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누구나 한 번은 야간 자율학습 희망서를 낸 적이 있다

by 꿈강

1970년대 후반에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때 우리 학교에는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건 없었다. 수업이 끝난 후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사람은 학교 도서관으로 가면 되었다. 학생들 대다수는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시간이 되면 학원에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1995년 지방 소도시 일반계(인문게) 고등학교에서 2학년 담임을 맡으며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것과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그 학교는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 여자고등학교였다.


개학 첫날인지 다음 날인지 확실치는 않은데, 학년 부장 교사가 야간 자율학습 희망서를 나누어 주었다. 그 자율학습 희망서에는 희망 또는 불희망을 표시하는 난과 학생과 부모님의 서명을 받는 난이 있었다. 학급 조회에 들어가서 희망서를 나누어 주며 내일까지 가져오라고 했다.


그런데 조회를 마치고 교무실로 돌아왔는데 담임들이 부장 교사에게 자율학습 희망서를 내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알아보니, 모든 학생들이 자율학습에 참여 때문에 자율학습 희망서를 바로 걷는다고 했다. 부모님 서명은 ㄱ냥 학생이 대신한다고 했다. 또 자율학습 희망서를 다음 날 가져오라고 하면 잃어버리는 학생들이 있어서 귀찮기만 하다고 했다.


그때가 교직 경력 6년 차였는데 야간 자율학습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것이었다. 그전에 근무했던 학교는 시골의 아주 작은 고등학교이었기 때문에 야간 자율학습이라는 건 아예 없었다. 모든 학생이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한다는 건 어떤 형태이든지 강요가 수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자율학습이 아니라 강제 학습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또 여러 가지 사정상 방과 후에 학생들을 학교에 남겨서 공부를 시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당당하게 그렇게 할 일이지, 자율학습이란 이름은 무엇이고 희망서는 웬 말이란 말인가.


우리 반 학생들만이라도 진짜 순수하게 희망을 받아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종례 시간에 학급에 들어가, 우리 반은 순수 희망을 받아 야간 자율학습을 운영하겠노라고 말했다. 집에 가서 부모님과 잘 상의해서 다음 날까지 희망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그래도 되느냔다. 원래 야간 자율학습은 그냥 다 하는 것 아니냔다. 1학년 때 담임 교사가 자율학습 희망서를 나눠 주며, 우리 학교는 모든 학생이 자율학습에 참여하는 게 원칙이니 희망란에 동그라미 치고 부모님 서명까지 다 하라고 한 뒤 자율학습 희망서를 걷어 갔단다.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학생들의 말을 듣고 난 뒤 우리 반은, 부모님과 잘 상의해서 자율학습 참여 여부를 결정하면 결정한 대로 해 주겠다고 선언하듯 말하며 종례를 끝냈다.


다음 날 조회 시간에 자율학습 희망서를 걷었다. 불희망자는 딱 한 명이었다. 지역 내 최고 명문 고등학교답게 대부분의 학생들이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이 정도면 순수 희망 조사를 해도 괜찮을 듯싶은데 왜 자율학습 희망서를 나눠 주자마자 걷었는지 알 수가 없다. 학생들의 자율학습 참여도가 적을까 염려되어 그랬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율학습을 강요하고 부모님 서명까지 대신하게 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전화가 걸려 왔다. 우리 반의 유일무이한 자율학습 불희망자의 아버지였다. 아이가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에 참여하는 걸 무지무지 싫어해서 1학년 때도 자율학습에서 빠지고 싶어 했단다. 학교에 이야기해서 자율학습에서 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혹시 아이에게 어떤 불이익이 있을까 봐 그렇게 하지 못했단다. 자율학습 참여 희망 여부를 먼저 물어보아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2학기 야간 자율학습 희망을 받는 시기가 되었다. 학년 회의를 할 때 순수 희망을 받아 자율학습을 운영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다른 반 담임 교사들이, 그렇게 하면 자율학습이 제대로 운영되기 힘들다고 했다. 이구동성이었다. 어쩔 수 없이 우리 반만 그렇게 했다. 불희망자는 여전히 한 명이었다. 다른 반은 여전히 자율학습 희망서를 나누어 주자마자 걷었다. 우리 반만 독특하게 자율학습 희망을 받는 것에 대해 태클을 걸지 않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내가 근무한 지역 고등학교에서 이런 식의, 희망을 가장한 강제 야간 자율학습이 2011년까지 계속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 도교육청에서 순수 희망을 받아 야간 자율학습을 운영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학생과 학부모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어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은 차츰 자취를 감추었다.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오래 걸렸어야 할 일인가 싶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정규 수업이 끝난 뒤 학교에 남아 공부를 할지 말지는 학생이 스스로 결정하게 해야 마땅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 마땅한 일을, 그 오랜 기간 동안 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마치 학생들 스스로가 결정한 것처럼 자율학습 희망서를 받아 두었다. 학부모 서명까지 학생들이 하게 하면서 말이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그런 자율학습 희망서를 받아 놓았을까.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하면서 누군가 자율학습 희망서를 보자고 한 적은 없었다. 전임자가 쓰던 캐비닛을 정리하다가 구석에 처박혀 뒹굴고 있는 자율학습 희망서 뭉치를 쓰레기통에 버린 기억만이 선명하다.


이제는 희망을 가장한 강제 자율학습을 시키는 학교는 더 이상 없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학생들의 희망을, 요구를 100% 받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만 자율학습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정도의 일은 학생들의 희망을 들어주어야 할 터이다. 또 학생들이 부모의 서명을 대신하게 해서도 안 될 일이다.


누군가는, 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학교 현장의 교사들도 이런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학생들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희망을 강제할 수도, 서명을 대신하게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아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학교 교육이 바로 서려면 작은 부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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