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영어 교육,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나이로 다섯 살배기 손녀딸이 영어로 뭐라 뭐라 쫑알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내 입꼬리가 올라간다. 거의 동시에 자괴감이 슬며시 머리를 든다. 대학까지 졸업한 나보다 훨씬 나은데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대학 때는 영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영어 공부를 한 건 고등학교 때까지이다. 또 나 때는 초등학교(나 때는 물론 국민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기에 내가 영어 공부를 한 기간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각 3년, 도합 6년이라 해야 마땅하리라.
그래도 나는 6년 동안은 열심히, 제대로 영어 공부를 했다. 영어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그에 비해 우리 손녀딸은 두 살 조금 지난 시점부터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영어에 노출된 기간은 아무리 많이 잡아도 3년 정도이다. 나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영어로 쫑알거리기 부문에서는 나보다 훨씬 낫다니! 이쯤 되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나는 영어 공부를 하기는 한 걸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영어 시간에 말하기와 듣기 수업을 한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그러니 나의 절반 수준인, 영어에 노출된 지 3년인 우리 다섯 살배기 손녀딸보다 영어 말하기에서는 열등생이 될 수밖에 없을 터 아니겠는가.
가끔 해외여행을 갈 때마다 늘 곤욕을 치르곤 한다. 입국 심사나 수하물 처리 과정에서 직원들이 던지는 매우 간단한 질문을 못 알아들어 쩔쩔맨 경우가 너무도 많기 때문이다. 또 즐겨보는 여행 프로그램에 나오는 외국 사람들은 어찌 그리 영어를 잘하는지! 영어를 곧잘 하는 사람들만을 미리 섭외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밤이면 별들이 한없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저 깊숙한 오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 나보다는 영어를 잘 말했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먹고 싶은 음식을 제대로 시켜 먹은 적도 별로 없는 듯하다. 메뉴판에 있는 음식 그림을 보고 대충 시켜 먹곤 했다.
그럴 때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영어 시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 시간에 일상적 영어 표현을 중심으로 영어 말하기와 듣기 수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쯤 해외여행을 할 때 크게 불편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다섯 살배기 손녀딸이 영어로 쫑알거리는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은 거의 확신으로 바뀌었다. 영어로 된 애니메이션만 3년 정도 본(일주일에 4~5회, 1시간씩) 우리 손녀딸의 영어 말하기가 나보다 나으니 하는 말이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의 영어 시간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1970년대 후반에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그 시절 영어 시간에 말하기와 듣기를 공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지금의 수능에 해당하는 예비고사(1981년부터 학력고사로 바뀜) 영어 시험에서 고득점을 얻는 데 최적화한 수업이었다. 교사가 영어 문장을 읽고 해석해 주는 게 수업의 핵심이었다. 또 그때는 일상생활에서는 좀처럼 쓰이지 않을 듯한 어려운 영어 단어를 달달 외우게 했다. 그래야 예비고사 영어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예비고사가 학력고사로, 학력고사가 수능으로 바뀐 요즈음의 영어 수업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녔던 1970년 후반의 영어 수업과 본질적인 면에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 년 전까지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 재직했던 터라 고등학교 영어 수업의 실상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물론 1970년 후반에 비해 말하기와 듣기가 강조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선언적 수준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수능 영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게 여전히 중요하므로 수업 초점을 말하기와 듣기에 맞출 수가 없다. 수능 영어 시험에 듣기 문제가 20문항이 있어 듣기 능력 향상을 위한 수업을 약간 하기는 하지만 수능 영어 시험의 변별력은 나머지 25문항이 가지고 있으므로 듣기 수업이 고등학교 영어 수업의 핵심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수능 영어 시험에 나올 만한 영어로 된 글을 읽고 해석하고 문제의 답을 골라내는 수업이 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수능에 출제되는 영어 문장들도 영어 원어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문장들과는 좀 거리가 있는 듯하다. 내 영어 실력으로 그런지 여부를 판단할 깜냥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어떤 미국인이 유튜브에서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기에 하는 말이다. 수능 영어 시험 지문을 읽다 보면 한자 성어가 많은 한글 지문을 읽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또 어떤 영국인 유튜버가, 영국의 한 고등학교 교장에게 수능 영어 문제를 풀게 했다. 그 영국인 교장은 서너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 게다가 어떤 지문을 읽던 도중, 어떤 단어를 가리키면서 '도대체 누가 이런 단어를 쓰냐'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 정도면 수능 영어 지문이 영어 원어민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문장들과 괴리가 있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제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을 좀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특히 고등학교 영어 교육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고등학교에서 6년 간의 영어 교육을 받더라도,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어려움을 크게 겪을 테니 말이다. 영어 원어민들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표현들을 중심으로 6년 동안 영어 수업을 한다면, 나처럼 해외여행 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영어 교육을 이렇게 바꾸려면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겠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을 바꾸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