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퇴직 국어 교사의 반성문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퇴직했다. 이제는 손녀딸을 돌보며 유유자적하게 은퇴 생활을 보내고 있다. 가끔 30년 넘게 지속한 교직 생활을 되돌아본다. 학생들과 소통하고 동료 교사들과 원만하게 지내는 등 대체적으로 무탈하게 지냈다고 자부한다. 교사의 본분인 '가르치기'에 있어서도 퍽 괜찮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해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종주먹을 들이대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꽤 성공적인 교직 생활을 한 것 아니냐고?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내 교직 생활은 완전하고도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해야 마땅하다. 국어 교사로서, '제대로 된 국어 수업'을 해 보지 못한 채 퇴직했기에 하는 말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두루 알겠지만,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업은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물론 그 누구도 그런 사실을 명시적으로 천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학생도 학부모도 학교 관리자도 묵시적으로 그걸 원한다. 어떤 교사의 수업을 듣고 학생들이 수능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면, 그 교사는 훌륭한 교사로 평가받는다. 그러다 보니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능 고득점을 위한 수업을 고민한다. 제대로 된 수업을 위해 전전반측하는 교사들이 어딘가에 있겠지만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을 터이다.
나도 학생들의 수능 고득점에 도움이 되는 수업이 무엇일지를 내내 고민했다. 그런데 내가 근무했던 지역의 고등학교에서는 교사들끼리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교사의 수업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체계가 학교 내에 존재하지 않았다. 교사의 수업 능력을 향상하는 좋은 방법은 교사들끼리 서로의 수업을 보여준 다음 그 수업에 대해 비판적으로 토론하는 것일 터이다. 학교에 교사들의 수업 공개 계획은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서류상의 계획에 불과했다. 또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을 본능적으로 싫어했다. "내 수업은 지나가는 개미한테도 보여주기 싫다."는 어떤 교사의 말이 이를 잘 웅변해 준다.
하여, 수능 고득점을 위한 수업 방법은 나 홀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유명 학원 강사의 수업을 흉내 내는 것이었다. 유명 강사 서너 명 인터넷 강의를 완강한 다음 그들의 수업 방식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그런 다음 내 수업에 접목하여 수업을 진행했다. 대성공이었다. 학생들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학원 강사로 나가셔도 되겠는데요!"
퇴직하기 7~8년 전인 2016년까지, 한 10년 그렇게 수업을 했다. 학생들은 나를 '수업 좀 할 줄 아는 교사'로 평가했고 나는 그걸 즐겼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자. 수능 고득점에 초점이 맞춰진, 유명 학원 강사를 흉내 낸 수업이 제대로 된 국어 수업인지를!
제대로 된 국어 수업이라면 '말하기/듣기, 쓰기, 읽기' 능력을 골고루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마땅하다. 수능 고득점을 위한 국어 수업은 '읽기' 능력 향상에만 초점을 둔다. 수능 국어 시험은 주어진 지문을 잘 읽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수능 고득점을 위한 국어 수업에서 '말하기/듣기'나 '쓰기'는 완벽하게 배제된다. 국어 수업의 중요한 세 축 중, 두 개 축이 아예 무시되는 셈이다. 또 수능 고득점을 위한 '읽기'가 국어 수업에서 요구하는 '읽기'와 부합하는지도 따져보아야 할 점이다.
그래서 2017년부터 수업 방법을 바꿨다.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수업 방법을 고민하고 공부한 끝에 과감하게 시도했다. 내 새로운 수업 방법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학생들의 질문으로부터 시작하는 수업'이라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지문을 읽은 다음 질문을 만들어 학급 친구들과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만드는 것이다. 질문을 만들기 위해 지문을 읽는 과정에서 '읽기' 수업이, 친구들에게 질문하고 대답을 만드는 과정에서 '말하기/듣기' 수업이 이루어진다. '쓰기' 수업은 읽은 지문을 한 문단 정도로 요약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또는 지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핵심 생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쓰도록 할 수도 있다.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며 가장 후회하는 부분은 이런 수업을 왜 그리 늦게 시작했는가 하는 것이다. 학생들도 매우 좋아했고 나 또한 정말로 만족하는 수업이었다. 이런 형태의 수업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학생들의 수능 성적이 그렇게 낮아지지도 않으리라 생각한다. 내 수업을 받은 학생들과 수능 고득점에 특화된 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미루어 볼 때 그러하다.
그런데 학생들도 좋아하고 나 또한 만족하는 수업을 왜 그리 늦게, 퇴직 7~8년을 앞두고 시작할 수밖에 없었을까? 현직에 있을 때는 잘 깨닫지 못했는데 퇴직한 지금 곰곰 생각해 보면 학교에 '좋은 수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좋은 수업'이 무엇이고 '좋은 수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해야 마땅할 터인데 내가 근무하던 시절, 학교에는 그런 체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현직에 있는 교사들 중에는 '좋은 수업'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교에 '좋은 수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체계가 생겼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려오지 않고 있으니, '좋은 수업'을 고민하는 교사들은 여전히 개인적 차원에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 이런 상황이라면 학교 수업이 괄목상대하게 나아질 수는 없다. 은퇴 후 자신의 교직 생활이 처절하게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이 여전히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가 아닐 수 없다. 하루빨리 '좋은 수업'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체계가 학교 내에 생겨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30년 넘게 한 교직 생활에 대한 회한을 남기지 않는 교사들이 늘어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