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엔 세상에 꽃이 피었다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향기로 머물렀고
향기로운 꽃잎은 떨어져서도 꽃밭이 되었다
스무 발자국, 서른 발자국을 꽃밭을 밟았고
세상에 나를 던져 높은 하늘을 가졌다
마흔이 되고 보니 내가 가진 하늘은 없었다
모든 것이 높고 뾰족한 허상이었다
가슴에 차가운 후회만 남았을 뿐
추억 하나하나를 겹으로 겹으로 꽃을 피웠다
쉰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높았고 겨우 피워낸 수국 한송이는
꽃눈이 되어 나풀거렸다
내가 가진 추억은 꽃눈으로 날아가고
몸에는 싸리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쉰을 넘어가는 고개에서
몸에 내려앉은 싸리눈을 치우려
덕지덕지 갑옷을 바른다
늘어가는 숫자에 갑옷도 늘어가고
갑옷의 무게는 나를 누른다
나는 가슴에 남은 수국의 앙상한 줄기가 무겁다
나는 앙상한 줄기에서 올라오는 오취가 무섭다
높기만 했던 하늘을 품으면 부취가 순해질까
내가 바르는 갑옷이 오늘 한 장 더 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