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무제

강소이(2023년 한국문학상 대상 수상 시인)


비 오는 날 그녀는 쓴다. 그에게 이메일을

예컨대, "기차에 들이치던 빗줄기

숨은 별들은 푸르고 멀리서 빛나고 있다"고


빗소리는 바람을 치고, 비의 손가락들은

그의 가슴을 노크한다


비 오는 날 그녀는 쓴다. 그에게 이메일을

그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는 들판의 저녁별을 사랑했다


이런 밤이면, 그는 그녀를 꿈꾸고 있었다

그녀의 도도한 손등에 꽃잎이 스치길


창밖으로 타던 연초연기의 손가락이

공중으로 흩어지듯


500년을 넘게 살았다는 나무뿌리에

한 줌 거름으로 타버린

어느 바다의 광막한 빗발

어느 바다의 광막한 눈발


- 강소이 시인의 5번째 시집 [바람의 눈동자]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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