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책 어때요

유달승 지음,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by 꿈강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이슬람 시아파의 맹주, 북한과 친한 나라, 석유가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음, 여성 인권 억압 ……. 평균적인 한국인들도 대략 이러하리라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란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잘 몰라도 살아가는 데 크게 지장은 없으니까. 그런데 언젠가 TV에서 이란 여행에 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부쩍, 호기심이 일었다. 호기심을 해결할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하던 차에, 우연히 보게 된 책이 바로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이다.


글쓴이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중동 정치를 공부한 후, 이란 테헤란 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로 재중 중이다. 이란 전문가다. 이런 사람이 이란의 속사정을 알기 쉽게 쓴 책이다. 이란에 관한 호기심을 해결하기에 안성맞춤인 책이다. 책 속으로 어서어서 가 보자.


26년이 흐른 뒤에 다시 찾은 이란에서 마주친 이란인의 시간 개념은 예전 그대로였다. 언뜻 보면 이란인은 시간 개념과 약속 개념이 희박하여 아직 문명화되지 않았다는 오해를 부를 수 있다. 그들의 약속 시간은 몇 시 몇 분이 아니라 아침, 점심, 저녁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덜 부지런하고, 덜 문명화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18쪽에서 발췌


글쓴이는 이란의 시간 개념이 이렇듯 희박하게 된 것은 유목 문화의 영향이 크다고 진단한다. 유목민은 계절과 유목지의 변화에 따라 계속 이동해야 하기에 예측에 따른 행동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이슬람의 본질을 살펴보면 시간 개념의 역할이 미미하다고 한다. 서구에서는 시간을 제한된 자원이자 소중한 상품으로 여기지만, 이슬람을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시간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이란인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래서 이란에서는 사람 사이의 인연이 매우 중요하고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영원한 관계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우리도 한때 ‘코리언 타임(Korean Time)’으로 이름을 날렸고, 인연을 맺는 것 또한 중히 여기는 편이니 어쩌면 이란 사람들과 잘 통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에서 친구란 오래 사귄 또래를 말하지만 이란에서는 나이를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 …… 동네 아이들이 내게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찾아왔고, …… 점차 시간이 흘러서 가만히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게 반말을 하고 있었다. …… “내가 너희들보다 나이가 많으니 존댓말을 써라.” 그러자 아이들이 “우리는 친구가 아니냐”면서 친구 사이에는 편하게 얘기해도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35쪽에서 발췌


이런 면은 우리와 참 많이 다르다. 부럽기도 하다. 우리는 서열 정리를 위해 주민등록증 확인하기 바쁘지 않은가. 그러고 나이 어린 사람이 반말을 하면 싸가지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다반사 아니던가. 마음이 통해 친구가 되면,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러는지 알 도리가 없다. 글쓴이에 따르면 이란에서는 청년과 노인이, 교수와 학생이, 사장과 운전기사가 친구가 된단다. 아, 정녕 그럴 수 있단 말인가. 놀랍고도 놀랍다. 미국이나 유럽 영화 속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지만, 이란에서도 그렇다니, 놀랍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유교 문화권인 동양에서만 그런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우리나라가 이란의 이런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해지리라 믿는다. 또 사회의 그런 유연성이 사회를 조금이나마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이라 믿는다.


이란과 페르시아는 중동의 같은 지역을 일컫는 말이다. 중동의 역사와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면 이란과 페르시아는 완전히 다른 지방 또는 나라라고 생각하기 쉽다. 페르시아라고 하면 사람들은 페르시아 제국과 페르시아 카펫 그리고 페르시아 고양이 같이 화려함, 웅장함, 신비로움 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반면 이란이란 단어를 들으면 테러, 이슬람 극단주의, 핵무장, 인권 침해와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금세 떠올리곤 한다. …… 페르시아라고 하면 크고 광활한 대국을 떠올리게 되는 반면, 이란은 작고 척박한 사막을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이란을 페르시아라고 부르는 것은 브리튼(Britain)을 잉글랜드(England)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란과 페르시아의 차이는 브리튼과 잉글랜드의 차이보다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55~56쪽에서 발췌


‘페르시아’가 이란의 고대 왕국을 지칭하는 단어인 줄만 알고 있었다. 마치 ‘고조선’이 대한민국의 고대 왕국을 가리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 보니, 차이가 있었다. 더구나 페르시아가 이란보다 더 광범위한 대상을 지칭하는 개념인 줄 알았는데, 거의 정반대라 할 만했다. 이란이 페르시아보다 가리키는 대상이 더 넓다고 한다. 광활한 페르시아 제국이 쪼그라든, 일부 지역만을 이란이라고 지칭하는 줄만 알았다. 그래서 사람은 모름지기 책을 읽어야 하나 보다. 더더욱 놀라운 점은, 이란에 살고 있는 사람 중 자신이 페르시아인이지 이란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주로 한(韓) 민족이 대다수를 이루어 살아가는, 단일 민족을 부르짖는,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이란은 인도-유럽계, 코카서스계, 투르크계, 셈계 등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다민족 국가인 것이다.


<이란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를 읽으며 나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던 세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 밖에도 이란의 교육열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고, 상당히 복잡한 정치 지형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꽤나 흥미로웠다.


사람마다 흥미를 느끼는 지점이 다를 터이다. 이 책을 읽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이란의 모습을 만나보기를 권한다. 앎의 지평이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책을 읽는 데서 오는, 참으로 아름다운 맛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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