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강동원을 영접하기로 한 별 다른 것 없는 6월의 일요일이었다.
강동원은 다들 아는 8척 장신의, 비만 오면 우산을 빼꼼 들며 자동으로 슬로우 모션 필터를 깔아버리는 배우 강동원은 전혀 아니고, 망원에 있는 한 중국집이다. 언제,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는 알 수 없으나 망원 강동원의 탕수육이 그렇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맛이라는 거다. 좋은 평이 하나둘 이어지나 싶었는데 어느새 이걸 간증이라 불러야 할지 리뷰라 불러야 할지 모를 평이 점점 늘어갔다. 바삭함을 넘어 마치 탕후루에 비견할 정도의 파삭한 식감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 화교 학교 주변에 거주하며 동서남북 어느 방향으로 엎어져도 ‘찐’이라 불릴만한 중국집이 지처에 널린 연희 연남 거주민으로 그토록 훌륭하다는 탕수육을 맛보지 아니할 수 없는 노릇. 며칠째 올라오는 강동원 리뷰에 내 해마도 견디지 못했는지 자리 한켠을 내어주었다. 강동원을 언제 만나러 가야 하나 생각만 하던 와중 갑작스레 약속을 잡게 됐는데.
지난 3월부터 수영을 시작해 한창 과몰입해 있던 참에 평영 마스터를 위해 토요일 자유 수영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마포와 서대문구는 다른 지역에 비해 수영장이 꽤 많은 편인데, (과거 나루터 근처였던 탓일까 잠시 생각했지만 그럴 리는 없는 거 같다.) 그중에서도 고르고 골라 대여섯 곳쯤 방문하고 나서 가장 다니기 편하고, 왜인지 등록하기 치열하기로 소문나 도전 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마포 청소년 수련관의 수영장으로 마음을 정했다. 내 결심과는 달리 첫 달 등록에 실패해 서대문 청소년 수련관에 다녔고 4월부터 겨우 이곳으로 옮겨 꾸준히 다니는 중이었다. 이곳 강사들은 적당히 시간 때우기를 모르는데 대략 가르쳐 주고는 몇 바퀴 돌고 오라는 적이 없다. 특히 초급반은 한 레인만 사용해 편도로 오고 갈 때마다 매번 한 명씩 잡고 자세 교정이나 코칭을 해주는데 이런 정석 강의가 인기의 비결이려나. 아무튼, 평영을 배운 지 몇 주 됐지만 그놈의 감이란 것이 도무지 찾아오질 않아 숨을 쉬지도, 물 위에 제대로 뜨지도 못 한 채 발버둥만 몇 번 친 후 멈춰 서 숨을 고르고 다시 발버둥치기 일쑤였다. 평영이 익숙해지기만 하면 물 위에 떠있는 개구리처럼 힘 하나 안들이고 편안하게 나간다던데 웬걸 개구리는커녕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니. 수영 커뮤니티는 물론이고 이미 중급도 넘어 상급에서 물개처럼 헤엄치는 어르신들 얘기를 엿들어봐도 수영이 늘려면 자유 수영을 해야 한다는데 언제까지 물에 빠진 생쥐로 살 수 없어 주말 자유 수영까지 가기에 이른 거다. 물론 맹연습은 절반의 핑계고 물에서 첨벙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겸사겸사. 마포 청소년 수련관은 마포구청 바로 옆에 있는데 우리 집 근처 따릉이 대여소에서 출발하면 홍제천을 따라 쭉 직진하다 마포구청역 쪽으로 올라오기만 하면, 수영장 바로 앞에 반납할 수 있는 최적의 루트인데 다만 토요일 자유 수영이 없어 주말 자유 수영은 주로 서강대 근처의 마포 아트 센터로 가곤 했는데 그날 역시 토요일 마지막 타임에 아슬아슬하게 도착했다. 발차기도 하고 자유형이나 배영도 몇 차례 하고 무엇보다 평영 연습을 제일 많이 했다.
