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 제대로 해 보면 어떨까요?
우리 학교 중간고사가 끝났다.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4월 말에서 5월 초에 중간고사를 치른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인 1970년 후반의 학생들은 지금쯤 해방감을 만끽했을 것이다. 요즈음 학생들은 어떠냐고? 대부분 학생들은 해방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 터이다. 왜냐고? 수행평가 때문이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각 과목 수행평가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학교 어느 교실에 들어가 보니, 수행평가 달력이라는 것이 붙여져 있었다. 수행평가 일정으로 달력의 칸이 빼곡했다.
우리 학교의 경우 한 과목당 적으면 2번, 많으면 6번의 수행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학생들이 한 학기에 보통 8과목을 수강하니, 평균적으로 한 학기에 32번 정도의 수행평가를 보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생들이 수행평가 지옥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우리나라에 수행평가가 전면적으로 도입된 것이 1999년이라고 한다. 어언 20년이 훌쩍 넘었다. 수행평가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을까?
수행평가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아야겠다. 여기저기 자료를 찾아보니, 자료마다 수행평가를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교육청에서 해마다 내려보내는 학업성적관리 시행 지침의 정의를 찾아보았다. 다음과 같았다.
수행평가는 교과 담당 교사가 교과 수업 시간에 학습자들의 학습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다.
위의 정의처럼, 수행평가는 ‘수업 시간’에 ‘학습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관찰하고 그 결과를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다. 그러므로 수행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학습과제를 제시한 다음 학습과제를 수행할 시간을 주어야만 하는 것이다. 담당 교사가 학습자의 학습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관찰할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행평가를 실시하는 교사 또는 과목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어떻게 수행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평가 담당 교사가 보내준 수행평가 영역별 비율 자료를 살펴보았다.
수학 과목의 경우를 보자. 서술형 문제해결 역량 20%, 탐구 및 의사소통 역량 10%, 수학 독후감 10%, 자기관리 역량 10%로 합계 50%를 반영하고 있다. 영역 명칭만 보면 그럴듯하다. 4가지 영역으로 평가 영역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영역이 다양할수록 담당 교사는 힘들어진다. 수행평가를 제대로 하겠다는 의욕이 보인다. 그런데 영역 명칭만으로는 수행평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 도리가 없다. 하여, 옆자리에 앉은 수학 교사에게 물어보았다.
서술형 문제해결 역량 영역은 서술형 문제를 출제해서 풀게 하는 것이란다. 한 학기에 여섯 번을 본단다. 탐구 및 의사소통 역량 영역은 특정 사이트에 주제를 제시하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준 다음, 특정 시간에 그 주제에 대해 서술하게 하는 것이란다. 한 학기에 한 번 실시한단다. 수학 독후감 영역은 수학과 관련한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게 하는 것이란다. 한 한기에 한 권을 읽게 한단다. 자기관리 역량 영역은 한마디로 말해 책과 공책 검사란다. 책과 공책의 필기 상태를 검사한단다. 딱히 정해진 횟수는 없는데 대개 한 학기에 두세 차례 검사한단다.
문제는 없는가? 도교육청 학업성적관리 시행 지침에 나와 있는 수행평가의 정의에 부합하는가? 수행평가를 설계할 때, 학습자들이 학습과제를 수행할 시간을 어떻게 확보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교사가 학습자들의 학습과제 수행 과정과 결과를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우리 학교 수학 과목 수행평가의 경우,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은 듯하다. 서술형 문제해결 역량 영역의 경우, 풀이 과정을 평가하면 되지 않느냐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학습과제의 결과물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지필평가에서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면 될 일이다. 굳이 수행평가 영역으로 끌고 올 필요가 없다. 탐구 및 의사소통 역량 영역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사이트에 주제를 제시하고, 수업 시간 틈틈이 그 주제에 대한 학습자들의 생각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면 학습과제 수행 과정 평가라 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는 점이다. 역시 결과물 평가에 가깝다고 할 수밖에 없다. 수학 독후감 영역과 자기관리 역량 영역도 역시 마찬가지로,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보인다.
내친김에, 영어 과목도 한번 살펴보자. 영어 과목은 어휘 10%, 쓰기(서술형) 20%, 말하기 10%, 듣기 10%로 수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총 50%를 반영하고 있다. 어떻게 평가가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니, 이랬다. 어휘 영역은 단어 목록을 제시한 다음, 특정 시간에 시험을 보는 형태였다. 쓰기(서술형) 영역은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여 시험을 보았다. 수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지필평가에서 서술형 문제를 출제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말하기 영역의 경우 학생이 주제를 선정하여 특정 시간에 이야기하는 형태였다. 대부분 학생들이 파파고 등의 영어 번역기에 의존하여 평가를 수행하고 있는 듯했다. 듣기 영역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전국 시도 교육청이 합동으로 만든 듣기 평가 문제를 한 학년 학생 모두가 동시에 푸는 형태로 진행된다. ‘수행평가는 일제식 정기 지필평가 방법으로 실시할 수 없다’는 도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 시행 지침을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지 않은가? 또 이런 식의 듣기 평가 방식으로는 학생들의 학습과제 수행 과정을 평가할 수 없을 터이다. 영어 과목의 다른 평가 영역도 수행 과정을 평가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수행평가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확인해 보면, ‘교과 수업 시간에 학습자들의 학습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직접 관찰하고, 그 관찰 결과를 전문적으로 판단하는 평가 방법’이 수행평가이다. ‘학습과제 수행 과정 및 결과’를 어떻게 하면 ‘직접 관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수행평가를 설계하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수행평가가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가능한한 수업 시간에 말이다.
고민의 흔적이 보이는 수행평가도 있다. 우리 학교 국어 과목을 보자. 논리적 글쓰기 과정 20%, 글쓰기 결과 20%, 총 40%를 반영하고 있다. 평가 영역의 명칭에 이미 ‘과정’과 ‘결과’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어떻게 평가가 진행되는지 알아보았다. 주당 4시간의 수업 중, 1시간을 수행평가를 위한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5개의 글쓰기 주제를 제시하고 주 1회, 총 8회의 시간을 확보하여 학생들이 수행평가 준비를 수업 시간에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그런 다음 5개의 주제 중, 하나를 선정하여 논리적인 글을 쓰게 하고 그 결과를 평가하였다. 이렇게 하면 수행평가를 완전히 끝내는 데, 약 2달이 걸린다. 8회의 수행평가 준비 시간에, 학생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지, 어떤 자료를 찾는지, 어떤 질문을 하는지 등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학습과제 수행 과정’을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마지막에 작성을 학생들의 글을 통해 ‘학습과제 수행 결과’를 ‘직접 관찰’할 수 있게 됨은 물론이다.
수행평가는 매우 중요한 평가 방식이다. 학생들의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데, 꽤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이는 지필평가로는 키우기 힘든 요소이다. 또 대학 입시에서도 엄청난 비중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수행평가에 임하는 과정과 결과를 관찰하여 학생부종합전형의 핵심 요소인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래서 수행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수행평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수행평가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 생각보다 쉽게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수업 시간에, 학습과제 수행 과정과 결과를 직접 관찰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