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왜 기본에 소홀할까
그가 약간 놀라며 물었다. 왜 안 되느냐고. 다른 바쁜 업무 때문에 학교에서 채점할 시간이 없으면 당연히 집으로 가져가서 채점해야 하지 않냐고 한다. 나도 그럴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물음의 의도는 도교육청의 학업성적관리 시행 지침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도교육청의 지침과 그 지침에 따라 만든 학교의 성적관리 지침에 다음과 같은 명시적 규정이 있다.
'지필평가 및 수행평가 답안지는 채점, 확인 등을 이유로 학교 밖으로 유출하지 않도록 유의한다.'
이 규정에 따르면 수행평가 답안지를 집으로 가져가 채점하는 행위는 답안지 '유출'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런 규정이 있는지를 알고 있는 교사들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왜 그럴까? 아무도 이런 규정이 있는지를 이야기해 주지 않고 누구도 성적관리 지침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매년 학기초에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과 '학업성적관리 시행 지침'이 학교에 내려온다. 전자는 교육부에서 책자로 만들어 교사 개인 개인에게 한 부씩 제공하고, 후자는 도교육청에서 전자 문서로 내려보낸다. 이 두 책자는 교사, 특히 일반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라면 반드시 읽어 보아야 하는 중요한 책자이다.
그런데 내 주변의 선량하고 성실한 동료 교사들을 살며 보면, 이 두 책자를 읽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예 읽을 생각을 하지 않는 듯했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 책자는 받는 순간 곧바로 책꽂이 행이다. 꽂힌 그 자리에서 일 년 내내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가 다음 해 쓰레기통으로 향하고 새 책자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책자 형태로 제공되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이 처한 형편이 이러할진대, 전자 문서로 내려오는 '성적관리 시행 지침'의 형편은 말해 무엇하랴. 그런 문서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교사들이 많으리라. 아마도 '성적관리 지침'을 읽어 보는 사람은 평가 업무를 담당한 교사와 담당 부장 교사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들 중에도 '성적관리 시행 지침'을 읽지 않거나 읽긴 읽더라도 대충 읽는 교사들도 많을 터이다. 2~3년 전쯤에 평가 담당 부장 교사에게 수행평가 답안지를 집으로 가지고 가서 채점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교사는 금시초문이라고 대답했다. 이런 걸 보면 평가 담당 교사들도 '성적관리 시행 지침'을 꼼꼼하게 읽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성적관리 시행 지침'은 읽어도 되고, 안 읽어도 그만인 문서가 아니다. 일반계 고등학교 교사라면 필독해야 할 문서이다. 물론 모든 교사가, '성적관리 시행 지침'이 담고 있는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교사 개인이 정기고사 성적 관리를 위해서 꼭 숙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을 알려면 그 문서를 읽어야만 한다.
그런데 교사들이 그 문서를 좀처럼 읽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 읽고 필요한 사항을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최근 10년 동안 근무한 네 개 학교에서, 학기초에 '성적관리 시행 지침'의 중요한 사항을 정리해서 알려주는 경우를 단 한 차례도 본 적이 없다.
물론 그래도 학교는 어쨌든 굴러간다. 중간, 기말고사와 같은 대입 전형에 중요하게 작용하는 정기고사도 큰 탈 없이 치러진다. 하지만 나는 불안하다. 해마다 내려오는, 그 중요한 문서를 아무도 읽지 않는, 읽으려 하지 않는 교직 사회의 풍토가 걱정스럽다.
'성적관리 시행 지침'은 정말 중요한 문서이다. 모든 교사들이 꼭 읽어야 하는 문서이다. 그런데 잘 읽지 않는다. 기본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높고 튼튼한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성적관리 시행 지침'이 내려오면 교사 개개인에게 꼭 읽어 보라고 안내하고, 필요한 사항은 담당자가 정리해서 또 안내해 주면 되지 않겠는가.
퇴임을 앞두고 후배 교사와의 저녁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에서 생각난 점을 두서없이 적었다. 35년의 교직 생활을 돌이켜 보면, 학교에서 이처럼 '기본'에 충실하지 않은 상황을 목격하고 안타까웠던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기본'에 충실하지 않고, '기본'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관행대로 일을 처리하고 추진하다 보니 학교 사회의 혁신이 더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왜 학교는 '기본'에 소홀할까? '기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걸까? 그렇지는 않으리가 생각한다. 학교가 기본에 소홀한 까닭은, 아마도 '성과주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본에 충실하다 보면 당장의 성과를 드러내 보이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기본을 소홀히 하고 외면하는 것이리라. 허나 기본에 충실한 것이 진정한 성과를 내는 길임을 인식해야만 한다. 그래야 학교가 자기중심을 잡고 굳건하게 우뚝 설 수 있을 터이다.