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학교는 여전히 교장 공화국

by 꿈강

'학교는 교장 공화국'이라는 말을 들으면, 요즘 교장들 중에는 분명 펄쩍 뛸 교장들이 있을 듯싶다. 내가 아는 어떤 교장은, 선배 교장들에게서 교장 부임 1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부임 첫해부터 무언가 바꾸려고 했다가는 교사들의 반발로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상황이 벌어지니 첫해에는 그냥 가만히 관망하라고 했단다. 실제로 그 교장이 부임한 어떤 학교의 첫해는 그야말로 고요했다고 한다. 태평성대가 따로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내가 교직에 발을 처음 디딘 1989년과 비교해 볼 때, 요즈음은 교장의 힘이 약간 빠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 생각엔 학교는 여전히 교장 공화국이다. 교장이 마음먹고 밀어붙이면 못 할 일이 없고, 교장이 안 된다고 하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내가 교직생활 동안 겪은 일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겠다.


2007년으로 기억한다. 다른 학교에 가 보니, 학생들이 서서 공부할 수 있는 책상(키다리 책상)이 교실마다 서너 개씩 있었다. 근무하는 학교에 가서, 교감에게 우리 학교에도 교실마다 키다리 책상을 몇 개 놓으면 어떠겠냐고 건의했다. 교감이 행정실에 문의하더니, 예산 관계상 다음 해에나 가능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교실마다 키다리 책상이 놓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니, 교장이 어떤 학교에서 키다리 책상을 보고 우리 학교도 당장 들여놓으라고 했단다. 교장 한마디에, 예산 때문에 당장은 들여놓기 어렵다던 키다리 책상이 교실마다 바로 놓이는 마법이 벌어졌다.


2012년에 근무 학교를 옮겼다. 그 학교는 정기고사 시험 문제에서 약간의 오류라도 있으면 오류 문항에 한해 무조건 재시험을 본다고 했다. 같은 지역의 다른 고등학교들에서는 시험 문제 오류의 정도에 따라 재시험을 보기도 하고 복수 정답을 인정하기도 하는 터라, 그 이야기를 듣고 저절로 고개가 갸웃해졌다. 또 그 당시 도교육청의 학업성적 관리 지침에도 학교 학업성적관리위원회 회의를 거쳐 복수 정답을 인정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었다. 어느 날 교장과 독대한 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내 보았다. 무조건 재시험을 보지 않고, 학업성적관리위원회 회의를 통해 복수 정답을 인정해도 무방하지 않겠냐는 취지의 이야기를 꺼냈다. 교장 왈, 그랬다가는 정기 감사에서 지적을 받는단다. 금시초문이었다. 성적 담당 부장 교사로 정기 감사를 받아 본 경험이 있는데, 복수 정답을 인정했다고 지적을 받지는 않았다. 재시험을 보았든 복수 정답을 인정했든, 시험 문제 출제 소홀로 지적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때의 감사관이 이상한 사람이라며 교장 자신의 말이 맞다는 말만 반복하며 자신의 말을 증명해 줄 감사 지적 사례가 있다고 했다. 보여줄 수 있냐고 하니, 찾아서 보여주겠노라고 해서 교장실을 나왔다. 허나 깜깜무소식이었다.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 아닌 터라, 나도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또 그 학교의 그 어떤 교사도 교장의 재시험 방침에 토를 달지 않았으므로 그 교장이 재직하는 동안 그 학교는 시험 문제 오류가 발생할 때마다 재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이듬해 다른 교장이 부임하자, 왜 쓸데없이 무조건 재시험을 보냐며 중대한 오류가 아니면 복수 정답을 인정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그 어떤 동요도 없이, 그 학교는 새로운 교장의 방침을 충실히 따랐다.


