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보낸 한평생

교사가 소설가로 둔갑해야 한다면……

by 꿈강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교직 생활 대부분을 보냈는데, 30년 넘게 하다 이제는 퇴직한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많은 '과장'을 일삼았다는 사실을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교사의 '과장'은 대부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와 관련되어 있다. 특히 '학생부 종합 전형'이 대학 입시에서 주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되면서부터 학교생활기록부를 기재할 때 '과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 버렸다.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란과 '창의적 체험활동'란의 기록이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두 영역의 학생 활동 상황을 기재할 때 과장이 횡행했다. 이 중 좀 더 중요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초점을 맞춰 살펴보자.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교사들이 학생들의 수업 중 활동을 직접 관찰하여 그 활동 내용과 교사의 평가를 기재하는 영역이다. 그러려면 학생들의 활동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근무했던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학생 중심 수업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데 초점을 맞춰 수업을 진행하거나 혹은 예전의 관행에 따라 관성적으로 수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개의 수업은 교사가 주도하기 마련이었다. 교사가 주도하는 강의식 일제 수업이 주를 이루다 보니 학생들은 가만히 앉아 교사의 설명을 경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교사 주도의 강의식 일제 수업을 했더라도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써야만 한다. 그것도 제한 글자 수까지 꽉꽉 채워서 잘 써야만 한다. 지방 소도시 일반계 고등학교의 경우 성적 최상위권 학생들 대부분은 학생부 종합 전형으로 서울의 주요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학생 활동이 없는, 교사 주도의 수업을 진행한 다음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충실하게 쓸 수 있을까?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교사가 학생들의 수업 중 활동을 관찰하여 그 활동 내용을 쓰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그럴 수 없다.


2013년으로 기억한다. 어떤 과학 교사가 내가 담임한 한 학생의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초롱한 눈망울로 수업에 집중함.'이라고 적었다. 그 교사는 아마도 교사 주도의 강의식 일제 수업을 했을 터이고 그러다 보니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적을 내용이 없었으리라. 심각하게 과장하거나 터무니없이 창작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래서 그 교사는 그야말로 솔직하게 자신이 수업 중 관찰한 사실에 근거하여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했으리라 생각한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을 충실하게 지킨 정직한 교사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그해 내가 근무했던 그 학교에서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을 충실히 지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한 또 다른 교사는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모두 최선을 다해 '과장'하고 '창작'해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썼다. 해가 갈수록 '학생부 종합 전형'의 중요성은 더해 갔고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쓸 때 교사들의 '과장'과 '창작'은 심해졌다. 2020년쯤으로 기억하는데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을 마친 어느 후배 교사가 자괴감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토했다. "우리는 모두 위대한 소설가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할 때 교사들이 '과장'과 '창작'을 일삼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들의 제자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걸 위해서 좀 꺼림칙하지만 눈 딱 감고 '과장'과 '창작'에 일로매진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코 옳은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교사들은 별생각 없이 또는 관행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그저 묵묵히 행한다. 옳음을 추구해야 하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옳지 않은 일이 횡행하는데 막는 사람도 없고 막을 장치도 없다. 내가 교직에서 은퇴한 2024년까지 그랬다. '과장'과 '창작'으로 점철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주요 전형 자료로 활용되었고 아마 지금도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할 때 '과장'과 '창작'을 막을 방법은 없을까? 교사들이 대오각성하지 않는 한 '과장'과 '창작'을 완전무결하게 차단할 수는 없겠지만 방법은 있다.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일반계 고등학교의 수업 형태를 '학생 활동 중심'으로 완전히 전환하는 것이다. 지금도 고등학교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교사 주도의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터이다. 이 틀을 깨지 않는 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작성할 때 '과장'과 '창작'을 막을 수 없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는 '수업 중 학생 활동'을 적어야 하므로 교사 주도의 수업을 하고 나서는 적을 만한 내용이 없게 되므로 '과장'과 '창작'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의 '과장'과 '창작'을 막는 데에 고등학교의 수업을 '학생 활동 중심'으로 바꾸는 게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 다음 모든 교사들에게 담당 과목의 학기별 '수업 계획서'를 제출하게 해야 한다. 내가 근무했던 당시에도 모든 교사들이 '교과 진도 계획'이라는 것을 제출했다. 그 '교과 진도 계획'을 좀 더 내실화해서 단원별로 어떤 '학생 활동'을 할 것인지가 포함된 '수업 계획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학기말에 교사들이 작성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이미 제출한 '수업 계획서'에 명시된 '학생 활동'이 충실히 반영되었는지를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 시 행해지는 교사들의 '과장'과 '창작'을 상당 부분 방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과장'과 '창작'이 횡행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간단히 정리하면 '학생 활동 중심'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학생 활동'이 포함된 '수업 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으며 교사들이 작성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를 제대로 하면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에서 이루어지는 '과장'과 '창작'은 꽤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 시에 이루어지는 '과장'과 '창작'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발견할 수 없다. 또 일각에서는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작성 과정에서 '과장'과 '창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하거나 그 '과장'과 '창작'이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인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러한데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중요한 전형 요소로 활용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 여전히 대입 전형에서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장'과 '창작'으로 점철된 자료를 활용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은 공정성을 의심받아도 크게 할 말이 없으리라 생각한다.


'학생 활동 중심' 수업으로 바꾸고 '학생 활동'이 포함된 '수업 계획서'를 제출하고 작성한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꼼꼼히 점검받으라고 하면 교사들이 아우성을 칠 듯하다. 물론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이 '학생부 종합 전형'에서 중요한 전형 요소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손녀딸과 함께하는 하루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