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지음, <당신들의 대한민국> : 우리는 잘 모르는 우리의 민낯
글쓴이는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다음, 지금은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5세기 말부터 562년까지의 가야의 여러 초기 국가의 역사>라는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가락국기에 있어서의 왕권신수설>, <신라 경문왕의 유불선 융화정책>, <6~7세기의 신라 지배층의 선민의식> 등의 논문을 썼다.
다소 장황하게 글쓴이의 이력을 소개한 까닭이 있다. 이 정도의 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야 할 듯한데,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단다.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란다. 글쓴이는 왜 우리나라에서 살지 않고 노르웨이에서 살고 있을까? 책에 나타난 우리 사회의 모습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글쓴이는, 대한민국이 극우적 집단의식으로 인해 ‘개인’의 희생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극우와 극좌의 집단의식 저변에는 흡사한 점이 많이 깔려 있다. 집단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생명과 행복쯤은 희생되어도 좋다는 야만적 집단주의, 남성적인 폭력으로 집단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저질스러운 폭력 숭배, 인간의 존엄성을 위시한 보편적 인권들을 비웃고 부정하는 현대적 보편주의와 관대성의 부재, 무엇보다 가시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특유의 집단 광기는 바로 극좌와 극우의 공통점이다. -51쪽에서 발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다. 글쓴이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주사파’나 5·16 쿠데타를 일으킨 다음 18년 동안 우리나라를 철권 통치한 박정희를 열심히 기리고 있는 극우집단은 근본적 세계의식에서 별다른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는 젊은 시절 노동 운동이나 학생 운동에 몸담았다가 보수 정치인으로 변신한 경우가 제법 있다. 그런 사람일수록 극단적 보수주의자의 입장에 서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극우적이거나 극좌적인 사고가 가지는 가장 큰 문제점은 ‘개인’의 희생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개인의 의견을 먼저 묻지 않는다. 그 일을 담당하는 핵심 관계자들 끼리끼리 이야기한 다음,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밀어붙인다. 이 과정에서 ‘개인’이 반론의 제기하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게 훌륭하고 멋진 계획에 반론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행위는 거의 역린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에 견줄 수 있을 정도이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현장에서도 ‘개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는 참으로 많다. 거의 언제나 ‘전체’가 ‘개인’에 우선한다. ‘개인’의 의견과 생각을 존중하고 생각의 차이를 인정한 다음, 그 차이를 어떻게 조정할지를 고민하는 조직이 건강한 조직이라 할 수 있을 터이다.
글쓴이의 지적 중 아프게 다가오는 또 하나는, 우리나라를 ‘맹종에 길든 냉소적인 사회’라고 진단했다는 점이다.
물론 학생들은 대부분 전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평화 지향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나부터 입대를 거부해야 정권이 전쟁 도발을 못한다는 서구 반전운동식의 확고한 입대 거부 의지를 가진 이가 별로 없었다.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산다는 전체주의적 사회의 그릇된 상식은 대다수 응답자들에게 충분히 내면화되어 있었다. …… 원칙적으로 폭력이 비도덕적이고 비폭력이 우월하다는 주장에 동의하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 철학적인 문제를 놓고 ‘나’는 ‘국가’와 맞서야 한다는 생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국가’라는 존재가 위협적이고 전지전능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 나는 비로소 한국적인 상황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원칙에 따라 저항한다는 것이 어느 정도 희생을 요구할 것인지 온몸으로 느꼈다. 모든 저항을 무조건 물리력으로 분쇄하려는 파시스트적 국가와 ‘맹종’에 길든 냉소적인 사회에 절대적이고 도덕적인 원칙을 위해서 도전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보통 인간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그때 이해했다. -105~106쪽에서 발췌
주지하다시피, ‘맹종’이란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남이 시키는 대로 덮어놓고 따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우리 사회가 ‘맹종’에 길든 사회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30년 넘게 교직 생활을 해 오면서, 내 주위의 동료 교사들이 일반적으로 윗사람의 말을 잘 듣는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또 이런 성향은 교직에 종사하는 교사들의 보편적 특성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체 분위기가 그러하니, 교직 사회도 윗사람에게 자신의 의견을 서슴지 않고 이야기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공식 석상에서 윗사람의 의견에 반하는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가끔 그런 교사가 있기는 했다. 공식 석상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조리 있게 표명하는 교사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런 교사들은 다른 교사들이 좀 어려워했다. 범접하기 어려운 교사로 치부되면서, 그들은 학교에서 겉돌기 시작했고 점차 당당하게 생각을 이야기하는 교사들의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학교는 더욱더 조용해졌다. 토론과 의견 표명이 거의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맹종’의 그림자가 학교를 완전히 감싸 버렸다.
글쓴이가 지적한 것은 2002년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2023년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과 견주어 어떤가? 많이 달라졌는가? 아니면 대동소이한가? 자신이 속해 있는 조직이나 단체의 분위기나 자신의 경험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을 터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진정한 선진 사회로 나아가려면 글쓴이가 20여 년 전에 지적한 우리의 모습에서 반드시, 기필코 탈피해야만 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