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른 후 혼내봤자

아무 일 없다는 듯

by 명랑 숙영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기 바쁘게 거실 주변을 살폈다.

자두가 또 '저지레를 했으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날 반기러 현관으로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어떤 그림이 펼쳐질지 예상이 되었다. 자두는 이미 혼날 준비를 하며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자두는 배를 보이며 얼음이 되어 누워있었다. 아직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는데 어쩜 저러고 있는지 우습고 안쓰러웠다.


주방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지긴 했지만 엎진 않았고 내용물을 먹지 않은 듯했다. 역시나 화장실에도 다녀온 흔적이 있었다. 휴지통 주변에 휴지들이 줄지어 널려 있었다.

화가 약간 올라왔지만 참고 아무 일 없다는 듯 주변을 치우며 자두를 힐끗힐끗 쳐다보았다.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자두도 몇 초 사이 간격을 두고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지난번처럼 인터넷 선을 끊어 놓지는 않았다. 볼펜을 물어뜯어 조각조각 내놓았다. 날카롭게 부서진 플라스틱에 입 안을 다치지나 않았나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다행히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입 주변 털에 볼펜 약이 거뭇거뭇하게 묻어 있어 꼴이 우스웠다.

"아니, 자두 이게 뭐야? 입이 왜 이래?"

내 물음에 자두는 고개를 쓱 돌리며 눈을 피했다.

그런데 정작 큰일은 거실에 있었다. 자두아빠가 애지중지하는 책을 물어뜯어 놓았다. 모서리가 너덜너덜해져 찢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아빠의 귀가 후 자두가 얼마나 혼날지 심히 염려되었다. 자두도 그걸 예견했는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거실 바닥으로 떨군 채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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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두는 이빨이 간지러워 뭔가를 씹고 싶었고 혼자 남겨져 무료해서 그랬을 뿐이다.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자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오히려 내 잘못이라 여겼다. 그래서 외출하면 조바심이 생겨 서둘러 볼일만 보고 돌아왔다. 중요한 일이 아니면 가급적 집을 비우지 않고 자두와 함께 보냈다.

처음엔 자두의 잘못을 깨우쳐주려고 일부러 혼냈다. 그 후 자두는 나의 작은 감정표현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지레 겁을 먹었다. 그래서 지나친 감정표현은 피하고 차분하게 자두를 대했다.

반려견을 교육할 때 시간이 흐른 후에 야단을 치면 아무 효과가 없다고 한다.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모른 체보호자가 자신을 혼낸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반려견과 보호자 사이만 나빠지는 것이다. 현장을 목격한 경우는 예외지만.


언제 일어났는지 자두가 어느새 곁에 와있다. 사과라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용서를 구하는 애교 섞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자두도 나처럼 마음을 표현하는 게 서툰가 보다.

나랑 많이 닮은 자두, 키를 낮추어 그 생물체를 바라보았다. 눈동자가 맑고 선했다.

말없이 자두를 쓰다듬었다.

“자두, 손!”

"자두, 이쪽 손!"

자두가 번갈아가며 서둘러 손을 준다. 나도 얼른 간식을 입에 넣어 준다.

자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빤히 내 눈을 쳐다보며 다음 간식을 기다린다.

오늘 저녁 자신의 운명을 알지도 못한 채.

자두야, 이 일을 어쩌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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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