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로든지 판사 앞에 섰고 두세 가지 질문에 대답했고 봉투 받았고 허탈하게 걸어 시멘트벽 건물을 빠져나오는 남녀는 모두 나의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나이에 서로 다른 옷을 입고 겉에 쓴 탈만 다를 뿐 그저 우리는 우리였다. 세상을 살아가다 지금 하나의 산을 만나 잠시 주춤하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민망해서인지 못 볼 곳에서 봤다는 알지 못할 기분 나쁨인지 모를 묘한 감정으로 서로 쳐다보지도 흘깃거리지도 않고 제 갈 길 바빴으나 그 뒷모습마저 외롭고 가라앉은 것은 분명 나였고, 우리였다.
기뻐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저 하나같이 봉투를 바라보며 허탈해했다. 다행이었다. 여러 가지 모습의 사람들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충고해 줬는데 나는 우리만 봐서.
"점심이나 먹자. 배고프다."
그 남자가 오늘 처음으로 던진 말이었다. 둘 다 점심시간을 빌려 나왔으니 점심을 거른 상태이긴 했다.
보이는 아무 국밥집이나 들어갔다.
밥맛은 없었다.
단지 확실하게 해두어야 할 것이 있었다. 아이가 친가에 있었다. 보내주질 않고 있었다.
“아이... 나한테 보내줄 거지?”
“그런다니까.”
“근데 왜 안 보내? 알지?! 아이 때문에 이만큼 버티고 살았다는 거.
내 아들 아니었음 나 벌써 죽었어. 아이 때문에 살았어. 보내줘. 크면 보내줄게. 아니 만나고 싶다 그러면 언제든지 만나게 해줄게. 제발 보내줘”
“보낸다니까. 보낸다고. 내가 말한다고. 좀 기다려.”
그 말이 고마워 눈물이 났다. 이제 좀 안심이 되었다. 그제야 밥이 조금 들어갔다. 허나 안심은 그렇게 그때만 나를 좀 진정시키고 여름 내내 가슴을 후벼팠다. 그날 먹은 밥이 여름을 버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