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시를 쓰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희도 Mar 05. 2023

애먼세월

               애먼세월


                                  
 
 한 짐 얹은 지게에 등이 휘고
 휘는 등 지게 작대기에 의지하면서
 걷는 모양새가 헐근헐근허다
 
 

휘적휘적 내 손에 고삐 쥐여 주고 

세상사 걱정 없이 걷고 있는 누렁이도 

앞서 걷는 자네의 뒷모습이 짠한가 보네     


내 눈 한번 보고 지게 등짐 한번 보고

살빛 혓바닥 내밀어 입 한번 쓱 닦는 것이

누렁이도 좀 덩둘허긴 허나 보네     


동네 마실 댕겨오다 주인 얼굴에 반가워

앞길 막고 꼬리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메리는 자네 얼굴에 미소를 얹어주네그려     


헐근거리게 걷는 걸음을 지탱해주는

지게작대기를 용케도 피해 가며 속도를 맞추고

경호하는 양 떡하니 걷는 품새가 뉘라서 똥개라 할 텐가     


큰 눈으로 인간의 정 듬뿍 담아 자네를 쫓고

자네 외에는 아무도 안 보인다는 표정을 갖는

누렁이와 메리는 내가 참 부끄럽네     


가자 가자 이집 저집 마실 댕기랴

집 지키랴 오늘새 너도 힘들었을 거인디

어서 가서 저녁밥 한 숟가락 떠 묵자     


오는 아그들 가는 아그들 인사 다 받아주고

지게 짐 지고 가심서도 이집 저집 안부 챙기시고

동리 일 다 내 집 일이시던 그래서 대인이셨던 아버님     


그때도 저리 뛰어와 반기며 환장을 하던

메리는 머리 한번 디밀어 이쁜 짓 한번하고

나란히 걸어가던 모양새가 그때나 지금이나     


하마 세월은 선친과 자네를 닮게 하고

그 메리가 지금 메리가 긴 듯도 아닌 것처럼

지게 내려놓는 모습까정 영락없는 아버지로세     


뒤돌아 살긋이 웃는 자네는 부처님 반토막일세

살풋이 풍기는 등에 배긴 풀냄새에 설레네 허허

흙에 젖은 땀 냄새가 어스름 시 붉은 저녁을 달래네     


오늘 밤

숨겨놓은 그 탁배기에 세월을 마셔 버리세나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영춘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