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62> 2025. 5. 27.(화)

by 꿈강

7시 10분쯤 손녀딸이 거실로 걸어 나왔다. 푹 잔 얼굴이다. 오늘 어린이집 등원 준비는 순조로울 듯하다. 기대대로, 순풍에 돛 단 것 같다. 밥 양이 제법 많았는데 거의 다 먹었고 과일은 단 한 알도 남기지 않았다. 할머니가 골라 온 옷도 단 한 번에 오케이를 받았다. 딱 하나,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을 끄고 어린이집에 가자고 하자 조금만 더 보겠다고 한 게 옥에 티라고나 할까. 그래도 얼마 후 내가, 이제 텔레비전 끄자며 리모컨에 있는 빨간 단추를 누르라고 하자 제 손으로 순순히 단추를 눌러 텔레비전을 껐다.


요즘 우리 손녀딸은 거실에서 현관까지 갈 때 아주 신박한 방법을 택하는데, 오늘도 역시 그러했다. 어떻게 가냐고? 질질 끌려간다. 재미있나 보다. 손녀딸은 발라당 누워서 두 손을 쭉 펼쳤고 내가 그 손을 잡고 현관까지 끌고 갔다. 손녀딸은 매우 흡족해했다.


한바탕 의식을 마치고 차로 갔다. 딸네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공사 중인지라 차를 지상에 대 놓았다. 일 층에 내려 아파트 밖으로 나가니 하늘은 맑고 바람은 상쾌했다. 손녀딸은 매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차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이 사뭇 경쾌했다.


주차해 놓은 차 문을 열고 손녀딸에게 어서 차에 타라고 하자, 손녀딸은 차 뒷좌석 자기 자리에 앉지 않고 좌석 아래 차 바닥에 앉는다. 어서 자리에 제대로 앉으라고 하자 마지못해 자리에 앉긴 했는데 표정이 시무룩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산책을 하고 싶단다. 날씨가 너무 좋아 산책이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면 어린이집 가기 전에 잠깐 산책을 하자고 했더니 그제야 활짝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


손녀딸 손을 잡고 몇 발짝 내딛는 순간, 손녀딸이 기우뚱하더니 넘어졌다. 손녀딸 손을 꽉 잡고 손녀딸이 넘어지지 않도록 하려고 했으나,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손녀딸이 앙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한쪽 무릎에 살짝 상처가 났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손녀딸을 안아 올린 다음 손녀딸을 달랬다.


그런데 손녀딸이 울먹이며, "할아버지 발에 걸려서 넘어졌잖아."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가 아닐 수 없다. 걷다가 제 스텝이 꼬여서 넘어진 것 같은데, 뜬금없이 할아버지 탓이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손녀딸을 달래는 게 급선무이니, "그랬어? 할아버지가 미안해"라고 사과하며 손녀딸을 달랬다. 그러자 손녀딸은 금세 울음을 그쳤고 우리는 손을 잡고 아주 다정하게 산책을 했다.


자기 실수로 넘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 보다. 스스로 다섯 살 언니라고 생각하는 우리 손녀딸로서는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손녀딸 자존심을 지켜주는 일이라면, 이 할아버지는 기꺼이 덤터기를 써 주리라. 다른 사람에게 덤터기를 씌울 수 있을 만큼, 어느새 우리 손녀딸이 부쩍 자랐다. 우리 손녀딸이 티 없이 맑고 밝고 지혜롭게 자라는 모습을 보며 천천히 늙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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