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끝내야 한다. 최대한 냉정하게 당신이 내게 인연을 끊었던 그 말을 꺼냈다. 없는 자식. 나는 그 예전부터 없는 자식이었다. 뭘 인제 와서 걸림돌이니 자시니 쓰잘머리 없는 소리는. 난 예전부터 당신에게 자식이 아니었잖아? 내 눈빛에서 더한 말도 하고 있음을 난 알았고 아버지도 알았다.
깊게 한번 째려보더니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나간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표정의 네 번째 여자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간다. 지겨운 양반들.
이 빌어먹을 눈물은 여기서 왜 지랄인 거야. 울면 지는 건데...
끝났나 했더니 기어이 훈이가 한소리 보탠다.
아직 울면 안 된다!!!
"너무 서운타 마라. 아부지 말이 서운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틀린 말도 없잖아.
니가 이혼해서 다시 아부지 밑으로 들어와 호적이 지저분해지면 뭐 좋은 것이 있겠냐. 아부지도 챙피하제. 안그냐? 우리 선우도 챙피허고. 글고 너도 니 새끼 생각도 해야 쓸 거 아니냐. 해성이 생각은 안 하냐? 넌 어떻게 너만 생각하냐? 가만 보믄 넌 항상 너만 생각해야. 왜 그냐? 어찌게 그렇게 이기적일 수가 있다냐. 하여간 너도 진짜 못돼먹었시야...."
있는 힘껏 째려봤다.
"너는 이혼하믄 평생 가슴에 돌덩이를 얹고 살 것이다. 평생을 울고 살아야제. 안그냐? 새끼 두고 이혼하믄 그 정도는 각오하고 살아야 안 쓰겄냐?
절대 편하게 살믄 안되제. 그래서도 안 되고.
새끼한테 미안해함서 평생을 속죄 하믄서 그렇게 살아야제.
이집 저집 니가 주는 피해가 얼마냐? 하여간 그렇게 살기 싫음 잘 생각해서 결정해라. 내 새끼는 뭔 죄냐, 또 나는 뭔 죄고? 나도 좀 살자.
느 아부지 저러고 사는 것도 힘들어야?! 것도 힘든디 인자 너까지 이혼하믄 나는 동네에서 또 뭔 소리를 듣고 살 것이냐?
아버지에, 자식에. 똑같다는 소리밖에 더 듣겄냐? 하여간 잘 생각해 봐라. 너만 생각하지 말고야!?
나라고 좋은 날만 있겄냐? 그래도 참고 살아야. 왜? 이 소리 저 소리 듣기 싫은게. 너도 그 정도는 생각하믄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동생이었으면 손이 먼저 나갔으리라. 떨리는 손을 겨우 손짓으로 바꾸어 가라고 지껄인다. 역시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어쩔 수 없이 나간다.
양아치 같은 새끼. 저런 것도 오빠라고. 어떻게 하면 더 쓰라린 말을 해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놈 같다. 어떻게 하면 가슴 후벼파는 소리로 아프게 해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놈 같다. 그렇지 않고는 어떻게 동생에게 저렇게 무자비하게 말을 건넬까. 세월이 흘러도 어쩔 수 없이 넌 평생을 나쁜 놈이다.
네가 무서워하는 동네 사람들 수군거림을 듣는 이유는 네 아버지가 너한테 단독주택을 물려주었기 때문이고, 참고 사는 건 네 마누라한테 잡혀 살기 때문이잖아. 저 병신이 그걸 지금 누구한테 탓을 돌리는 건지. 동네 수군거림이 듣기 싫었으면 그 집 안 받았음 됐을 일을. 표면적으로야 아들이고 장손이니 당연히 집은 훈이가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나 네 번째 여자 묵인하는 조건으로 집 받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 역시 없었다. 동생들과 상의 한번 없이 여자 들이고 집 받았으면 저도 동네 사람들 뒷소리 들을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어야지.
네가 남자여서, 아들이어서 집 받은 거야, 병신아.
그놈의 남아선호사상이 너를 살리고 있는 거라고, 이 지지리 못난 놈아.
집 받고 욕을 나한테 돌리는 저 양아치 짓은 어쩜 저리 제 아버지를 쏙 빼닮았는지.
이제야... 참다가 봇물 터진 눈물을 닦는다.
왜 그런 결정을 해야 했는지 너는 괜찮은지는 아무도 누구도 묻지 않았다. 저런 것들이 식구랍시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