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

<64> 2025. 06. 11.(수)

by 꿈강

6시 30분쯤 딸네 집 안으로 들어가니 손녀딸은 이미 깨어 있었다. 그저께도 그랬는데 말이다. 아침잠을 푹 자야 하루를 상큼하게 보낼 수 있을 텐데 조금 걱정이 된다. 손녀딸은 애착 인형 '보노'를 꼭 껴안고 주방에서 분주히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는 제 엄마 발치에 엎드려 있었다. 아내가 손녀딸을 살포시 안아 거실로 옮겼다. 다행히 짜증을 부리지 않는다.


잠시 후 손녀딸은 심심하다며 티브이를 틀어달라고 한다. 지금부터 티브이를 보면 너무 오래 보게 되어서, 안 된다고 했다. 떼를 쓰며 끝까지 티브이를 보겠다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 출근 준비를 마친 딸내미가 출근길에 오르려 하자 손녀딸은 제 엄마에게 잘 갔다 오라는 인사를 제법 그럴듯하게 했다. 배꼽 인사를 깎듯이 하면서. 딸내미의 출근길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듯했다.


딸내미가 출근한 다음 아내가 아침밥을 차려 왔다. 손녀딸은 루틴대로 티브이를 틀어달라고 했다. 이제는 안 틀어줄 수가 없어서 티브이를 틀어주고 밥을 먹였다. 어제는 밥을 잘 먹었는데 오늘은 어째 먹는 게 시원찮다. 그나마 과일을 잘 먹는다. 손녀딸 아침밥을 먹이면서 아내와 나도 아침을 먹었다.


아내와 내가 아침밥을 다 먹었는데 손녀딸 아침밥은 아직도 반 넘게 남아 있다. 갑자기 배가 사르르 아파와서 손녀딸 아침 먹이기를 아내에게 맡기고 화장실로 갔다. 볼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어럽쇼, 텔레비전이 꺼져 있고 아내가 손녀딸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고 있다.


당연히, 아내가 손녀딸을 설득해 텔레비전을 껐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손녀딸이 텔레비전을 끄더니 책을 가져와 읽어 달라고 했단다. 아이고, 이렇게 기특할 수가! 텔레비전을 스스로 껐다니! 늘 이러면 좋겠지만 다섯 살배기에게 그걸 기대하기는 무리이리라. 하지만 단 한 번이라도 스스로 텔레비전을 껐다는 사실이, 이 할아버지가 보기엔 참으로 기특하고 또 기특하다.


우리 손녀딸의 기특한 짓 한 가지 더! 어제 아침 손녀딸에게 "오늘 할아버지 머리 커트할 거야."라고 얘기했다. 손녀딸은 "멋지고 예쁘게 하고 와."라고 화답했다. 커트를 하고 여러 가지 해야 할 일을 한 다음 시간 맞춰 손녀딸을 하원시키러 아내와 함께 어린이집으로 갔다. 손녀딸은 늘 하던 대로 어린이집 옆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 그늘에 앉아 준비해 간 간식을 얌냠 맛있게 먹던 손녀딸이 갑자기 나를 보더니, "할아버지, 멋지다!"라는 멘트를 날렸다.


할아버지가 머리 커트한다는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할아버지가 커트한 모습을 보고 묻지도 않았는데 칭찬하는 말을 해 주는 우리 손녀딸! 기특하고 또 기특하다. 많이 컸다. 손녀딸 돌보는 데서 오는 고단함이 빛의 속도로 사라진다. 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는 그래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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