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지음|홍장학 엮음, <윤동주 전집> : 부끄러워하기와 그리워하기
윤동주 시인을 모르는 한국 사람은 아마 없을 터이다. 그의 시는, 교과서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하고 그의 삶은,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서울 부암동 어딘가에 그의 문학관이 있으니 말이다. 박노자의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라는 책을 보면, 한국인 귀화 시험에 시 <산유화>의 지은이를 묻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정답은 물론 김소월이다. 이 문제를, 시 <서시>의 지은이를 묻는 문제로 바꾸어도 괜찮으리라.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윤동주에 대해서 참 많이 알고 있기는 한데, 그의 시를 읽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라는. 윤동주가 우리에게 시로 다가왔듯이, 우리도 그에게 시로 다가가면 좋지 않을까? 윤동주의 시 몇 편을 차분차분 읽어 보자. 모든 것을 잊고 오롯이 시만을 읽는 시간을 가져 보자. 세상사로 인한 상처가 스르륵, 아물기를 바라면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서시(序詩)> 전문
윤동주의 대표 시라 할 수 있겠다. 원래는 제목이 없었다고 한다.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처음에 실리면서, 이런 제목을 얻었다고 한다. 시집 제목에 들어 있는 ‘하늘’, ‘바람’, ‘별’이라는 단어가 시 속에 다 나온다. <서시>를 이끌어가는 핵심 단어들이다. 화자는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면서 한 줄기 바람에도 괴로워하고 있다. 그렇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괴로움도 없을 듯하다. 정신없이 바삐 살다 보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지 않겠는가. 삶의 속도를 잠깐 늦추고 자신의 삶을 성찰해 보자고 제안하는 듯하다. 그때 자신의 삶에서 부끄러운 면을 발견했다면 괴로워하고 반성하면서 삶의 방향타를 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암송을 통해 시의 맛을 음미하면 더욱 좋을 성싶다. 시의 길이가 짧으니 암송에 크게 부담이 없을 터이다.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 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들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 전문
이 시에서도 화자는 부끄럽다고 토로한다. 인생은 살기 어려운데, 시가 쉽게 써져 부끄럽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부끄러워하며 자신의 삶을 성찰한 화자는 어둠을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무기력하게 살아온 또 다른 자신과 악수를 한다. 쉽게 살아온 현실적 자아를 용서하고 그 현실적 자아를 아침을 기다리는 이상적 자아에게로 통합하려는 시도이리라. 이처럼 삶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려면 성찰을 통해 자신의 삶에서 부끄러운 지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삶을 돌아볼 기회를 애써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니 어제의 생활과 오늘의 삶이 그냥 그러그러하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려면 부끄러워하기는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시를 읽으면 한 번쯤 자신의 생활을, 삶을 돌아보면 한결 의미있는 삶을 꾸릴 수 있지 않겠는가.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 속의 별들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 소녀들의 이름과 벌써 애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 이런 시인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슬히 멀 듯이,
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
내 이름자를 써보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별 헤는 밤> 전문
가을밤에 별을 헤면서, 화자는 그리워하는 대상들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더욱 그리운 대상들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결핍된 대상들을 그리워하는 존재라 할 수 있다. 특히 자신과 함께하다가 없어진 대상들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인간들이, 그 대상들이 자신과 함께할 때는 그 대상들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일단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자. 그러고 생각해 보자. 지금 무엇이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지를. 사람일 수도, 동물일 수도 혹은 사물일 수도 있겠다. 자신과 함께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왜 소중한지를 떠올려 보자. 나아가 그것들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나갔을 때, 밀려올 그리움의 크기를 가늠해 보자. 그러면 이 시의 화자처럼 차가운 가을밤에, 자신이 호명해야 할 그리운 대상들이 조금은 줄어들 수 있으리라.
누군가는 윤동주의 시를 ‘순결한 영혼의 시대적 고뇌’라 평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부끄러움의 미학’이라고 평했다. 나는 윤동주의 시를 ‘부끄러워하고 그리워하기’라고 말하고 싶다. <윤동주 전집>을 한번 읽어 보시라. 그래서 자기 자신만의 윤동주를 만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