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간병사의 손에 맡기다
2024년 11월 13일
엄마를 마지막으로 간병 한 날.
그게 엄마의 마지막 간병 일지 몰랐다.
다음날 오전 남동생과 교대하고 오후 1시에 간병사에게 엄마를 맡겼다.
간병에 지친 나와 남동생은 언니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더 이상은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엄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곁에서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고.
예상과 달리 3시간 만에 간병사를 구해 엄마를 인계했다.
엄마는 자식의 손을 떠나 낯선 조선족 간병사의 돌봄을 받았다.
엄마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마음 아팠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정한 일이라 더 그랬다.
늘 자신의 곁을 지키던 자식은 온데간데없고 낯선 여자가 눈앞에 있으니 엄마는 얼마나 놀라고 당황스러웠을까.
자식으로 못할 짓을 하는 것 같아 죄책감에 짓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잘 한 결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병사는 전문가이고 엄마와는 아무런 감정도 섞이지 않았으니 잘 돌봐줄 거라는 바람도 생겼다.
엄마는 하루종일 앓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밤에는 다른 환자들의 수면에 방해가 되니까 1인 치료실로 옮겨졌다.
난 그곳이 맘 편했다. 남들 신경 안 쓰고 엄마만 돌보면 되니까.
24시간 대기조로 신발을 신은 체 수시로 보조침대에 눕기를 반복했다.
잠시라도 틈틈이 쉬어줘야 간병할 수 있다는 걸 엄마를 돌보며 체득했다.
엄마와 일상적인 대화가 되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눈을 바라보며 오른쪽 귀에 대고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하면 엄마는 알아들으셨다.
그런데 이젠 딴 소리를 했다.
엄마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는듯했고
나는 간병하는 입장에서 내가 해야 할 말을 했다.
서로 대화를 한다고 했지만 의사소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도저도 아니다 싶으면 대화하길 포기하고 웃긴 얘기로 우울한 침상분위기를 전환했다.
웃픈 현실에 소리 내어 웃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져 이내 기운이 다운되었다.
근데 신기하게도 엄마가 알아듣는 말이 있었다.
다른 건 다 못 알아듣고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말이다.
엄마는 '밥 먹고 온다'는 소리에 고개를 끄덕이셨다.
병간호하는 자식이 안쓰러워 끼니 챙기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을까.
문득 엄마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이 스치면 슬픔이 찾아왔다.
엄마의 한가닥 정신줄에 의지하며 조금은 맘 편히 밥을 먹고 올 수 있었다.
엄마의 행복
엄만 맛난 음식 먹는 기쁨을 모른다
엄만 놀러 다니는 즐거움을 모른다
하지만...
엄만 자식이 눈앞에 얼른얼른하면 행복하단다
엄마에겐 자식이 최고
엄마에겐 자식이 행복
- 2022년 11월 14일 월요일에 쓴 시
엄마는 밤새 불도 끄지 못하게 하고 날이 밝아올 때까지 한숨도 주무시지 못했다.
오전에는 2~3분 잠깐 졸기만 할 뿐 침상에서 몸무림 치셨다.
고개를 가로졌고 팔을 허우적대며 앓는 소리를 냈다. 평소 보이지 않는 이상행동이었다.
건강상태가 악화되니 치매증상이 심해진 듯했다.
동생과 얼른 교대하기 바랐고 이 상황과 장소를 피하고만 싶었다.
약속된 시간 11시. 간병에서 해방되는 때를 기다리며 그 상황을 견뎠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무신경하게 엄마 머리맡에서 수발하며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간호사가 와서 어지럽게 달린 링거와 주삿바늘, 호흡과 맥박을 체크하고 있을 때
엄마는 몸부림을 치며 "엄마, 엄마, 엄마"라고 세 번을 외쳤다.
잠을 자는 것도 꿈을 꾸는 것도 아닌 것 같았는데.
생시는 더더욱 아니었다. 처음 보는 생경한 모습이었다.
'엄마는 왜 자신의 엄마를 제정신도 아닌 상태에서 세 번이나 부르셨을까.'
그것도 분명하고 명확한 소리로.
지금도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엄마가 왜 엄마를 불렀는지. 그것도 세 번씩이나.
이젠 엄마에게 여쭤볼 수조차 없다.
2022년 5월 말경, 병원에서 그토록 가고 싶어 하던 집으로 돌아와 엄마는 2년 6개월을 덤으로 사셨다.
그래서 무한정 슬프지만 않다.
2024년 11월 17일 새벽 2시 3분.
엄마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간병사에의 손에 맡겨진 지 삼일 만에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