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와닿은 시

함민복 시집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에서

by 꿈강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

담장을 보았다

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

화분이 있고

꽃의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


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


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

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

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

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

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를 흠향하려

건배하는 순간인가


눈물이 메말라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

꽃 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 함민복, <꽃> -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잠이 들었습니다

- 함민복, <가을> -



까마귀산에 그녀가 산다

비는 내리고 까마귀산자락에서 서성거렸다

백 번 그녀를 만나고 한 번도 그녀를 만나지 못하였다

예술의 전당에 개나리꽃이 활짝 피었다고

먼저 전화 걸던 사람이

그래도 당신

검은 빗방울이 머리통을 두드리고

내부로만 점층법처럼 커지는 소리

당신이 가지고 다니던 가죽가방 그 가죽의 주인

어느 동물과의 인연 같은 인연이라면

내 당신을 잊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고 독해지는 마음만

까마귀산자락 여인숙으로 들어가

빗소리보다 더 가늘고 슬프게 울었다

모기가 내 눈동자의 피를 빨게 될지라도

내 결코 당신을 잊지 않으리라

그대도 당신

- 함민복, <흐린 날의 연서> -



반딧불은 얼마나 별을 사모하였기에


저리 별빛에 사무쳐


저리 별빛이 되어


스-윽, 스-윽,


어둠 속을 나는가

- 함민복, <짝사랑> -



혼자 사는 게 안쓰럽다고


반찬이 강을 건너왔네

당신 마음이 그릇이 되어

햇살처럼 강을 건너왔네


김치보다 먼저 익은

당신 마음

한 상


마음이 마음을 먹는 저녁

- 함민복, <만찬(晩餐)> -



지난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 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눈물은 왜 짠가> -



달의 소리 들으러

서해 바다에 가면


말렸다 풀리는

달이 짠 비단 자락


밀물 소리 썰물 소리

갯벌 위에 가득


수만 년 여인의 자궁에

아이의 심장을 직조

- 함민복, <달의 소리> -



달빛 찬 들국화길


가슴 물컹한 처녀 등에 업고


한 백 리 걸어보고 싶구랴

- 함민복, <농촌 노총각> -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


시집 한 권에 삼천 원이면

든 공에 비해 헐하다 싶다가도

국밥이 한 그릇인데

내 시집이 국밥 한 그릇만큼

사람들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아직 멀기만 하네


시집이 한 권 팔리면

내게 삼백 원이 돌아온다

박리다 싶다가도

굵은소금이 한 됫박인데 생각하면

푸른 바다처럼 상할 마음 하나 없네

- 함민복, <긍정적인 밥> -



keyword
작가의 이전글교사로 보낸 한평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