고, 옷창고(라고 부르지만 방문달린 옷장이나 다름없는 수준인 그곳)에는 이미 허리까지 오는 서랍으로 발 디딜 틈도 없고 ‘ㄱ’자로 설치해 둔 행거에는 더 이상 옷걸이가 걸리지 않을 정도로 꽉 차 있어 캐리어 따위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는 눈곱만치도 없었다.
침대 밑? 눕혀서 넣기엔 캐리어가 너무 큰데.
현관에 세워뒀었나? 며칠은 그랬지. 근데 지금은 사무실에서 가져온 박스가 놓여있어서 신발 둘 자리도 없는데.
캐리어가 없어졌다. 이 쥐콩만 한 집에서. 아무리 짐에 쌓여서 뭐가 어딨는지도 못 찾는다지만 그 커다란 애가 무슨 바퀴벌레도 아니고 어딜 기어들어 간단 말이냐.
다시 침착하게 캐리어가 가장 있을 법한 침실 배란다를 뒤졌다. 여기저기 들쑤셔 봐도 캐리어의 ‘ㅋ’도 보이질 않았다. 소파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분명히 가져와서 현관에 하루, 거실에 사흘 세워뒀지.
그리고 어떻게 됐을까.
어떻게 됐을까.
나야 왜 기억을 못 하니.
지금 빨리 짐을 싸고 자야 하는데.
한 일분 정도 곰곰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음.
음.
음?!
아??????????
아아아앜!!!!!!!!!!!!
갑자기 길을 가다 벼락을 맞은 듯 떠올랐다. 그것의 행방이. 겨울 여행에서 돌아와 엄마와 언니 선물이 꽤 무거워 (아빠랑 오빠 선물은 없다. 엄마가 사 오지 말라고 했으니까) 캐리어에 담아 집에 갈 때 가져갔다. 거실에 커다란 캐리어도 보기 싫은 데다 배란다에 짐도 많아 집에 버리다시피 놓고 왔다는 사실이! 엉망진창이었던 머릿속 퍼즐이 한순간에 완벽하게 맞춰졌다. 아니 캐리어를 잃어버리지 않은 건 다행이긴 한데, 그렇담 나는 짐을 어디에 싸야 하지?
기내용 작은 캐리어에는 거실을 다 담을 수가 없는데?!
난 아침 9시 비행기였다. 적어도 7시엔 공항에 도착할 계획이었고 여력이 되면 공항철도 첫차를 타고 갈 생각이었다. 이 많은 짐은 어쩌고?!
시간은 이제 새벽 한 시 오 분.
충격에 허덕일 여유가 없었다. 이상하게도 정신은 선명했다. 손이 떨린다거나 심장이 두근거리지도 않았고. 짐을 쌀 때처럼 몽롱한 기분도 아니었다. 그대로 가디건에 대충 한 쪽 팔만 꿰어 넣고 양말을 신으면서 카카오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오는 동안 동대문 캐리어 가게를 검색했다. 24시 연다는 가게도 있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밀리오레는 코로나 이후 새벽 2시까지 영업하고 아마도 여행 가방을 파는 곳도 있는 듯했다. 아직 1시 10분이니까 우리 집에서 택시로 20분이면 가고, 새벽이니 차는 안 막힐 테고.
택시를 타자마자 혹시나 모든 가게가 다 문을 닫았을 경우를 생각했다. 근처에 살고 있는 친한 친구 몇 명에게 카톡을 남겼다.
‘야야야야 ㅎㅎㅎㅎㅎㅎㅎ’
전화할 용기는 없었다. 나는 전화 기피증이 있다. 이 꼴이 났는데도 전화하고 싶지도, 전화로 친구를 깨우고 싶지도 않았다. 망할.
가게도 모두 닫았고, 친구 누구에게도 답장이 안 온다면?
박스를 수화물로 부칠 수 있는지 검색해 보았다. ‘가능’
그렇다면 박스에 기내 반입 금지 품목만 넣고 작은 캐리어에 남은 짐을 넣어 공항 면세점에서 캐리어를 구매할까?
인대가 늘어난 내 어깨와 발목으로 박스는 어떻게 나를 거지? 공항까지 또 택시를 탈 순 없는데.
