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 사는 / 살아갈 이야기

나의 아주 보통의 하루

by 꿈강

은퇴 후 아내와 함께 손녀딸을 돌보며 지낸다. 손녀딸을 돌본다는 말을 해도 되는지 종종 의문이 들기는 한다. 아내가 거의 다 하고 나는 보조의 보조의 보조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손녀딸 돌보기 지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 미만이지 싶다. 그러나 뭐 어쨌든 손녀딸을 아예 돌보지 않는 것은 아니니 손녀딸을 돌본다는 말이 백 퍼센트 흰소리는 아니다.


나의 일과는 대략 이렇다. 새벽 5시 20분, 휴대폰 알람과 함께 일어난다.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느냐고? 딸네 부부가 직장이 멀어 6시 30분쯤 출근길에 나서야 하기에 우리 부부가 그전에 딸네 집에 도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딸네 부부가 출근한 다음 손녀딸을 먹이고 입혀 9시에서 9시 30분 사이에 어린이집에 데려다준다. 그러고 손녀딸 어린이집 하원을 위해 오후 4시까지 어린이집으로 간다. 손녀딸을 데리고 딸네 집으로 가, 딸내미가 퇴근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5시 30분까지 손녀딸과 놀아주다가 집으로 향한다. 손녀딸이 어린이집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도서관으로 간다. 도서관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어 회화 공부도 한다.


내가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이야기를 들은 주변 사람들은 흔히 '심심하겠다' 또는 '너의 삶은 어디에 있어?'라고 반응했다.


'심심하겠다'는 반응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손주를 돌보아 보지 않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나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 중에 손주를 돌보고 있는 사람이 없어서 나오는 이야기이다. 손녀딸을 돌보다 보면 심심하다고 느낄 겨를이 없다. 손녀딸을 돌보는 시간은 아침에 두 시간, 오후에 한 시간 반 도합 세 시간 반 정도지만 그 시간 동안은 내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소모가 꽤 많이 된다. 그런 때가 많지는 않지만 손녀딸이 극도로 짜증을 낼 때는 아내와 나 둘 다 정신적으로 탈진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손녀딸의 기분이 날마다 조금씩 다르니, 거기에 맞게 아내와 내가 적절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심심할 틈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나의 하루에 '나의 삶'은 없는가?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 듯하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시간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듯하다. 그러나 교직에서 은퇴한 내 주변 사람들의 하루와 비교해 볼 때, 만약 도서관에서의 시간에 '나의 삶'이 없다면 내 주변 사람들의 시간에도 그들의 삶이 없다고 해야 마땅하다. 그들은 대개 텃밭을 가꾸고, 골프를 치고, 등산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내가 보내는 시간과 내 주변 사람들이 보내는 시간은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은퇴 후 자기 나름대로 시간 보내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해야 할 터이다. 그러니 그 안에 자신의 삶이 있다고 해야 옳다. 그 삶에 만족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여하튼 자신이 선택한 방식이니 그것이 그들의 삶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다. 도서관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에 나는 매우 만족하고 있다. 여러 가지 장점 중 두 가지만 이야기해 보겠다.


가장 큰 장점은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은퇴하고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는지라 은퇴 생활에서 비용은 꽤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 면에서 도서관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슬기로운 은퇴 생활이라 할 만하다. 두 번째는 사시사철 온도와 습도가 쾌적하게 유지된다는 점이다. 더울 때 시원하고 추울 때 따뜻하니 은퇴 생활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곳을 찾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손녀딸 돌보기와 도서관에서 보내는 나의 시간, 이 둘이 은퇴 이후 나의 삶이다. 둘 다 매우 소중하다. 손녀딸을 돌보며 손녀딸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보면 정말로 즐겁고 행복하다. 도서관은, 아침에 눈 떴는데 갈 곳이 없어서 은퇴자들이 흔히 느끼는 공허함을 없애주는 곳이다. 나에게 도서관은, 갈 곳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 아니라 시간만 나면 언제든지 가고 싶은 곳이다. 그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어 회화 공부도 한다. 도서관에서도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 손녀딸을 돌보고 도서관에 가는, 나의 아주 보통의 하루가 평온하게 지속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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