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살아오면서 무엇인가를 결정하면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께가 뒤틀리도록 아파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 폐렴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을 때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께가 뒤틀리면서 아팠다. 피가 섞인 가래를 뱉어내고 숨쉬기 힘들게 가슴은 쓰리고 아팠다. 지금, 난 그렇게 각혈하는 아픔으로 결정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내 아들.
이대로 흘러가게 둔다면 내 아들의 삶은... 어렵다.
허나 지금도 답이 없다면 미래도 답이 없으리라.
많은 시간이 나를 치고 때리고 울리고,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지나갔다. 굴욕스러운 아픔이 있었고 서러운 슬픔이 있었고, 기가 막힌 더러운 기억들도 끄집어내야 했던 시간이었다. 그중에 가장 치사스럽고 지랄 같은 게 바로 친정 식구들의 악랄함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나를 도울 수 없게 막았다.
“내 자식이여라 아부지.
내 자식들과 나 사이에 끼어들어 방해하는 것은 부모와 자식 간을 이간질하는 것과 진배 없단게요. 아부지 자식 아니고 제 자식이니 제가 알아서 한다니까요. 아부지가 자꾸 감싸고 도니까 애들이 나를 애비로 안 알잖어요. 여기서 더하시믄 저도 진짜 가만히 안 있을란게요!
훈이 하나만도 제대로 건사하기 힘들어요. 훈이 앞날은 챙겨 줘야 내 할 일이 끝난다니까요. 글고 가시내들도 친정이 떵떵하게 잘 자리 잡고 있어야 즈그들로 편하단게요. 친정이 딱 버티고 있어야 즈그도 대접받고 살제 안그러요?
가시내들이 뭐 있단가요.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살믄 그걸로 끝이제.
가시내들은 결혼하믄 우리집 식구 아니여라! 그 집 식구제! 그란게 가시내들은 낳아 봐야 필요 없다고 안 그요. 그래도 친정이 웬만큼 떡하니 한자리하고 있어야 즈그도 대접받고 좋제라. 그걸로 가시내들한테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는 것이고요. 가시내들은 뭐 해 줄 것이 있다요. 아들만 떡하니 자리 잡고 있어 주믄 즈그들 어깨 피고 살게 해 준 걸 감사하다고 하고 살게 된단게라. 그럴라믄 훈이부터 챙겨야 한단게요. 훈이까지 망치고 싶지 않으심 가만히 계시는 게 좋을 것인게요.
아부지가 안 도와주심 고 가시내도 이혼생각 안 해라. 그란게 도와주지 마시랑게요. 그래야 훈이도 자리 잡고 조용히 안 살겄어라. 손 넣어주심 저도 훈이도 아부지 안 볼란게요, 알아서 잘 결정들 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