내 몸을 구성하는 능력치를 무게로 환산해 보자면 운동신경과 체력은 각각 갓난아이 배냇머리 한 줌보다도 가벼울 텐데, 저렇게도 요렇게도 하다 보니 아하! 그놈의 감! 혹시 이건가 싶은 순간이 왔다. 끝나기 1분 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출발했는데 아주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레인의 끄트머리 부근까지 다가간 거다. 기분이 좋았다. 입꼬리가 1cm 정도 올라간 거 같았다. 초여름의 저녁 공기는 알맞게 시원했고, 그 기분을 안고 번잡한 데다 오르막이 힘든 신촌을 따라 집에 가고 싶지 않았다. 수박이 먹고 싶었다. 복숭아를 왕하고 한입 베어 물고 싶었다. 가격은 조금 있지만 맛이 좋고 손질까지 해서 팔기에 자주 가는 망원의 과일가게에 주문이 가능한지 카톡을 남겼다. 여기서 망원동 과일 가게를 가려면 서강대에서 광흥창으로 빠져 한강길을 따라 주욱 달리면 된다. 이 날씨에 사람 많은 신촌보다 훨씬 매력적인 길이다. 더군다나 잘 손질된 수박과 복숭아가 날 기다리고 있다면. 9시 반이 넘은 시간이라 가게가 혹시 닫았으면 어쩌나 싶었지만 일단 페달을 밟았다. 이 날씨를 놓칠 수 없었는지 한강은 사람들로 그득했다. 둑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맥주나 치킨 따위를 먹는 커플, 요즘 유행하는 Y2K스러운 옷을 입고 서로 사진 찍어 주는 여자애들, 강아지와 산책 나온 가족과 땀 흘리며 농구하는 무리를 구경하며 달렸다. 20분이 넘도록 눈누난나 자전거를 타고 한강의 여름 바람을 맞았지만 아무런 알림이 뜨지 않았다. 역시나 너무 늦었나보다 생각하며 초코 우유 한 팩을 마시고 망원을 지나 한강에서 홍제천으로 빠지는 길까지 그대로 쭉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려는데, 띵동! 에어팟에서 소리가 울렸다.
- 저희 오늘 11시까지 해요. 몇 시쯤 오실 수 있으세요?
- 오! 바로 갈 수 있어요. 수박이랑 복숭아랑 참외, 멜론, 체리 반씩 손질해 주세요.
- 네! 10시 10분까지 오시면 돼요.
이 무슨 찰떡같은 타이밍이람. 그대로 망원 지하차도 부근으로 빠져나왔다. 자전거를 빌리거나 한잔하는 사람, 돌려 나가는 차들, 나처럼 자전거 탄 무리 등 한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라 특히 더 번잡했다. 틈을 비집고 과일가게 쪽으로 핸들을 돌리니 꽃분홍색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강 동 원’
아니 여기였어? 곧바로 내일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친구에게 연락했다.
- 내일 강동원 가겠냐고
- 강동원?
- 지금 사람들 나 빼고 다 강동원 갔다고
- 중국집이야? 이름이 왜 이래 ㅋㅋㅋ
10여 분이 흐르고 친구에게 또다시 카톡이 왔다
- 나 지금 여기 리뷰만 찾아보고 있잖아 그럼 내일 저녁 먹고 영화 보러 가자
빨강, 연두, 노랑, 자줏빛 과일들이 예쁘게 썰려 담긴 팩을 받아 다시 따릉이를 타고 신나게 달렸다. 바람은 시원했고 초여름의 저녁 냄새가 뱃속을 간질였다. 네모반듯하게 썰린 수박은 아삭하고 달콤했다. 뱃속이 여름밤 공기와 수영장에서 먹은 물 조금, 수박과 복숭아로 가득해졌다.
