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의 노름을 안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너무 쉽게 아무 일 없듯이 그렇게 훅 치고 들어왔다. 워낙에 시답잖은 남자들이 한다는 짓은 다 하는 사람이었기에 반은 포기하고 살던 시간이었다. 아이 때문에 산다는,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산다는 여인들. 가장 싫어하던 여인들의 모습이었다. 가장 경멸하던 여인들의 모습을 내가 밟고 있는 줄 알았으나 그 또한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입찬소리는 하는 게 아니라던 어른들 말이 맞나 보다 하면서 나를 죽이던 시간이기도 했다. 정말 오기라도 없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지 나 자신도 나를 믿을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월급이 미뤄지고 있다고 흘러가는 말처럼, 변명처럼 했으며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믿었다. 믿었다기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또 믿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원래도 내게는 잘 들어오지 않던 월급이었다. 제 손에 받아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손으로 들어오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쪼들리고 힘들었으나 말해봐야 별수 없으므로 내 월급으로 쪼개 가며 살았다.
우연히 그 사람 회사 사모를 만났고 너무나 반갑게 인사를 했으며 아이의 건강을 물었고 부모의 안부까지 챙겼다. 좀 이상했다. 급여를 일 년 가까이 밀리고 있는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평온했으며 당당했고 자애로웠다.
싸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싸함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기회로 다가왔다. 설레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안 되었을 때였다.
집에 기름이 없어서 난방도 안 되고 뜨거운 물도 안 나온다고. 그러니 월급 받으면 일찍 돌아와 해결해야 아이 씻기고 춥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신신당부했다. 거의 애원하다시피 부탁한 말이었다.
밤 열 한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난 포기했다. 오늘 밤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싸한 예감이 들었다. 가스레인지 양쪽에 뜨거운 물을 끓여가며 통에 붓기를 여러 번 하고 그 열기로 방을 데우고 한편에 미지근한 물통 두 개 만들어 아이를 씻기고 두꺼운 이불에 아이를 싸서 따뜻한 우유를 먹였다. 우유를 먹는 아이를 보면서 난 내 인생의 황량함을 보았고 미래의 어둠을 보았다.
내가 저 어둠을 어찌 헤쳐나가야 하겠니, 아가야.
난 왜 이렇게 쉬운 게 없대니, 아가야.
내 싸움에 너까지 끌어들여서 어쩐다니, 아가야.
냉소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쳐서 쓸어내리는데 갑자기 그 사람의 어머니가 오셨다. 아이 이름 받아 오셨단다. 방안 꼴아지에 놀라셨고 내 꼴아지에 놀라셨고 집 안 냉기에 놀라셨다. 어린 나이에 이만큼 대처를 한 네가 고맙다며 기다리라고 나가신 그분은 그 사람을 잡아 왔다.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셜록홈즈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어디서 잡아 왔을까. 그땐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저 내가, 아이가 처한 상황만 해결되었으면 했다.
"여자가 잘하면 괜찮아지는 벱이여. 니가 현명하니께 잘하리라 믿는다, 내는. 모두가 여자 하기 안 나름이겄냐? 니가 잘하고 애기가 커서 이쁜 짓 하믄 맘 잡고 돌아와야. 근게 좀만 참아라.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