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전문적 학습 공동체'에 대한 회상
2019년에 같은 지역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겼다. 지역 내 유일무이한 '혁신 고등학교'였다. 새 학년 준비 기간에 그 학교에서 행해지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전문적 학습 공동체'였다.
교직 생활을 30년 가까이 해 온 터였지만, 듣느니 처음이었다. '전문적 학습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보았을 때, 교사들이 함께 모여 무엇인가에 대해 전문적으로 학습하는 모임이 아닐까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얼마 뒤 교직원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담당 교사가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할지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나서 모든 교사가 빠짐없이 하나의 '전문적 학습 공동체'에 가입해서 활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적잖이 어리둥절했다. 혼자 활동해서는 안 되고 여럿이 활동을 해야 하니 '공동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무엇이 '전문적'이고 어디에 '학습'이 있는지 도저히 알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담당 교사의 설명에 따르면 두 명 이상이 매주 탁구를 치는 모임을 만들어도 '전문적 학습 공동체'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매주 활동 지원비를 학교 예산에서 지원해 주었다.
체육 교사가 아닌 사람이 탁구 치는 활동을 하는 것은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도교육청 공문에서 특별히 제한 규정을 두지 않았으므로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해서 그해 그 학교에 만들어진 '전문적 학습 공동체' 여섯 개는 모두 허울뿐이었다. 그 어떤 전문적 학습 공동체에서도 '전문적'인 요소와 '학습적'인 요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에 대해 공부하는 '진로 진학 전문적 학습 공동체'에 가입했다. 이름은 그럴듯했다. 게다가 구성원들은 죄다 3학년 담임교사들이었다.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 교사들이 모임을 만들어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에 대해 공부하겠다니! 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학습적'인 공동체인가!
그 학교의 전문적 학습 공동체는 한 달에 한 번, 2시간에 걸쳐 운영되었다. 우선 담당 교사가 나누어준 틀에 맞추어 전문적 학습 공동체 운영 계획서를 제출해야 했다. 내가 속한 '진로 진학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계획서는 그럴싸했다. 누가 보아도 나무랄 데라고는 전혀 없는, 잘 짜인 계획서였다. 계획서상으로는 학교 내 특정 장소에 모여 정해진 주제를 놓고 토론이나 토의를 하게 되어 있었다. 각각의 주제 발표자도 정해 놓았고 학년 말에는 그동안의 활동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제출하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아니겠는가? 나의 '진로 진학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경우, 첫 모임만 학교 내에서 했고 나머지 모임은 몽땅 학교 밖에서 했다. 계획과 달리 학교 밖에서 모임을 했다고 하더라도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을 터이다. 모임의 당초 취지대로 학생들의 진로와 진학에 대해 공부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를 않았다.
주제 발표자가 인터넷에서 대충 긁어 온 자료를 나누어 주면 다른 사람들은 그 자료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는 게 전부였다. 모임 장소는 대개의 경우 풍광 좋은 카페였다. 나머지 시간은 경치와 커피를 즐기며 보냈다. 전문적 학습 공동체 시간을 어떻게 보내든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학년 말 보고서는 각 주제 발표자들이 긁어 온 자료를 대강 짜깁기해서 제출했다. 보고서 내용의 부실 여부를 시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무탈하게 전문적 학습 공동체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2021년에, 전에 근무했던 학교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 학교에도 전에는 없던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운영되고 있었다. 2019년도에 근무했던 학교와는 달리, 같은 교과 교사들끼리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운영한다고 했다.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제대로 굴러갈 것 같은 좋은 예감이 들었다. 같은 교과 교사들끼리 모인 만큼 '수업'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전 학교와 같이 한 달에 한 번, 2시간에 걸쳐 학교 내에서 모임을 진행한다고 했다.
기대를 잔뜩 안고 참석한 첫 모임. 교과 부장 교사는 전문적 학습 공동체와는 상관없는, 각종 교과 행사 관련 협의 사항을 한 아름 꺼냈다. 거기에 대해 논의를 다 마치니 남은 시간은 30분 남짓. 이윽고 교과 부장 교사가 전문적 학습 공동체를 어떻게 운영했으면 좋을지 의견을 구했다. 전문적 학습 공동체의 기본 취지를 살려 '수업'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했다. 각자가 하고 있는 수업 이야기를 진솔하게 하다 보면 각자의 수업의 질이 좋아지지 않겠냐는 말도 빠지지 않고 덧붙였다.
특별히 반대하는 사람이 없어 그러기로 했다. 누가 말문을 여느냐가 문제였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어 제안자인 내가 총대를 멨다. 다음번 전문적 학습 공동체 시간에 내가 수업 사례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질의응답 시간을 갖기로 했다.
다음번 전문적 학습 공동체 모임 시간. 교과 부장 교사가 모임에 조금 늦게 헐레벌떡 왔다. 또 긴급 협의 사항을 꺼내 놓았다. 협의를 다 마치니 남은 시간은 30여 분 남짓. 준비한 자료를 나누어 주고 내 수업 이야기를 초스피드로, 처삼촌 산소 벌초하듯 했다. 질의응답할 시간은 당연히 없었다.
그다음의 전문적 학습 공동체 모임마다 교과 부장 교사가 무언가 긴급 협의 사항을 가지고 왔다. 그 결과 전문적 학습 공동체 시간에 나 말고는 자신의 수업 이야기를 할 기회를 얻은 교사는 없었다. 그래도 아무런 문제도 생기지 않았다. 이 학교 역시 전문적 학습 공동체 시간에 무엇을 하든 간섭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에서 행해졌던 많은 일들이 이러했다. 명실상부하지 않았다. 이름은 '전문적 학습 공동체'인데 실제를 살펴보면 그 어디에서도 '전문적 학습'을 찾아볼 수 없지 않은가. '공동 연수'라는 게 있다.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시작할 때, 당일 또는 1박 2일로 직원들이 연수를 한다. '연수'란 무엇인가? '학문 따위를 연구하고 닦'는 것이 '연수'이다. 그런데 '공동 연수'에서 무엇인가에 대해 '연구하고 닦'아 본 경험이 전혀 없다. 직원들의 친목 도모 행사에 불과했다. '연구학교'로 지정받은 학교에서 여러 번 근무했었는데 그 연구학교에서 무엇에 대해 '연구'하는지도 모른 채 근무한 적도 많았다. '진로 연계 현장 체험 학습'을 무수히 다녔는데 실제로 진로와 연계한 체험 학습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하긴 내가 학교 다닐 때 있었던 '소풍'은 온데간데없고 학생들은 봄과 가을에 '체험 학습'을 갔다. 나의 '소풍'과 학생들의 '체험 학습'의 풍경은 단 한 치도 다르지 않았다.
현직에 있을 당시, 학교만큼은 이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었다. 그랬다가는 학교 방침을 거스르는, 불평불만을 일삼는, 자기만 잘난 줄 아는 교사로 낙인찍힐까 두려워서이다. 퇴직한 마당에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좀 우습기는 하다. 하지만 학교 현장의 여러 가지 교육 활동들이 조금이라도 명실상부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그래야 우리나라 교육이 단 몇 센티미터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전문적 학습 공동체'에서는 마땅히 무언가에 대해 전문적으로 학습해야 하지 않겠는가. 풍광 좋은 카페에서 커피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수업과 관련 없는 교과 행사에 대해 주로 논의하는 건, 누가 보아도 '전문적 학습'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