강동원에 가기로 한 날 아침이 됐다. 전날 수영 가기 전 얼렁뚱땅 쓴 글을 가지고 격주 일요일 오전에 하는 글방 모임을 끝내고 어제 사온 과일을 종류별로 몇 조각씩 꺼내 예쁜 접시에 담아 먹었다. 외출할 때 입을 옷을 골랐다. 더운 걸 잘 모르는 체질이라 한 여름에도 긴팔 자주 입기에 당연하다는 듯 줄무늬 긴팔과 무릎까지 오는 통이 크고 소재는 얇은 검은색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약속은 5시 언저리쯤이었는데 이미 4시 반이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배우 강동원만큼이나 인기가 많아져 웨이팅은 기본이라는데, 이름을 적고 기다려도 못 먹는 경우가 있다는 얘긴 이미 들었고 조금 일찍 도착해 웨이팅을 남기고 합정 키티버니포니에 들러 새로 나온 토끼 그림 수영 모자도 살 계획이었는데. 왜인지 이미 4시 반이었다. 나의 슬라임 같은 시간 개념은 맞춘다고 맞춰도 이렇게 하염없이, 영혼 없이 죽죽 늘어나는데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연남이랑 망원은 옆옆 동네인데도 불구하고 교통편이 영 시원찮아 지금 곧장 가면 늦진 않을 시간이었다. 가는 길에 딴짓만 하지 않는다면. 경기도에서 다른 경기도를 가려면 서울에 들러야 하는 것처럼 연남에서 망원을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2호선을 타고 한 정거장, 합정에서 6호선을 갈아타고 또 한 정거장을 가거나 10분에서 15분 정도를 걸어 버스를 5분 정도 타고 내린 다음 또 10분을 걸어야 하는 왜인지 잘 가고도 멍청이가 된 듯한 루트를 알려주기 때문에 수영을 다니기 시작하고는 늘상 따릉이를 타고 다녔다. 6개월 정기권이 단돈 만 오천 원인 데다 홍제천이나 한강도 가깝고, 마포구는 비교적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는 편이라 한 번 결제해놓고 나니 시도 때도 없이 타게 된거다.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시키고 깨끗하고 튼튼해 보이는 따릉이로 골랐다. 지난밤에 비해 해가 쨍하니 떠있었지만, 적당히 뜨끈했다. 곧 진짜 여름이 올 거라는 예고처럼. 한 곡 반복으로 설정해 둔 탓에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좋아하는 노래가 시작됐다. 드문드문 사람이 보였던 성산동을 지나 망원우체국 사거리를 지나니 시장이 가까워진 건지 자전거 전용 도로 위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내려서 끌고 갔겠지만 지난 몇 달간 수영장을 오가며 일주일에 서너 번은 탔고, 어느 날은 한 손으로도 (겨우겨우) 운전할 경지에 오르지 않았던가. 나에게 이 정도의 자전거 타기란 남들이 외발자전거를 타며 저글링이라도 하는 수준에 가까운 일이란 말이다. 느리게도, 빠르게도 능수능란(하다는 착각) 모드로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지나갔다. 시장을 지나자 비교적 한적해졌고, 조금 더 빠르게 밟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던 즈음. 나만 그런 건 아니었는지 뒤에서 몇 명의 무리가 나를 추월했다. 주로 따릉이를 초라하게 만드는 그룹은 둘 정도로 나눌 수 있는데 화려한 장비와 단체 행동으로 위협감을 조성하는 장비파 라이딩 모임과 그런 것 하나 없지만 오로지 나이와 에너지로 발라버리는 체력파 남자 중고등학생이다. 그날은 중학교 고학년 정도 되는 남자애들 서넛이 나를 앞질렀다. 그들이 사라지고 나니 내 눈앞에는 중년 부부 한 쌍이 앞뒤로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었다. 주말 오후, 사이 좋은 중년 부부, 누가 봐도 동네 사람, 여유로운 라이딩 여러모로 보기 좋은 그림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느렸다. 나보다도 한참이나. 강동원도 가야하고 수영 모자도 구경가야 하는 데다 이미 앞지름을 당한 나는 조바심이 났다. 더 지체할 것도 없이 자전거 도로에서 내려와 차도에서 5미터 정도를 빠르게 달려 앞지르고 다시 자전거 도로로 올라오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고 그렇게 3분 후 ‘아얏!’ 소리와 함께 자전거 도로에 눕게 됐다. 차도로 잘 달려 추월까지 했는데 다시 자전거 도로로 올라오기 위해 낮춤해진 구간을 확인하고 핸들을 꺾었지만, 속도가 느렸는지 다른 진입 구간에 비해 턱이 미세하게 높았는지 수직으로 빠르게 가로지르지 않아서인지 애매하게 바퀴가 도로와 수평이 되며 옆으로 기울어져 넘어진 거다. 그리 빠르진 않아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반바지를 입고 있어 맨살이 아스팔트에 쓸렸다. 오른쪽으로 누워 아직 몸을 못 일으켰는데, 아까 내가 추월하려던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누운 내 머리 위쪽 자전거 도로로 유유히 지나갔다.
