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고교 교육 정상화에 도움 되는 대학 입시 제도가 있다면
고등학교에 재직할 때, 동료 교사들이 대학 입시 탓에 고교 교육이 엉망진창이 된다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률을 높이는 데 사활을 거는 경우가 다반사라 영 틀린 말은 아닐 터이다.
얼마 전, 인터넷 기사에서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당장 대학 입시를 폐지하자'라는 제하의 기사를 읽었다. 글쓴이는 대학 입시가, 고3 교실 풍경을 황폐화하고 지금까지의 모든 대학 입시 제도는 실패했으며, 학생들의 차별적 사고를 강화하고 공부에 대한 맹목적인 혐오를 부추긴다는 이유를 들어 대학 입시를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현직 일반계 고등학교 교사인 듯하다. 30년 넘게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한 나로서는 글쓴이의 답답한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글쓴이가 제시한, 대학 입시 제도 폐지의 이유들 중 다른 것들은 차치하더라도 '황폐화한 고3 교실 풍경', 이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대학 입시 제도를 손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글쓴이의 주장대로 대학 입시 제도를 당장 폐지하면 어떤 일이 생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글쓴이의 주장대로 대학 입시 제도를 폐지했을 때, 대학은 신입생을 어떻게 뽑아야 할까? 대학이 신입생을 뽑지 않을 리는 없다. 신입생을 뽑지 않으면 대학이 생존할 수 없으므로 대학은 어떻게든 신입생을 뽑으려 할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현행 대학 입시 제도에는 수시 전형과 정시 전형이 있고 수시 전형은 학생부 교과 전형과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나뉜다. 이런 대학 입시 제도가 사라진다면, 대학은 각 대학의 독자적인 기준에 따라 신입생을 선발하려 할 것이다.
결국 새로운 형태의 대학 입시 제도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대학별로 천차만별의 형태로 말이다. 이런 상황이 오면 사교육 시장은 그야말로 순풍에 돛을 단 형국이 될 것이다. 대학별 선발 기준을 분석하여 맞춤형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교육의 전성시대가 펼쳐질 것이다. 지금까지의 사례로 보건대, 이는 너무도 명약관화한 일이 아니겠는가.
또 글쓴이는 '입학사정관제와 학생부 종합 전형'이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진단하면서 '아무리 선진적인 제도를 도입해도 회수를 건너온 귤은 탱자가 됐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다.'라고 했다. 또 '나쁜 제도는 혁파해야 할 대상'이고 '나쁜 제도가 사라진 자리에 기필코 좋은 제도가 싹을 틔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리대로 라면, 현행 대합 입시 제도가 사라지면 좋은 제도가 싹을 틔울 텐데 그 좋은 제도는 예외 없이 회수를 건너온 귤 신세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으므로. 그러므로 현행 대학 입시 제도를 없애고 새로운 좋은 제도가 싹트기를 바라기보다, 현행 대학 입시 제도를 보완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대학 입시 제도가 고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현행 대학 입시 제도에는 수시 전형인 학생부 교과 전형과 학생부 종합 전형, 수능을 위주로 하는 정시 전형이 있다. 이 중, 고3 교실의 황폐화를 막고 사교육의 영향력을 최소화하여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전형은 학생부 종합 전형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당장 대학입시를 폐지하자'라는 제하의 기사를 쓴 글쓴이는 학생부 종합 전형을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 진단했고, 학생부 종합 전형의 불공정성을 거론하며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학생부 종합 전형은, 어느 정도의 문제점이 있기는 하겠지만, 총체적으로 실패했다고는 할 수 없다. 회수를 건너온 귤에 빗대면, 완전히 탱자가 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교들에서, 서울의 중위권 이상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의 90% 정도는 학생부 종합 전형을 통해서였다. 이를 서울의 상위권 대학만을 대상으로 통계를 내보면 그 비율은 거의 100%에 수렴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이다.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고등학생들이 수능 최저 기준이 강력하게 적용되는 학생부 교과 전형이나 수능 성적 위주의 정시 전형으로 서울의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학생부 종합 전형이 존재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학생부 종합 전형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내가 근무했던 지역 고등학교들이 수업 형태가 바뀌기 시작했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의미는,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학교생활기록부의 '과목별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과세특)' 기록이 가장 중요해졌다는 말이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과세특'은 '학생 참여형 수업과 수행 평가 등에서 관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록'하게 되어 있다. '과세특'을 충실히, 제대로 기록하려면 수업 형태를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생부 종합 전형에 대비하려면 '과세특'을 충실하게 적어야 하고 그러려면 학생 참여형 수업으로 수업 형태를 바꾸어야만 하는 것이다. 전형이 가지고 오는 나비 효과요, 선순환 구조라 아니할 수 없다.
대학 입시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리라 예상되던 학생부 종합 전형은 2019년에 발생한 소위 '조국 사태'로 인해 세간의 입길에 올랐다. 대통령이 학생부 종합 전형의 공정성 문제를 거론하자, 서울의 주요 대학들이 자신들 학교의 학생부 종합 전형 비중을 40% 이하로 제한해 버렸다. 공정성 시비가 일고, 주요 대학들이 학생부 종합 전형 비중을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내가 근무했던 지역 고등학교들에서 일어나던 수업 형태 바꾸기 바람은 일시에 사그라들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대학 입시 제도를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일원화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 생각 또한 '이유는 차고 넘친다, 당장 대학입시를 폐지하자'라는 주장만큼이나 문제적일 수 있다.
그러나 학생부 종합 전형만큼 고등학교 수업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추동력을 가진 대학 입시 제도는 지금까지 보지 못했다. 또 앞서 말했듯이 학생부 종합 전형은 지방 소도시 고등학생들이 서울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나아가 고3 2학기 성적까지 학생부 종합 전형에 반영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면 고3 2학기 교실의 황폐화를 매우 효과적으로 방지할 수 있을 터이다.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엄청난 혼란이 휘몰아칠 수도 있다. 그러나 현행 대학 입시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는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는 난망할 터이다. 그렇다고 현행 대학 입시 제도를 폐지하고 완전히 새로운 입시 제도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러니 현행 대학 입시 제도를 잘 보완하여, 그 제도가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를 추동하게 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대입 전형을 일원화한 다음 학생부 종합 전형을 잘 다듬어 운용하면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만, 학생부 교과 전형이나 정시 전형을 가다듬어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가 가능하다면 그 또한 괜찮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완벽한 제도라도 운용을 잘못하면 엉망진창이 되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반대로 약간의 흠결이 있는 제도라도 잘만 운용하면 소기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현행 대학 입시 제도를 어떻게 보완하고 운용해야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추동할 수 있을지를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