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사상

#10. 봉투 하나씩 들고 나오는 남녀는 모두 우리였다.

by 영하

봉투 하나씩 들고나오는 남녀는 모두 우리였다.

어떤 이유로든지 판사 앞에 섰고 두세 가지 질문에 대답했고 봉투 받았고 허탈하게 걸어 시멘트벽 건물을 빠져나오는 남녀는 모두 나의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나이에 서로 다른 옷을 입고 겉에 쓴 탈만 다를 뿐 그저 우리는 우리였다. 세상을 살아가다 지금 하나의 산을 만나 잠시 주춤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민망해서인지 못 볼 곳에서 봤다는 알지 못할 기분 나쁨인지 모를 묘한 감정으로 서로 쳐다보지도 흘깃거리지도 않고 제 갈 길 바빴으나 그 뒷모습마저 외롭고 가라앉은 것은 분명 나였고, 우리였다.

기뻐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저 하나같이 봉투를 바라보며 허탈해했다. 다행이었다.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충고해 줬는데 나는 우리만 봐서.


"점심이나 먹자. 배고프다."


그 남자가 오늘 처음으로 던진 말이었다. 둘 다 점심시간을 빌려 나왔으니 점심을 거른 상태이긴 했다.

보이는 아무 국밥집이나 들어갔다.

밥맛은 없었다.

단지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것이 있었다. 아이가 친가에 있었다. 보내주질 않고 있었다.


“아이... 나한테 보내줄 거지?”


“그런다니까.”


“근데 왜 안 보내? 알지?! 아이 때문에 이만큼 버티고 살았다는 거.

내 아들 아니었음 나 벌써 죽었어. 아이 때문에 살았어. 보내줘. 크면 보내줄게. 아니 만나고 싶다 그러면 언제든지 만나게 해줄게. 제발 보내줘”


“보낸다니까. 보낸다고. 내가 말한다고. 좀 기다려.”


그 말이 고마워 눈물이 났다. 이제 좀 안심이 되었다. 그제야 밥이 조금 들어갔다. 허나 안심은 그렇게 그때만 나를 좀 진정시키고 여름 내내 가슴을 후벼팠다. 그날 먹은 밥이 여름을 버티고 있었다.

너를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개차반인 너를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는 너를 믿는 것이 아니었는데.

김씨가문의 장손이다. 감히 어디를 보낸다는 말이냐. 죽어도 우리가 키운다. 계집애도 아니고.

이 빌어먹을 남아선호사상은 또 나를 짓누르고 나를 짓밟고 난도질하고 있었다.

찾아가 엎드리고 울어도 보고 빌어도 보고 시위도 해봤으나 이길 수가 없었다. 난 그렇게 그 여름을, 아이를 잃고 있었다.

내가 여자여서 어미여서, 내 아이가 장손이어서, 계집애가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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