“아이구, 괜찮아요? 아프겠다아.”
차마 멈추지는 못하고 달리는 도중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왔다.
“아우, 괜찮아요.”
자전거를 일으키고 따가운 무릎을 봤더니 흙 묻은 피자두가 있었다. 팔꿈치는 까진 체리. 주말이지만 문을 연 약국이 망원 우체국 사거리에 있었던 기억이나 자전거를 끌고 되돌아갔다.
“저 넘어져서 까졌는데 소독약 좀 주세요.”
“얼마난 사이즈 필요해요? 한 번 봐봐.”
“아이고 많이 까졌네. 아프겠어. 이것도 작겠고, 얘도 좀 작고. 제일 큰 걸 해야 하나.”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 약사분이 동네 할머니처럼 친근하게 응석을 받아줬다. 소독약과 습윤 밴드를 받아 약국 한편의 벤치에 앉았다. 소독약을 뿌리고 흙먼지를 조금 털어내고, 줄줄 흐르는 피인지 약인지 모를 핑크색 액체를 휴지로 닦았다. 손바닥만 한 습윤 밴드를 하나는 그대로 무릎에 붙이고 하나는 조금 잘라 팔꿈치에 붙였다. 하도 잘 넘어져 넘어지는 게 예삿일은 아니지만, 주로 긴 바지를 입고 있어 바지가 시커멓게 더러워지거나 멍이 들고 끝났는데 맨다리로 넘어진 건 너무 오랜만이라 좀 어리둥절했다. 내가 약을 받아 붙이는 동안 배달 라이더처럼 보이는 성인 남성이 약국으로 들어왔다. 손가락을 애매하게 접고 있었다.
“넘어졌는데 손이 좀 까져서요.”
“한 번 보여주시겠어요?”
“아이고 아프겠어. 방금 저 아가씨도 넘어졌다는데.”
화창한 일요일 오후의 망원동은 넘어지기 좋은 장소인지. 같은 부상의 성인 남녀가 연달아 약국을 찾다니. 뭘 그렇게 대단한 걸 하겠다고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기까지 하는지. 그즈음 친구에게서 이미 강동원 앞이고, 브레이크 타임이 방금 끝났는데도 웨이팅이 있어 이름을 적어뒀지만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연락이 왔다. 따릉이를 타고 어제 만난 꽃분홍 간판이 있는 망원 지하차도까지 갔다. 웨이팅을 남기려는 줄이 줄줄이 이어져 옆 가게를 넘어서까지 서 있었다. 친구에게 무릎 자랑을 하고 강동원 근처에 맛있다는 커피집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씩 테이크아웃했다. 소독약 때문인지, 피가 아직 나는 중인 건지, 동그란 무릎 모양 때문인지 축축해진 습윤 밴드에 틈이 생겼고 그 사이로 피와 소독약이 섞여 바지 끝자락에 자꾸만 묻어났다. 지금 탕수육 먹을 때가 아니라고 어디 병원에라도 가자는 친구에게 그럴 때 맞다고 소독약이 마르기 전에 붙여서 그런 거라며 응수했다. 강동원은 1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거 같으니 수영 모자 구경이나 하자고 합정까지 갔다. 수영 모자는 디자인 당 3장씩 만든 건지, 엊그제부터 판매를 시작했지만 이미 품절이었다. 허무했다. 영화 시간도 다가오고 배는 고파져 어쩔 수 없이 망원역 근처의 다른 중국집을 가 3인분을 시키고 둘이서 남김없이 다 먹었다. 영화관 좌석에 앉으니 그제야 강동원에서 연락이 왔다.
