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사상

#6. 살면서 입찬소리는 하는게 아니다

by 영하


그 사람의 노름을 안 것은 작년 겨울이었다. 너무 쉽게 아무 일 없듯이 그렇게 훅 치고 들어왔다. 워낙에 시답잖은 남자들이 한다는 짓은 다 하는 사람이었기에 반은 포기하고 살던 시간이었다. 아이 때문에 산다는,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산다는 여인들. 가장 싫어하던 여인들의 모습이었다. 가장 경멸하던 여인들의 모습을 내가 밟고 있는 줄 알았으나 그 또한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입찬소리는 하는 게 아니라던 어른들 말이 맞나 보다 하면서 나를 죽이던 시간이기도 했다. 정말 오기라도 없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지 나 자신도 나를 믿을 수 없는 시간이기도 했다. 월급이 미뤄지고 있다고 흘러가는 말처럼, 변명처럼 했으며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믿었다. 믿었다기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던 것 같다. 또 믿지 않으면 어쩌겠는가. 원래도 내게는 잘 들어오지 않던 월급이었다. 제 손에 받아서 무얼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손으로 들어오는 일은 거의 드물었다. 쪼들리고 힘들었으나 말해봐야 별수 없으므로 내 월급으로 쪼개 가며 살았다.

우연히 그 사람 회사 사모를 만났고 너무나 반갑게 인사를 했으며 아이의 건강을 물었고 부모의 안부까지 챙겼다. 좀 이상했다. 급여를 일 년 가까이 밀리고 있는 사람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평온했으며 당당했고 자애로웠다.

싸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내가 느낀 싸함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내게 기회로 다가왔다. 설레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지 한 달이 안 되었을 때였다.

집에 기름이 없어서 난방도 안 되고 뜨거운 물도 안 나온다고. 그러니 월급 받으면 일찍 돌아와 해결해야 아이 씻기고 춥지 않게 할 수 있다고 신신당부했다. 거의 애원하다시피 부탁한 말이었다.

밤 열 한시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난 포기했다. 오늘 밤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싸한 예감이 들었다. 가스레인지 양쪽에 뜨거운 물을 끓여가며 통에 붓기를 여러 번 하고 그 열기로 방을 데우고 한편에 미지근한 물통 두 개 만들어 아이를 씻기고 두꺼운 이불에 아이를 싸서 따뜻한 우유를 먹였다. 우유를 먹는 아이를 보면서 난 내 인생의 황량함을 보았고 미래의 어둠을 보았다.

내가 저 어둠을 어찌 헤쳐나가야 하겠니, 아가야.

난 왜 이렇게 쉬운 게 없대니, 아가야.

내 싸움에 너까지 끌어들여서 어쩐다니, 아가야.

냉소를 흘리고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쳐서 쓸어내리는데 갑자기 그 사람의 어머니가 오셨다. 아이 이름 받아 오셨단다. 방안 꼴아지에 놀라셨고 내 꼴아지에 놀라셨고 집 안 냉기에 놀라셨다. 어린 나이에 이만큼 대처를 한 네가 고맙다며 기다리라고 나가신 그분은 그 사람을 잡아 왔다.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셜록홈즈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어디서 잡아 왔을까. 그땐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고 그저 내가, 아이가 처한 상황만 해결되었으면 했다.


"여자가 잘하면 괜찮아지는 벱이여. 니가 현명하니께 잘하리라 믿는다, 내는. 모두가 여자 하기 안 나름이겄냐? 니가 잘하고 애기가 커서 이쁜 짓 하믄 맘 잡고 돌아와야. 근게 좀만 참아라. 고생했다.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고 자거라."


여자가 어떻게 잘해야 괜찮아지는 것인가요?

모든 것은 여자가 현명해야 해결이 되는가요?

남자 맘을 잡기 위해서는 여자는 잘하고, 아이는 이쁜 짓을 해야 하는 건가요?

남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여자고, 아이인 건가요? 남자를 위해서 참아내야 하는 시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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