2023년의 사례를 하나 더 살펴보자. 새 학기 수업 시간표를 받아 본 대다수 교사들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우뚱했다. 수요일 오후 시간표가 문제였다. 이랬다. 5교시 창의적 체험활동의 자율활동, 6교시 창의적 체험활동의 동아리활동, 7교시 정규 교과 수업. 30년 넘게 교직생활을 했지만 처음 보는 수업 시간표였다. 5, 6교시에 창의적 체험활동을 하다가 7교시에 정규 교과 수업을 하면, 7교시 수업은 거의 '죽은 수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 않겠는가. 5, 6교시를 자유롭게 보내다가 갑자기 7교시에 각 잡고 수업을 받으려면 오죽 힘이 들겠는가. 왜 이렇게 시간표를 짜야만 했는지 그 어떤 공식적인 설명도 없는 것도 문제였다. 아름아름 알아보니, 창의적 체험활동 담당 부장 교사의 아이디어라고 했다. 지난해 금요일 7교시에 동아리활동을 실시했더니 교사들이 오후에 조퇴를 너무 많이 해서, 동아리활동을 알차게 진행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하여, 동아리활동을 수요일로 옮기고, 그것도 정규 교과 시간 전에 편성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것도 소위 '카더라' 통신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짠'하고 새 학기 시간표가 발표되었을 뿐이다. 나를 포함하여 그 학교에 근무하던 교사들이 공식적으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에(뒤에서는 도대체 이 시간표가 뭐냐고 정말 말이 많았다), 수업은 발표된 시간표대로 진행되었다. 그대로 한 달이 흘렀다. 아무래도 안 되겠던지, 부장 회의에서 말이 나왔다고 한다. 7교시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5교시 정규 교과 수업을 하고 6, 7교시에 창의적 체험활동 수업을 하면 어떻겠냐 논의를 했다고 한다. 치열한 논의 끝에 그렇게 결정했고 부장 회의에 참석했던 교감도 동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부장 회의에 교장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출장 중이었다고. 출장에서 돌아온 교장에게 교감이 부장 회의에서 논의한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교장이 노발대발,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며 부장 회의 논의를 없는 것으로 하라고 했단다. 교감은 찍 소리도 못하고 알겠다고 했고, 부장 교사들에게 메시지를 돌렸단다. 교장이 부장 회의 논의를 없는 것으로 하라고 했다는. 그걸로 끝이었다. 교장 한마디로 끝이었다. 부장 회의 결정 사항은, 빛의 속도로 속절없이 사라졌다. 부장 회의 결정 사항을 그렇게 손쉽게 뒤집으면 안 된다고 공식적으로 입을 뗀 부장 교사는, 물론 단 한 명도 없었다.


세 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이와 비슷한 사례는 무수히 많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장의 생각을, 방침을, 결심을 꺾기 매우 어렵다. 그럴 수 있는 공식적인 방법이나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교장의 생각이 늘 옳다면 뭐가 문제이겠는가. 모든 교장이 플라톤이 이야기한 철인(哲人)이라면 언제나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겠지만, 그럴 리는 없지 않은가. 어쩌면 학교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조직 사회가 이런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조직이든 최상급자의 생각을 뒤집기가 만만하지는 않으리라.


하지만 최소한 학교는 그래서는 안 되지 않을까. 의사 결정의 비민주성을 학습한 교사는 학생들과의 소통에서 민주적 원칙을 견지하기 쉽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민주적 의사 결정 경험이 많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민주적 의사 결정 경험을 전수하기가 훨씬 쉽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동의할 터이다. 그러나 대다수 학교의 교사들은 민주적 의사 결정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을 성싶다. 3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치열한 논의를 거친 민주적 의사 결정을 통해 어떤 일이 시행되는 경험을 한 적은 없는 듯하다. 대개 담당 부서에서 이런저런 계획을 발표하면 이 일을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별다른 이의 없이 담당 부서의 요구를 따르곤 했다. 담당 부서의 계획은 당연히 교장의 추인을 받았을 터이니 결국 교장의 생각과 방침이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르쳐야 할 교사가, 정작 민주적 의사 결정 경험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정말 뼈 아픈 점이다.


방법이 없을까? 있다. '교직원 회의'에 결정권을 주면 된다. 교직생활 동안 무수히 많은 교직원 회의를 했지만, 이 교직원 회의에서 무엇인가를 결정한 경험은 아예 없다. 교직원 회의는 '회의'가 아니라 학교 관리자의 지시 사항을 하달하고 각 업무 담당 부서의 계획을 전달하는 기능을 했을 뿐이다. 이 회의 아닌 회의에서, 어떤 지시 사항이나 전달 사항에 토를 달기 위해 회의 도중 일어나서 발언을 하면 소위 '벌떡' 교사로 낙인찍히기 십상이다. 그렇게 되면 교직생활이 좀 피곤해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사들의 교직원 회의 도중, 매우 얌전히 열심히 수첩에다 무엇인가를 끄적일 따름이다. 어디서 많이 본 풍경 아닌가.


그러나 교직원 회의에 결정권을 부여하는 문제가 현실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교장도 교사도 이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교장들이 굳이 이 문제에 관심을 둘 까닭은 없을 터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교사들도 이 문제에 별로 관심이 없을 성싶다. 교사들은 대부분 변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현상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굳이 교직원 회의에 결정권을 부여하는, 혁신적 변화를 탐탁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30년 넘는 교직생활 동안 학교가 주도적으로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경우를 기억해 낼 수 없다. 물론 내가 교직에 입문한 때의 학교와 지금의 학교의 모습이 조금은 변했다. 학교가 변화를 주도한 것이 아니라 도도한 사회 변화의 흐름에 맞추다 보니 싫든 좋든 변화했다고 해야 옳다. 그러나 학교가 언제까지 이렇게 떠밀리기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학교가 주도적으로 먼저 변화하고 바람직하게 변한 학교의 모습을 보고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한다면, 우리 사회는 또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지 않겠는가.


교장은 철인(哲人)이 아니다. 교장이 잘못 판단할 가능성은 늘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학교에는 교장의 판단에, 교장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마땅한 통로가 보이지 않는다. 교장의 판단과 결정이 아니라 모든 학교 구성원들의 판단과 결정으로 학교가 움직여 나갈 때, 우리 교육은 희망가를 부를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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