영화는 너무 더럽고, 웃겼다. 호화 크루즈에 탑승하게 된 인플루언서와 그의 남자친구, 각양각색의 부자들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던 와중 풍랑을 만나는데, 그 화려했던 크루즈는 구토와 오물 범벅이 되고 결국은 무인도에 아주 일부의 사람들만 조난 당하며 권력의 구조가 뒤집힌 크루즈처럼 완전히 뒤집혀 버린다.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고 불을 피울 줄 아는 여성을 필두로 무인도 내의 가모장 사회가 구축되고 영화는 계층과 성별, 인종과 권력, 자본주의와 외모지상주의 등 비틀 수 있는 모든 것을 비틀며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에 대한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졌다. 겨우 무릎 까져서 그대로 길에 눕고 싶었던 나는 아마 저곳에 떨어지면 다만 며칠도 살 수 있을지 없을지 알 길이 없었다. 아직 바다 수영은 한 번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는데 생각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집 앞 3분 거리에 있는 가정의학과에 갔다.
“자전거 타다 넘어져서 까졌는데요.”
“어디 한 번 봐봐요. 많이 다쳤으면 외과로 가야 하거든요.”
간호사 선생님이 접수창구에서 고개를 빼꼼 들었다. 침착한 척 했지만 외과라는 단어 등장에 동공이 흔들렸다. 내 이마 위 슬픔의 삼각형*이 깊어졌다.
“아. 그 정도는 괜찮아요. 소파에 앉아서 밴드 떼고 계세요.”
역시나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4주를 꼬박 아침마다 병원에 들러 소독하고 약을 발랐다. 물에 닿으면 안 된다길래 변기 위에 다리를 기역 자로 올리고 허벅지 따로 종아리 따로 샤워했다. 당연히 수영도 못 갔다. 피켓팅에 버금가는 치열한 수강 신청 끝에 6월부터 주 5회 수업으로 갈아탔는데, 두 번 가고 그 이후로 한 번을 못 갔다. 월수금 반 선생님과 화목 반 선생님이 달라 서로 다른 스킬을 전수해 주었는데, 화목 반 선생님이 접영을 시작할 때 필요하다며 알려준 웨이브도 제대로 한 번 못 했는데. 집에서도 연습하랬지만 차마 물밖에서 몸부림치는 나를 상상할 수 없어 머릿속으로만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병원에 갈 때마다 나이가 좀 있으신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은 나를 초등학생 다루듯 대했다. 대기실 소파에서 밴드를 떼고 있으면 달려와 같이 떼어 주거나, 양 갈래로 머리를 묶고 간 날은 귀여운 머리를 했다며 딸이 줬다는 초콜릿을 나눠주고, 소독을 마치고 일어날 땐 팔을 잡고 부축해 줬다. 고작 무릎이 까졌을 뿐인데, 초등학교는 졸업한 지 20년도 훨씬 더 됐는데. 혼자 산 지 오래되어 누군가 날 돌봐준다는 감각이 싫진 않았다. 그냥 수영을 못 가는 게 싫었다. 무릎을 꿇기 어려워 요가에도 못 가는 게 싫었다. 난생처음 요가며 수영이며 운동에 흥미를 붙였는데, 언제 그랬냐는듯 그 마음이 사그라들어 또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만 있는 삶이 오진 않을까 걱정됐다. 그러는 동안 무릎은 탁구공만한 가지 색으로 착색됐고, 지난번 사지 못한 수영 모자도 샀다. 직구했던 수영복도 네 개나 도착했다. 얼마나 대단한 탕수육을 먹겠다고, 얼마나 빨리 달리겠다고,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고 남의 자전거를 앞지르다 이 꼴을 당했는지. 어이가 없었다.
그 사이 강동원은 손님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탓인지, 리뷰의 별점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테이블마다 양이 다르다, 탕수육을 한 줌을 주더라, 튀김이 예전 같지 않다 등등. 장사가 너무 잘 된 나머지 신이 난 사장님이 지나친 욕심을 부린 걸까? 스스로의 운동 신경도 무시한 채 앞지르기했던 나처럼. 욕망에 사로잡혀 눈이 돌아버린 크루즈의 사람들처럼. 강동원을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나로서는 알 리가 없었다.
*슬픔의 삼각형은 글에 나오는 영화 제목이기도 하고, 미간 사이 주름이 잡혀 패이는 삼각존(으로 보톡스를 맞아서 펴고 싶어 하는 그곳)을 부르는 이름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