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선호사상

#9. 그렇게 봄을 맞았다

by 영하

그렇게 봄을 맞았다.

그렇게 봄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름다운 것의 다른 이름은 '아프다'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봄이었다. 아름답고 화사했으며 빛이 나던 그해 봄은 결국 내 발목을 잡고, 난 기어이 잡혀 주기로 했다.

황량한 시멘트벽으로 이루어진 법원 건물은 양쪽으로 들어선 파란색 건물들로 더 답답해 보였다. 빽빽하게 들어선 파란색 변호사 사무실 간판으로 도배를 해 건물인지 변호사들의 집합소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저 파란색 건물로 보였다. 다만 시멘트벽과 대조적으로 반짝반짝 빛은 났다.

어서 오라고 내가 너를 대신해서 시퍼런 칼을 휘둘러 싸워줄 수 있다고.

내게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좀 이르게 법원 앞에 도착한 나는 변호사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가며 내 앞에 줄을 세웠다. 한 명씩 소환할 때마다 물었다.

나 잘하고 있어요?

잘한 결정이에요?

오기 부리지 않고 삶이 흘러가게 두고 있는 거예요?

줄은 길게 세워지는데도 자신은 없고 답은 없고 시퍼런 칼은 너만 생각한다면서 이기적이라고 애는 어쩔 거냐고 울어댔다. 나는 점점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어디서 오는지 제시간에 법원 앞에 나타났고 궁지에 몰린 나를 구해 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어라 답을 찾지도 못하고 궁지에 몰리고 있던 나였다.

둘 다 말 한마디 없이 법원으로 들어갔다. 들어가 작성해 온 신청서를 내고 몰뚝하니 앉아 있었다.

누군가 이름을 불렀고 따라 들어간 법원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사무실 같았다. 가운데 앉은 판사가 물었다.

판사의 질문은 아주 간단했다. 결혼은 복잡하더니 이혼은 간단했다.

마지막 세 번째 질문이


"애는 엄마가 키우시는 건가요?"


"네."


"네, 됐습니다. 밖에 나가셔서 기다리시면 서류 주실 겁니다."


끝이었다. 나와서 또 몰뚝하니 기다린다.

이 집 저 집 인사를 다니고 허락을 구하고 준비를 하고 식을 올리고 신행을 다녀오고 이바지를 하고 인사를 하고. 결혼식은 복잡하고 정신이 없더니 이혼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아니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런 아이러니 한 일이. 잠시 후 이름을 부르더니 서류를 그 사람과 내게 한 부씩 주었다.


"두 분에게 한 부씩 드리는 서류는 동사무소에 제출하지 않으면 무효입니다. 두 분 중

한 분만 제출하셔도 최종 이혼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고 제출해 주세요. 가시면 됩니다."


옆을 보니 고개를 끄덕인다. 이럴 때도 대답이 없다. 쳐다보니 내게 눈짓한다. 여기서도 남자고 싶다 이거지. 빌어먹을. 할 수 없이 내가 건조하게 대답한다. 네라고.

너도 남자라고 여자 위에 서고 싶다 이거지? 여기저기에 아무렇지 않게 자리를 잡은 남아선호사상은 이렇게 불쑥불쑥 지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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