그렇담 대부분의 짐을 포기하고 작은 캐리어에 가능한 한 때려 넣는 것? 가볍고 부피 큰 아이들은 어떻게든 이고 지고, 바지 세 개, 윗도리 다섯 개 껴입고?
당근 마켓의 모든 캐리어 판매자에게 연락해 메시지를 보내는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를 희망 고문하기?
“도착했습니다. ”
별별 생각을 하다 보니 밀리오레가 내 눈앞에 있었다. 깜깜하게 건물 전체의 불이 모두 꺼진 채로. 일 층 문이 열려있었지만 요즘 애들이 하는 말로 KTX를 타고 가면서 봐도 영업하는 건물처럼 보이진 않았다. 경비 아저씨가 입구에서 날 전혀 반갑지 않게 맞아줬다.
“영업 끝났어요?”
“오늘 쉬는 날이에요, 월요일.
매주 월요일은 쉬잖아.”
아, 밀리오레는 월요일에 쉬는구나. 이런.
허망한 마음에 허공을 둘러보니 평화시장은 닫은 모양이고, 길 건너 제일 평화 시장 간판이 아직 불이 들어와 있었다. 일단 횡단보도를 건넜다. 제일 평화 시장에 가기 전 왼편에 이름 모를 쇼핑몰이 열려있었다. 다짜고짜 들어갔다. 나는 절대 사지 않을 법한 여성스럽고, 자그마한 옷이 진열된 여성복 가게가 드문드문 있었고 빈 상가도 많았다. 어떤 가게에도 손님이 보이질 않았다. 섣불리 질문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엄숙함이 흐르는 쇼핑몰은 처음이라 잠시 고민하다 출입구 쪽을 다시 쳐다보니 관리 사무소 같은 곳에 누가 앉아 있었다.
“혹시 여행 가방이나 큰 가방 파는 곳은 없나요?”
“아.”
삼천 년 같은 3초가 지나고.
“여기, 입구 나가서 바로 왼쪽으로 가면 나와요.”
“감사합니다! ”
오 역시. 행운이 오른쪽 주머니에 약간 남아있었구나!
문을 닫을 준비를 하던 주인아저씨를 불렀다.
“여기 큰 가방 중에서 제일 싼 게 뭐예요?”
“제일 싼 거? 그럼 이거 8만 원만 줘.”
원래는 5만 원 정도 하지 않을까 의심하며 다시 물었다.
“이거 이민 가방은 얼마에요?”
“그건 2만 5천 원.”
“몇 시까지 영업해요?”
“이제 닫을 거여.”
품질도, 출처도. 브랜드도 알 수 없는 싸구려 여행 가방에 돈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나에겐 네고할 기력도, 능력도, 시간도, 아무것도 없었다.
“음....”
“아유, 좀 깍아줄게. 7만 5천 원에 가져가.”
“넹. 이 색으로 주세요.”
다시 택시를 불러서 집에 왔다. 길바닥에 10만 원을 뿌리고 한 시간만에 소동은 끝이 났다. 집에 돌아가며 친구들에게 다시 카톡을 보냈다.
‘해결했어. 잘자 ㅎㅎ’
집에 돌아와 침착하게 짐을 싸고 깨끗하게 샤워도 하고, 서너 개 쌓여있던 물컵 설거지와 쓰레기 매출도 마치고.
첫차를 타고 무사히 공항에 왔다. 면세점에 들어가기도 전에 샘소나이트 매장이 있었다.
면세점에서 캐리어를 살 경우, 기내용보다 큰 사이즈는 돈을 조금 더 내고 수화물로 붙일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단다. 수화물로는 박스도 붙일 수 있다. 다만 터지지 않게 조심. 특히 김치 같은 냄새 나는 음식이라면 더더욱.
면세점에 가기 전 공항 내에 캐리어 매장이 있고 밀리오레는 월요일마다 쉰다. 코로나 전에는 무려 5시까지 영업을 했었다고. 몰라도 괜찮을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됐다.
HP가 100쯤 깎이고 지식은 3만큼 상승했다. 엄마한테는 말하지 말아야지. 별일 없이 늦지 않고 준비 잘해서 곧 비행기를 탄다고 안부 전화를 마치고 좌석에 앉았다. 그렇게 도쿄 여행이 시작됐다.
PS
도쿄에 와서도 또 카드를 잃어버렸고 놀랍고도 당연하게도 다음날 무사히 찾았다. 휴, 어쨌든 해피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