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사상

#3. 나의 이혼은 이렇게 시작됐다

by 영하

이혼해야겠다 결정하고 서로 합의 보고 각자 집에 연락해 서로 피곤을 피하자 했지만, 시집 식구들은 돌아가며 전화질이었고, 친정 식구들이랍시고 찾아와서 저런 식의 협박을 하고 있다. 서로 다른 낱말과 문장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같은 내용이었다. 시집 식구들의 말은 남자가 노름 좀 했다고 이혼하고 그러면 이 세상에 결혼생활 할 사람이 없다느니, 애도 있는 여자가 남자 없이 어떻게 살라고 그러냐느니, 남자가 있어야 애가 기를 펴고 산다느니 모두가 그놈의 남자 없이는 안된다는 것이 골자였다.

친정집도 마찬가지였다. 당신 아들은 당신 아들이니까 소중하고 네 번째 여자 아들들은 그 여자 아들들이니 소중했다. 그 여자 아들들도 계집애가 아니었으므로. 딸들보다야 남의 아들이라도 아들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 앞의 장애물이라 여긴 딸을 비켜 지나가더니 이젠 손자가 더없이 소중하단다. 그 손자가 혹시 다칠까 봐 당신의 상처받은 딸은 ㅡ 원래도 보기 싫고 필요 없는 딸은 보이지 않는단다. 아니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걸림돌이 되니 비켜달란다. 치우고 싶단다.

이 순간까지도 남아선호사상은 내 어깨를 짓누른다.

내가 아들이 아니어서, 남의 집 아들도 아니므로.

세상 필요 없는 딸이어서, 이혼할 여자여서, 애 딸릴 여자여서.

도대체 어디 한 곳 마음 둘 곳이 없다. 염병할.


나의 이혼은 이렇게 시작됐다.

내 편 하나 없이 그렇게 덩그러니 혼자서 시작한 싸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자인 그 사람과는 쉬웠다.

원래가 그랬던 사람이니 어렵지 않았다.


“그래, 니 마음대로 해라. 나머지는 엄마랑 이야기해라.”


끝이었다. 더 이상의 이유도 변명도 없었다. 시집 식구들은 모두 다 돌아가며 전화했다. 많은 식구의 한마디씩으로 이래저래 지쳐 가면서도 또 우습게도 난, 그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이렇게나 편이 되어서 한마디씩 보태주는 그의 식구들이 부러웠다. 가족이라는 것이 부러웠다. 모진 말들 속에서 지쳐가면서도 힘들어하면서도 듣기 싫어 미치겠다 하면서도 그가 내심 부럽기도 하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다. 그렇게 내 자존심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을 무렵 원래도 내 편이 아닌 친정 식구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뭔 일 이래 싶던 게 그러면 그렇지 끝나는 웃기지도 않은 해프닝을 자아냈다.

이 해프닝으로 인해 나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떨어지다 못해 뭉개지고 있었다.


계집애들은 한 번도 자기 핏줄이라고 생각지 않고 산 당신.

필요 없는 딸들보다야 남의 자식이어도 아들이 최고라는 당신.

이래저래 안 풀리는 집안일은 재수 없는 딸년들 때문이라는 당신.

조그만 일이어도 잘 풀리면 모두 아들 덕이라는 당신.

친어미를 닮아서도 싫다는 당신.

하다 하다 보기 싫은 고모들을 닮아서도 싫다는 당신이 이렇게나 친히 내 집에 방문해 주실 줄은 몰랐네.

당신을 피해서, 당신의 여인들을 피해 도망치듯 해치운 결혼이었다.

그 사람은 한마디로 개차반이었다.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도 돌아가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게 아버지한테 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계집애여서 대학도 보내주기 싫다는 당신에게. 내 자식은 계집년이어서 대학도 아깝지만 네 자식은 남자아이니 내가 책임져 주리라던 아버지의 말이 가슴을 때려 쉬 가라앉질 않아 도망쳤고 이겼다고 생각했다.

한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도망친 것은 맞았으나 대신 개차반에게 내가 나를 넘겼던 것이고 후회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 아버지는 티끌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고 물론 전혀 아파하지도 않았다. 개차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도 난 너 같은 자식 둔 적 없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들이다. 서로 없는 사람들로 살자 했다. 혹시나 들러붙을까 싶어 미리 선부터 긋고 보는 그런 인간이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에게 돌아간다는 것은 나의 패배를 완벽하게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결코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개차반이라는 것을 알고서도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이 때문이었다. 생겨버린 아이를 지우라고들 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애도 고생한다고. 저런 애비 밑에서 뭘 보고 자라겠냐고. 나 역시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살아온 이 세상도 만만치 않았다.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나의 실수였고 나의 죄였다. 나의 실수였으나 책임지려 노력했고 아이의 앞날이 나처럼은 되지 않게 하려 애썼다. 아마도 이혼한 부모를 둔 모든 자의 숙명 같은 것이리라. 나처럼은 만들지 말아야지. 나처럼 아픈 상처를 주지는 말아야지. 내가 어떻게든 지켜줘야지.

내가 만든 창살 없는 감옥에 갇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개차반은 개차반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았고 나는 아이의 인생까지 엎고 내 인생의 돌파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다. 나는 어찌 되더라도 아이까지 이 감옥에서 견디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겨우 버티며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책임이라는 단어에 잡혀 내가 피폐해질 때 할아버지 말씀이 날 쳤다.

어려웠지만 정신이 들 정도의 말씀이었다. 네가 깨지고 부서지기 전에 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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